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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아침 서울 서초구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SH공사쪽 용역직원들이 판자와 비닐로 지어진 10여가구를 강제철거했다. 25일 낮 폐허가 된 집터에서 몇몇 주민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15일 아침 서울 서초구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SH공사쪽 용역직원들이 판자와 비닐로 지어진 10여가구를 강제철거했다. 25일 낮 폐허가 된 집터에서 몇몇 주민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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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에 만난 김종기(52)씨는 "종종 무너진 집터에서 직접 불을 피워 밥을 해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23일 오후에 만난 김종기(52)씨는 "종종 무너진 집터에서 직접 불을 피워 밥을 해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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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구해와 거기에 냄비를 얹고 그 아래에 숯으로 불을 피워 된장국을 해먹었어요. 무너진 집터 쓰레기더미 옆에서 말이죠."

김종기(52)씨는 된장국이 반쯤 찬 냄비를 들어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불 피운 곳 인근에는 이불·옷가지 등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쓰레기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내 집의 흔적"이라고 짤막하게 전했다.

김씨는 "지난 15일 아침 SH공사 쪽에서 용역직원을 투입해 집을 강제로 철거했다, 건진 게 거의 없다"며 "신세를 지고 있는 이웃이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종종 무너진 집터에서 직접 불을 피워 밥을 해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15일 집이 철거돼 김씨와 같은 상황에 놓은 곳은 전체 80여 가구 중 10여 가구에 달한다. 나머지 가구들은 법원이 SH공사의 강제철거 집행을 정지시켜 철거를 면했다. 김씨는 "시간·비용 문제로 법원에 철거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못한 가난한 주민들의 집을 SH공사가 기습 철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용산 참사' 이후 강제 철거(퇴거)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지만, 이곳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무시되고 있었다. 23일 이곳을 찾아 집 잃은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강제철거로 인해 주방과 방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강제철거로 인해 주방과 방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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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로 집이 부서져 버린 주민들은 이웃집에 얹혀 살고 있다. 가끔 이렇게 밖에 나와 밥을 해먹고 지낸다.
 강제철거로 집이 부서져 버린 주민들은 이웃집에 얹혀 살고 있다. 가끔 이렇게 밖에 나와 밥을 해먹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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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짜리면 좋겠네. 음... 그 시간은 어려운데... 다시 한번만 알아봐줘요."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는 여성들. 밥을 먹은 뒤에는 일감을 찾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다 큰 딸도있는데... 이런 모습 나가면 결혼할 때 곤란해요. 얼굴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4시간 짜리면 좋겠네. 음... 그 시간은 어려운데... 다시 한번만 알아봐줘요."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는 여성들. 밥을 먹은 뒤에는 일감을 찾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다 큰 딸도있는데... 이런 모습 나가면 결혼할 때 곤란해요. 얼굴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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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 우면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 추진... 쫓겨나는 서민들

1970년대부터 그린벨트로 묶여있던 우면2지구는 오래 전부터 오갈 데 없는 서민들의 보금자리였다. 서울 강남 지역과 가까운 탓에 파출부 일거리가 많아 사람들이 몰렸고, 700여 가구까지 불어났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판자·비닐 등을 이용해 집을 지었다.

이영자(54)씨는 지난 1989년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는 "먹고 살기 힘들고 갈 데가 없어서 이곳에 판자와 나무를 얻어다 집을 지었다"며 "15㎡도 안 되는 작은 집이었지만, 비바람을 피하면서 애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은 지난 2005년 9월 정부가 이곳을 국민임대주택단지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사업시행자인 SH공사는 2011년 12월까지 국민임대주택·장기전세주택(시프트) 2524세대를 포함해 모두 3137세대를 지을 예정이다. 보상과 관련, SH공사는 주택을 감정평가해 보상하고 전세자금 7천만원을 대출해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임대주택 입주권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우면2지구 주민들의 주택 보상가가 보통 300만~40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선이자만 350만원에 달했고, 임대주택·시프트 보증금은 주변시세의 60~70% 선에서 정해지는 탓에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결국 이씨를 비롯한 80여 가구는 SH공사의 보상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SH공사는 지난 7월 주민들에게 8월 10일까지 우면2지구에서 나가지 않을 경우, 강제철거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주민들은 법원에 SH공사의 강제철거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씨처럼 법원에 강제철거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하지 못한 가구가 10여 곳에 이르렀다. 이씨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솔직히 '용산 참사'가 있었는데 설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강제철거를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 이후 강제철거 없을 줄 알았는데... 없는 사람 죽이는 것"

하지만 SH공사는 지난 15일 오전 7시 30분께 포클레인과 용역 직원 100여 명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감행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날 용역 직원들이 철거 집행 중지 신청을 하지 않은 집을 찾아가 주민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한 다음 포클레인으로 집을 부쉈다. 이씨의 말을 들어보자.

