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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만에 자전거 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앞 다퉈 '자전거길'을 만들 정도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직접 자전거길을 찾아 진단을 해봤습니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 온 시민기자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자주 애용하는 자전거길을 찾아 문제점과 개선사항 등을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요즘 잘나가는 트렌드를 꼽으라면,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라이딩을 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전국 각 지자체들도 앞 다퉈 자전거길을 만들고 있을 정도니까요.

사실 자전거 여행을 떠나 도착한 도시에서 '자전거 길'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과 함께 달리기 편안한 길을 만나게 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습니다. 물론 자전거 타는 이들을 배려하는 그 도시에 대한 인상도 좋게 남습니다.

'잔차'족이 '즐라'할 수 있는 도시는 어디?

이미 수 년 전에 이런 자전거도로를 만든 창원시의 안목이 참 대단합니다.
 이미 수 년 전에 이런 자전거도로를 만든 창원시의 안목이 참 대단합니다.
ⓒ 자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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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경상남도 창원입니다. 차도 옆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널찍한 자전거 길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곳은 정말 '즐라'(즐거운 라이딩), '안라'(안전한 라이딩)할 수 있는 도시더군요('즐라·안라하세요!'는 자전거족끼리 쓰는 재밌는 인사말이랍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전거길'하면 강변이나 하천가에 있는, 쭉 뻗은 낭만적 길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사실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또는 동네에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길 더 원합니다. 그런 안전한 자전거길이 도심에 많이 생겨야만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것이고요.

그렇게 이 도시 저 도시 다니면서 알게 된 재밌는 점은 동네마다 자전거길의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해당 지역 지자체 담당자들의 자전거에 대한 인식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런 중구난방 자전거길도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자전거길, 그 진화의 속사정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같이 있지만 상가 차량들의 주정차로 이젠 보행로마저 좁아지고 있네요.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같이 있지만 상가 차량들의 주정차로 이젠 보행로마저 좁아지고 있네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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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긍정적 현상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기존 인도를 넓혀 가운데에 금을 긋고 서로 색깔을 달리해 자전거길을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서 진일보한 게 차도 옆에 독립적인 차선을 만들어 자전거길을 내는 것입니다.

창원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차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에 안전둑도 만들어 놓았더군요. 몇 년 전 이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보았는데요. 마치 자전거길이 발달한 서유럽 어느 나라에 간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서울시 은평구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는데 이 길도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의 전형적이고 운명적인(?) 진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인도 옆에 붙어 있다가 최근에는 차도 옆으로 옮겨갔는데, 자전거 타는 사람의 처지에서 이 두 가지 자전거길은 많이 다릅니다. 그럼,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위주로 그 두 자전거길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요?

[인도 옆 자전거길] 보행자 충돌 걱정에 '즐라' 힘들어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상암동은 이런 자전거도로를 채택했는데, 보다시피 보행로와 자전거로가 혼용되어 달리는 자전거가 보행인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상암동은 이런 자전거도로를 채택했는데, 보다시피 보행로와 자전거로가 혼용되어 달리는 자전거가 보행인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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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옆 자전거도로는 자전거가 차선에서 떨어져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초기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전거 도로가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동네 자전거도로도 대부분 인도와 이웃하여 만들었는데, 보행인과 충돌할 위험 때문인지 점차 자전거인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엔 인도변 상가들의 차량들이 이 길을 점유하면서 길 자체가 그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은평구 자전거인들의 수도 정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자전거길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저 같은 자출인(자전거 출퇴근인)들은 할 수 없이 차도 맨 끝에서 차량들의 눈치를 보며 달려야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인도 옆 자전거길의 가장 큰 문제는 보행인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행인들도 나란히 붙어 있는 인도와 자전거길을 분명히 구분해 다니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혹 충돌사고가 나면 자전거는 차량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자전거길 옆에 상가들이 있다면, 거의 대부분 그 자전거길은 상가들을 위한 주차장이 될 확률이 큽니다. 자전거길이 추가되면서 인도가 넓어지자 상가 차량들이 그곳에 주정차를 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이로 인해 자전거인들은 물론 보행인들마저 걸어 다니기 힘들게 됐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 동네 어디서나 만성이 된 흔한 광경으로 기본적인 보행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은평구청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차량의 불법 주정차 단속 및 계도는 경찰이 하는 게 아니라 해당지역 구청 교통지도과의 업무라고 합니다).

