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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 표지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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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도시인 원주에서도 외국인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벽안의 눈동자를 가진 백인도 보고,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의 흑인도 볼 수 있다. 어쩌다 식당에 들어가 보면 음식을 날라주는 종업원 중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시골도 예외는 아니다. 연변에서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결혼을 통해 이주, 정착한 여성들이 상당 수 있다. 세계화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 우리 주변에 성큼 다가섰다. 달라진 현실만큼 우리들의 생각도 바뀌었을까?

간단히 실험해보면 답은 나온다. 길거리를 가다가 백인과 흑인이 동시에 다가온다면 누구에게 시선이 더 끌리고 호감이 갈까. 수업 중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면 대부분이 백인이라고 대답한다. 빠르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고,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외국인과 접촉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백인들이 뿌려놓은 우월의식이 그대로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유럽인들의 눈높이로 서술된 세계사가 아무런 여과과정 없이 객관적 세계사인 것처럼 우리들에게 번역 소개되고 교과서로 편찬되어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단군신화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아이들이 더 많다. 

백인의 시각을 닮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문제들은 어떤 게 있을까. 평소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 있다. 돈 많고 넉넉해서 즐기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일로 가는 분이다. 이 분과 동행해서 만주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던 중에 여행 다니다 보면 참 속상한 일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듣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은 1892년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서 특별히 작곡된 것
▲ 신세계 교향곡 사람들이 많이 듣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은 1892년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서 특별히 작곡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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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고 여행하다 보면 여러 국가의 항공기를 타게 되는데, 서양의 항공기를 탈 때와 동남아 항공기를 탈 때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천지 차이야. 서양 스튜디어스에게는 나름 예절 갖추던 사람들이 동남아 스튜디어스들에게는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몰라. 그게 우리 수준이라 생각하면 참 속이 상했어."

"어찌 이런 일이?"라고 반문할 사람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 끄덕일 사람들이 더 많지 싶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애들도 백인 영어회화 강사를 흑인 영어회화 강사보다 더 선호한다니까.

강철구 교수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서양 중심의 빗장을 벗겨버린다. 서양은 세계의 중심이고, 모든 합리적이고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것은 유럽과 미국의 산물인 것으로 생각하고 고개 끄덕이는 사람들에게 세계사가 어떻게 유럽 중심주의로 포장되고 미화되었는지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미국과 중남미 몇몇 나라에서는 매년 10월 12일을 콜럼부스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이 커짐에 따라 행사 규모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 <콜럼부스의 날 반대 포스터> 미국과 중남미 몇몇 나라에서는 매년 10월 12일을 콜럼부스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이 커짐에 따라 행사 규모도 점차 축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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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세계사 선생님이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를 쉽게 외우라며 '한(1)사(4)코(9) 돌(2)(1492년)아온 콜럼부스'라 가르쳐준 덕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요즘도 미국과 중남미 일부 국가들은 '콜럼부스의 날'을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고, 미국 영화사 이름 '콜럼비아'의 뜻이 '콜럼부스의 땅'이란 뜻임을 생각한다면 미국인들의 콜럼부스에 대한 생각이 각별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콜럼부스의 날'에 대한 저항이 점점 커지고 있어 행사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상륙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아메리카 인구의 약 90%가 줄어들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어 강제 노동과 노예 생활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콜럼부스의 날'을 기념해서는 안 된다는 저항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이름이 올라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품위 있는 행적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혀 다른 다양한 모습도 눈에 띈다.

가내 노예 중에 성적 봉사를 전담하던 여성 노예를 거느리고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서인도라고 여겼던 곳의 원주민 550여 명을 노예로 팔기 위해 스페인으로 끌고 갔던 콜럼부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노예로 팔리기도 전에 죽음을 당했다. 인민의 저항권을 주장함으로써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알려진 존 로크는 잉글랜드 식민주의자들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고, 그 자신도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상당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를 읽다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멀쩡히 두 눈 뜨고 있으면서도 남의 장단에 춤을 추고 살았던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원스럽게 첨부된 180여 장의 사진, 그림, 조각, 포스터, 지도 등의 자료 또한 독자들이 눈썰미 있게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덧붙이는 글 | 도서출판 용의 숲/2009. 7/25,000원



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1

강철구 지음, 용의숲(2009)


태그:#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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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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