"아들이 자고 있는데, 용역 직원이 쳐들어왔다. 다행히 집을 뭉개기 전 아들은 나왔지만, 지갑이나 통장 등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왔다. 용역 직원들이 방 안에 들어가 자루에 그릇이나 냉장고 속 음식을 담아 나왔지만 그릇이 다 깨지는 등 건진 게 거의 없다. 싱크대·냉장고·세탁기·장롱 등은 모두 부서졌다. 길바닥에 쏟아진 쌀로 밥을 해먹었다."

부서진 판자 더미에서 발견한 쌀. 주민들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쌀을 골라 밥을 지어먹고 있다.
 부서진 판자 더미에서 발견한 쌀. 주민들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쌀을 골라 밥을 지어먹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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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물이 들어있는 채 부서져버린 세탁기가 마을 한쪽에 치워져 있다.
 세탁물이 들어있는 채 부서져버린 세탁기가 마을 한쪽에 치워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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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장애인이 살고 있는 방 한가운데 태극기가 걸려 있다. 바로옆에 부엌으로 사용하던 공간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한 여성 장애인이 살고 있는 방 한가운데 태극기가 걸려 있다. 바로옆에 부엌으로 사용하던 공간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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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씨는 "우리도 세금을 내는 국민인데, 어떻게 사람 사는 집을 철거할 수 있느냐"며 "이명박 정부나 서울시가 서민 살린다고 하더니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 없는 사람 죽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24시간 영업 식당에서 야간에 일을 하는 조귀남(55)씨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집이 파괴된 것을 알았다. 조씨는 "집도 돈도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깜짝 놀랐고 황당했다"며 "두 딸은 각자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고, 나는 이웃집을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철거 현장에는 폭삭 내려앉은 집 주변에 온갖 가재도구들이 부서진 채 뒹굴고 있었다. 집 일부만 부서진 집들도 있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허물어진 부분을 비닐로 덧댔다. 이 집 위에는 휘발유통이 눈에 띄었다.

박준규(52)씨는 "철거하던 날 휘발유통을 가지고 집 위로 올라가 분신을 하겠다고 하니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며 "강제 철거를 다시 시도한다면 분신할 것이다, 어차피 돈 없는 사람 죽는다고 누구 하나 신경 안 쓰지 않느냐"고 말했다.

휘발유통을 들고 있는 박준규(52)씨, "철거하던 날 휘발유통을 가지고 집 위로 올라가 분신을 하겠다고 하니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
 휘발유통을 들고 있는 박준규(52)씨, "철거하던 날 휘발유통을 가지고 집 위로 올라가 분신을 하겠다고 하니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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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민이 쓰레기더미로 변한 집터를 가리키고 있다.
 한 주민이 쓰레기더미로 변한 집터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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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와 관련, 김동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용산 참사 이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철거를 제한하는 등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자는 요구가 많았지만 통과된 게 없다"며 "각종 개발 계획이 쏟아지고 있는데, 강제 철거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H공사 "법과 규정에 따라 철거했다"

SH공사는 강제 철거와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집행했다"는 태도였다.

SH공사 보상팀 관계자는 "원주민 중 10%만 남아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준공 일자가 늦어지면 원가가 오르는 등 입주대기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최대한 빨리 모든 주택에 대해 (철거) 집행을 하려고 했지만, 일부 주택의 경우 법원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철거를 못했다"고 밝혔다.

강제 철거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SH공사의 사업지구가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법과 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주변시세의 영향을 받는 국민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동사무소에 생활보호대상자 자격을 신청해서 다른 지역에서 짓는 싼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면 된다"며 "소수를 위해 행정이 뒷받침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태그:#강제철거, #행정대집행, #국민임대주택, #S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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