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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협곡에도 과수원이 있고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 브샤레 마을이 들어선 협곡 가파른 협곡에도 과수원이 있고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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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흐바호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나흘 정도 머물렀지만 나름대로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주인 와엘(Wael)은 천도 복숭아와 사과까지 사다가 대접해준다. 마지막으로 실론티 한 잔을 마시고 작별을 고했다.

칼릴 지브란의 고향 브샤레를 찾아 간다. 트리폴리행 버스를 탔다. 차비 2,000LL짜리 미니버스를 탔다. 처음엔 에어컨을 틀어주더니 나중엔 출입문을 열고 운행을 한다. 위험해보이는데… 가는 동안 경치는 좋았다. 레바논에서 브샤레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트리폴리에서 브샤레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은 산악지대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산악지대인데도 집들이 많이 지어져 있었고 자동차도 많았다. 산골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내리자 마자 눈에 뜨이는 것이 교회였다. 브샤레는 독특한 곳이다. 아랍이라면 이스람교를 떠올리겠지만 브샤레는 거의가 기독교인들이다. 아랍이면서도 아랍같지 않다. 일단 모스크보다는 교회건물이 상당히 많다. 규모면에서도 대형교회들이 많다. 붉은 벽돌 건물에 십자가가 달려 있는 교회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가 중동이 맞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 복장도 아랍 전통 복장이 아니었다.

브샤레마을의 한가로운 오후
▲ 브샤레 브샤레마을의 한가로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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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숙소를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저렴한 숙소를 물어봤다. 가르쳐 주는대로 갔더니 이미 방이 다 찼단다. 큰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조금전 저렴한 숙소를 가르쳐줬던 젊은 사람이 차를 끌고 지나가다  숙소를 못찾은 우릴 보더니 타라고 했다. 다른 곳을 알아봐주겠다고 데리고 갔는데 그곳도 이미 꽉 차서 다음날이나 빈방이 나온다고 했다. 다음날 빈방을 주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왔다. 하루저녁 묵을 일이 걱정이었다. 차를 태워준 젊은이한테 지나가는 말로 '혹시 그대의 집에서 하루만 신세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어딘가에 전화를 해보더니 가잔다. 얏호!

그런데 차를 타고 한참을 언덕 아래로 가고 있었다. 경사가 심해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다음날 다시 숙소를 찾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올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어쨌든 경사가 심한 길을 한참 꼬불꼬불 내려가더니 어떤 집 앞에 선다.

그의 집이었다.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가 사는 외가였다. 한참 내려온 이 집 아래로도 계곡은 더 이어졌다. 이 집은 계곡의 중간쯤에 위치한 집이었다. 집은 시원했고 마당엔 소파와 간이의자 몇 개가 있었다. 할머니와 젊은 여인, 그의 딸로 보이는 서너살 돼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매우 반갑게 맞아주었다. 포옹을 하고 볼을 비비는 인사였다. 어색했지만 싫진 않았다.

민박했던 '지하드'네 마당에 있던 청포도.너무 싱그러워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 청포도 민박했던 '지하드'네 마당에 있던 청포도.너무 싱그러워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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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사를 나누면서 간단한 소개를 했다. 마당엔  탐스럽게 주러주렁 달린 청포도가 마치 지붕처럼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이것저것 간단하게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우리를 데려간 젊은 청년은 '지하드'라는 이름의 대학생, 할머닌 지하드의 외할머니로 9남매(7녀 2남)를 두었다고 했다. 젊은 여인은 지하드의 이모(8번째) 리마(Rima)이고 여자아이는 리마의 딸이었다.

언어는 좀 복잡했다. 3가지 언어가 섞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랍어를 주로 사용하며 아주 간단한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리마는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사용했다.

마을 위쪽에서 바라본 브샤레의 노을 -마치 불타는 듯한 풍경이다
▲ 브샤레계곡의 노을 마을 위쪽에서 바라본 브샤레의 노을 -마치 불타는 듯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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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곳이 생겼다는 안심과 함께 이런 저런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을 때, 점심을 먹으란다. 미안했지만 배가 고픈 상태라 염치불구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들의 전통빵(흐베츠)에 껍질안깐 꼬투리풋콩 볶음, 찐감자 으깬것, 올리브장아찌, 가지볶은것, 치즈 등을 싸먹는 것이었다. 생오이와 생파도 그냥 날로 먹었다. 게다가 Arabic 술까지 (청포도로 담은 술 알콜 40도짜리다) 겉으로 봐서는 한국의 암바사같은 하얀 탄산음료처럼 보이는데 향이 독특했고 굉장히 독했다.

왼쪽은 개암나무고 가운데는 천도복숭아다. 레바논에 와서 보는 허수아비가 정겹다
▲ 샐림 과수원의 풍경 왼쪽은 개암나무고 가운데는 천도복숭아다. 레바논에 와서 보는 허수아비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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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아들인 샐림(Salim, 다섯째)의 안내로 과수원구경을 했다. 온갖종류의 과일이 신선하고 상태가 매우 좋아 보였다. 천도 복숭아도 있고 사과랑 복숭아 청포도 호두등이 똑같았다. 인상적인건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호두나무만큼 키가 큰 개암나무가  있다. 열매생김은 똑같았다. 깨서 열매를 먹었는데 아주 고소했다.

또하나 인상적인건 뽕나무 오디였다. 우리의 오디는 작은 편인데 레바논 오디는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 만했다. 특히 물이 많아 스치기만 해도 물이 줄줄 흘러, 마치 핏물 떨어지는 것같아 보기엔 섬찟한데 맛은 일품이었다. 신맛은 없고 단맛이 강해 갈증을 해소시키는데도 그만이었다.