[차도 옆 자전거길] 호시탐탐 자전거길을 노리는 차량들

자전거길 위에 정차한 차들을 피해 다시 차선으로 끼어들어야 하는 자전거인... 문제는 저런 주정차 차량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전거길 위에 정차한 차들을 피해 다시 차선으로 끼어들어야 하는 자전거인... 문제는 저런 주정차 차량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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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얼마 전 드디어 차도 옆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차선의 맨 끝에서 차들의 눈치를 보면 달리다 찻길 옆에 독립적인 자전거용 차선을 이용해 안전하게 달리니 자전거 타는 맛이 더욱 좋았지요.

그런데 이런 기분 좋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바로 차량들의 자전거 길 위 주정차입니다. 물론 가끔 가다 한두 대가 급한 용무로 차를 세워두고 있다면야 이해가 되지만, 제가 자전거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선 이날도 차도 옆 자전거길 위에는 족히 10여 대가 넘는 다양한 차종들이 띄엄띄엄 들어서서 자전거 주행을 방해했습니다.

이런 주정차 차량을 만나면 일단 속도를 줄이며 차들이 지나 다니는 왼쪽 차선으로 끼어들어야 하는데, 왼쪽 뒤를 주시하면서 왼손을 들어 뒤차에게 수신호를 하며 들어가야 안전합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하다보면 신경도 많이 쓰이고 좀 피곤하지요. 더구나 해가 진 후 컴컴해진 저녁에는 사고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버스들이 진입하는 버스 정류장도 자전거길과 같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달려야 합니다.
 버스들이 진입하는 버스 정류장도 자전거길과 같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달려야 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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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이런 일은 우리 동네만의 현상이 아니더군요. 인터넷 자전거 카페 '자출사'에 가보니 차량들의 자전거 도로 위 주정차 현상은 다른 동네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어 자출족들의 원성을 사고 있더군요. 자전거 도로가 인도 옆에서 차도 옆까지 가는 진일보를 이뤄 냈지만 차도 위 운전문화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전거 길 환경을 좋게 만들기 위해선 어느 정도 노력도 필요한데, 해당 구청 교통지도과에 민원을 넣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저도 이날 은평구청 교통지도과에 민원 전화를 했는데요. 단속과 계도에 좀 더 신경을 쓰고 CCTV 설치도 검토하겠다는 담당자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밖에도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려는 버스와 추돌할 위험성도 있는데, 이 문제는 버스 정류장이 중앙차로에 있지 않는 한 현재의 도로 여건에서는 자전거가 주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산한 자전거길에 주정차 좀 하면 어떠냐고?

사거리에서도 자전거길이 확보되어 있어 좋습니다. 가끔 오토바이가 자전거길을 달리기도 하지만 위협만 안 준다면 관용을 베풀렵니다.
 사거리에서도 자전거길이 확보되어 있어 좋습니다. 가끔 오토바이가 자전거길을 달리기도 하지만 위협만 안 준다면 관용을 베풀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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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자전거길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눈먼 주정차 장소 취급을 받지만 어쨌거나 차도나 인도에서 달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뜸하던 동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요즘 이 차도 옆 자전거길에서 많이 보입니다. 남녀노소 주민들이 생김새도 다양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자전거길에 주정차한 어떤 운전자는 "자전거길이 차도에 비하면 훨씬 한산한데 주정차 좀 하면 안 되냐"고 반문하시더군요. 다른 운전자 분들도 아마 이런 생각으로 자전거길을 점유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으로 "자전거길이 한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하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도로 위 교통 약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가 좀 더 성숙해져야 함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정부가 정말 자전거 산업을 활성화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많이 늘리고자 한다면 4대강 유역의 레저용 자전거도로 개발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도시와 동네 자전거도로를 제대로 만들고 차도처럼 관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태그:#자전거, #자전거도로, #서울시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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