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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마술을 부린 듯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5분정도 떨어진 집근처 구로구 항동에 꽃밭이 생겼습니다. 잠시만 눈을 돌려도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왜 한 번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필요한 것만 바라보고 살았던 것이 못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너무나도 빠른 시간은 풍요로운 마음의 여유를 잊게 했고 한번쯤 주위를 둘러볼 틈새를 주지 않고 휙휙 지나갑니다. 가끔 이 근처를 지나칠 때마다 찢겨진 비닐하우스며 생활쓰레기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폐비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코스모스가 활짝 피고 지금은 운행되지 않는 철길 가장자리에도 키 작은 코스모스가 다소곳이 피어 철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며 운치를 더해 줍니다.

구로구 항동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이 있습니다.그곳에 코스모스를 심어 지역주민들이 기찻길을 따라 코스모스와 함께 산책을 합니다.
 구로구 항동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이 있습니다.그곳에 코스모스를 심어 지역주민들이 기찻길을 따라 코스모스와 함께 산책을 합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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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코스모스가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벼를 심어 노랗게 익어가는 논두렁 사이로 백로가 먹이를 찾고 덩그러니 서있는 허수아비는 외로움을 달래려 백로에게 동무하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참 정겨운 풍경입니다. 백로는 허수아비 곁을 떠나지 않고 배회합니다. 가을의 전령사 고추잠자리가 코스모스 위를 휘휘 맴돌다 가을 햇살을 받아 나뭇가지위에 앉아 쉬어갑니다.

누렇에 익어가는 벼 사이로 우뚝 서있는 허수아비가 정겹습니다.
 누렇에 익어가는 벼 사이로 우뚝 서있는 허수아비가 정겹습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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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화 꽃이 솜사탕처럼 만발하였네요. 목화 꽃을 보면서 아련히 잊혔던 기억하나를 꺼내봅니다. 초등학교시절 학교를 가려면 목화 꽃이 만발한 목화밭 근처를 지나가곤 하였는데 그곳에 도착하면 온통 하얗게 피어 있는 푹신푹신하며 포근해 보이는 하얀 목화 꽃 위에 드러누워 한잠 자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하였지요. 가끔은 꽃이 피기 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목화송이를 따서 속에 들어있는 촉촉하며 부드럽고 연한 목화를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달콤하면서 보드라운 것이 입안에 착 감기면서 무언지 모를 상큼함까지 오랜 시간 은은한 여운을 남겼었지요.

꽃밭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주머니가 논두렁으로 굴렀습니다. 그래도 마냥 웃습니다.
 꽃밭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주머니가 논두렁으로 굴렀습니다. 그래도 마냥 웃습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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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부부가 있습니다. 아차! 아름다운 꽃에 취해 잠깐 한눈을 파는 순간 아내가 자전거와 함께 논두렁으로 굴렀습니다. 그래도 활짝 웃으며 툭툭 털더니 핸드폰으로 코스모스를 찍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두들 괜찮은지 다가갔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진을 찍는걸 보고 무안할 지경입니다.

구로구청소속 일용직 근로자 이진숙(48)씨가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만발한 축제에 꼭 놀러오세요라며 꽃밭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구로구청소속 일용직 근로자 이진숙(48)씨가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만발한 축제에 꼭 놀러오세요라며 꽃밭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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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항동 10-1번지 일대 3만여 평이 넘는 이곳은 국유지 13필지와 사유지 50필지를 구로구청에서 사들여 서울 푸른 수목원을 조성할 계획이랍니다. 습지원, 계류생태공원, 산림생태원, 특성별 수목식재 등 다양한 자연학습장으로 꾸밀 예정이라며 구청소속 일용직 근무자 이진숙(48)씨가 설명합니다.

"이곳 서울 푸른 수목원의 꽃밭과 자연 학습장은 올 2009년부터 구청 푸른 도시과가 주축이 되어 공공근로자들이 꽃과 각종 식물들을 심고 가꾼답니다. 봄에는 유채꽃을 심어 지역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였고요.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벼, 메밀, 목화, 수수, 조 등 다양한 식물을 심어 지역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답니다.

10월 16일부터 벼 베기 체험 행사도 있는데 벼를 쌀 나무라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뜻 깊은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축제도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오래전 설치되어 있던 기찻길은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아 철길을 이용하여 모노레일을 운행할 것입니다. 모노레일은 무료로 운행합니다."

1년전만해도 비닐하우스와 쓰레기등이 수북이 쌓였던 곳입니다.
 1년전만해도 비닐하우스와 쓰레기등이 수북이 쌓였던 곳입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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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자들이 코스모스밭을 가꾸고 있습니다.보는이들은 이들이 있어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공공근로자들이 코스모스밭을 가꾸고 있습니다.보는이들은 이들이 있어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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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들녘 사이로 허수아비가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벼를 베기 위해서는 논두렁에 있는 둑을 열어 물을 빼야 하는데 논두렁에서 일을 하시던 아저씨가 한마디 합니다.

"도심 속에서 이런 허수아비를 보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지요? 그러니 허수아비 사진을 찍으려면 모델료를 단단히 내야 합니다. 허허허"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을 건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나도 좀 전에 핸드폰으로 허수아비 찍었는데 모델료 드려야 합니까?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면 될까요? 라며 덩달아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코스모스가 만발한 근처에 있는 정자가 운치를 더하며 산책을 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자에 모여 앉아 이야기 한 보따리를 풀어 놓습니다.

꽃길을 산책하는 제 귀에도 들려옵니다. 으레 아주머니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아무리 들어도 밉지가 않는 아들딸 자랑이 화두에 오릅니다. 자녀들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돌연 아들과 딸을 소개 시켜주겠다며 서로 사돈이 되어 갑니다. 정담이 오고가는 곳에 목화와 메밀꽃, 해바라기, 코스모스와 익어가는 가을이 있어 행복한 우리 동네입니다.


태그:#코스모스,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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