샐림네 과수원의 과일은 굉장히 신선하고 때깔이 곱다. 아침에 이상한 냇개가 나서 보니 계곡 건너편 농원에선 농약을 치고 있었다. 샐림은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했다.
▲ 샐림과수원의 풍경 샐림네 과수원의 과일은 굉장히 신선하고 때깔이 곱다. 아침에 이상한 냇개가 나서 보니 계곡 건너편 농원에선 농약을 치고 있었다. 샐림은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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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가 흔해서 길거리에서 쥬스를 만들어 파는 곳도 많고, 잼으로도 만들어 파는 모양이다. 이것저것 따주면서 먹어보란다. 점심 잔뜩 먹고 배가 부른데도 주는대로 받아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배는 터질듯 부르고 마음은 행복했다.

지하드네 집에서의 식사-왼쪽은 아침식사(오디,치즈,전통방 흐베츠에 얀념을 해서 구운 빵), 오른쪽은 점심식사-흐베츠에 채소 또는 간단하게 조리한 음식을 넣어 돌돌 말은 것과 한잔의 콜라-남자나 여자나 아이 어른 모두 이것 1개가 한끼 식사다. 엄청 간단하기도 했고 보기보다 양이 많아서 하나를 다 먹기에 부담스러운 감도 있으나 맛있어서 다 먹었다
▲ 소박한 식사 지하드네 집에서의 식사-왼쪽은 아침식사(오디,치즈,전통방 흐베츠에 얀념을 해서 구운 빵), 오른쪽은 점심식사-흐베츠에 채소 또는 간단하게 조리한 음식을 넣어 돌돌 말은 것과 한잔의 콜라-남자나 여자나 아이 어른 모두 이것 1개가 한끼 식사다. 엄청 간단하기도 했고 보기보다 양이 많아서 하나를 다 먹기에 부담스러운 감도 있으나 맛있어서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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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지하드의 외할머니와 이모한테 마사지(?)를 해주었다. 마사지라고 해봐야 우리네가 흔히 하는 어깨 풀어주기, 발바닥 눌러서 피로 풀어주기 정도의 간단한 것이었다.

다음날 계획대로 빈방이 난다던 숙소 바우어 하우스로 짐을 옮겼다. 이 호텔은 지하드의 막내 외삼촌 토니(Tony, 아홉째)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세다르에서 바라본 석양 - 용광로에서 녹고 있는 쇳물처럼 저녁해가 붉게 빛나고 주변풍경까지도 온통 붉은 색이다.
▲ 세다르의 석양 세다르에서 바라본 석양 - 용광로에서 녹고 있는 쇳물처럼 저녁해가 붉게 빛나고 주변풍경까지도 온통 붉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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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다르(Cedres)에도 갔다. 세다르는 레바논 국기에 나오는 삼나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삼나무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브샤레에서 산꼭대기쪽으로 8K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교통편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가진 게 시간인데 급할 것도 없었다.

두어 시간은 걸린 듯 했다.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경치는 죽여주는 맛이다. 협곡을 끼고 들어서 있는 마을에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든 저녁풍경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중간에 총소리같은 게 들려서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올라갔다. 사실 꼭대기에 있는 삼나무숲은 크게 기대할 만한 게 못되는 듯 했다. 사람들이 왜 실망했는지 알 만 했다. 그러나 난 다르게 해석했다. 삼나무숲을 보러 가는 게 아니고 삼나무 숲까지 가는 길을 느껴 보는 곳이라고. 환상적이었다. 아름다웠다. 충분히 삼나무숲까지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산너머로 사라져가는 저녁해 주변에 구름이 깔려 있어 계곡이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 브샤레의 오후 산너머로 사라져가는 저녁해 주변에 구름이 깔려 있어 계곡이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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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날 딸들(지하드의 이모들)이 바우어 하우스로 찾아왔다. 잘가라는 인사와 함께 안마를 한번 더 받아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녀들을 침대 위에 엎드리게 하고는 어깨부터 발끝까지 성의껏 해주었다. 의사소통이 문제였다. 그동안은 지하드가 우리에겐 영어로, 그의 이모들에겐 프랑스어나 아랍어로 통역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지하드가 없다.

같이 온 샐림의 딸, 초등학교 4학년짜리 샤나가 통역을 해주었다. 레바논에선 학교에서 아랍어를 기본어로 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통역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자신의 고모들과 우리들 사이에서.

샤나의 마음씀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기에 장래, 10년 후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미스레바논이란다. 10년 후를 기대해봐야겠다. 마사지 후 샤나의 고모들은 만족해했다. 넘버8(8째 딸 리마)이 말하기를, 프랑스에서는 의사만이 이런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원해했다. 며칠 더 묵으면서 더해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봤다.

40대 전후 정도의 나이밖에 안된 여인들이 발꿈치는 많이 갈라져 있었고 어깨 근육이 많이 뭉쳐져 있었다. 만질 때마다 많이 고통스러워했으나 끝나고 나선 많이 좋아했다. 첫날 마사지 후에 숙면을 했다고 좋아했다.

레바논에 있으면서 마사지로 아르바이트나 해볼까?

밤이 늦어져 진한 포옹으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이렇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다음날 일찍 바우어 하우스를 떠났다. 브샤레를 떠나는 날이다. 아니 레바논을 떠나 시리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이 집 사장님이면서 지하드의 막내 외삼춘이이기도 한 토니는 아랍식의 커피를 대접해주고 자동차까지 불러서 트리폴리까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지금도 계곡에 있는 지하드의 외가 싱그런 포도나무와 농장이 눈앞에 선하다.


태그:#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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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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