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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은행나무 잎의 생김새만 보고 은행나무를 '넓은잎나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은행나무는 넓은잎나무가 아니라 바늘잎나무이지요. 추위가 끝없이 반복되는 빙하기를 견디어 내기 위해 은행나무는 환경의 변화에 맞게 모습이 변했어요.  잎뿐 아니라 씨앗도 환경에 맞춰서 바뀌었지요. 원래 은행나무는 씨방이 없고 씨앗이 될 밑씨가 그대로 밖에 드러나 있는 겉씨식물이에요. 겉씨식물은 원래 씨의 곁을 감싸는 말랑말랑한 과육을 만들 수 없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은행나무는 살구처럼 보이는 과육이 있어요. 좀 더 싹을 잘 틔우기 위한 노력이 준 선물이지요. -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 책> 속에서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 그리하여 가을을 더욱 가을답게 하는 은행나무를 넓은잎나무라고 알고 있었다. 당연한 듯 말이다. 또한 속씨식물로 알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겉껍질과 딱딱한 속껍질 속에 말랑말랑한 열매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데 소나무나 잣나무, 낙엽송 등과 같은 바늘잎나무란다. 게다가 솔방울이나 잣뭉치 같은 열매를 만드는 겉씨식물이라니. 의외다. '이제껏 내가 은행나무의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싶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고생대(약 5억 7천만  년 전~약 2억 4천만 년 전까지)에 나타나 쥐라기(약 1억 8천 년~1억 3천 5백 년 전까지)에 가장 많이 퍼져 오늘날까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꽃가루는 꼬리처럼 생긴 편모를 달고 있어서 벌이나 나비, 곤충 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동, 수정할 수 있다.  

은행잎에는 피가 빨리 돌도록 도와주고 혈관을 크게 해주는 성분들이 많이 들어있다. 균을 막아주고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성분도 많이 들어 있단다. 때문에 혹자들은 '나무에 있으면 임산물, 땅에 떨어지면 의약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유용한 은행나무는 고산지대를 제외한 전 세계에 산다.

덧붙이자면, 세계 전 지역에 사는 수많은 지역의 은행나무 잎 중 우리나라 잎이 가장 뛰어나 특별히 '고려은행잎'이라 부른단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은행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다른 나무는 몰라도 은행나무만큼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까지 말이다. 그런데 은행나무가 겉씨식물이라는 것, 넓은잎나무가 아닌 우리들이 흔히 침엽수라고 부르는 바늘잎나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책>겉그림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책>겉그림
ⓒ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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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좋아지는 나무책>은 은행나무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나무 170여종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대부분 은행나무 이야기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나무 상식과 우리 생활과 연결된 나무 이야기들. 각 나무의 특성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에 빛나는 나무'로 분류하여 들려준다.

각 나무이야기 끝마다 '조금만 더'란 부록을 실었다. 주인공 나무와 같은 종류지만 엄연히 다른 나무, 주인공 나무와 혼동하기 쉬운 나무이야기들이라 본문만큼 재미있고 유용하게 읽었다.

싸리나무 이야기에는 조록싸리와 참싸리를, 밤나무 편에는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 쌀밥을 뜻하는 이팝나무 편에서는 이름에 밥의 사연이 깃든 박태기나무와 팥꽃나무를 소개함으로써 식물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와 관심을 돋운다.

싸리나무로 회초리를 만든 진짜 이유는?

은행나무 이야기는 제3부 '가을에 빛나는 나무'편에 실려 있다.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은 ▲ 진달래꽃과 닮은 철쭉이 끈적끈적한 이유는? ▲ 팔만대장경의 60%는 산벚나무로? ▲ 때죽나무와 붉나무가 진딧물의 집을 만드는 진짜 이유는? ▲ 이팝나무가 풍년나무인 이유는?▲ 곤충들의 시선을 끌고자 잎을 마치 꽃처럼 하얗게 혹은 붉게 변화시킨 다음 수정이 끝나면 잎을 원래의 초록색으로 되돌리는 다래나무 ▲ 열매 표면에 하얀 소금이 생겨 '소금나무'▲ 참 많이 닮은 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 어떻게 구분할까? ▲ 싸리나무로 회초리를 만들어야(만들었던) 하는 진짜 이유는? ▲ 밥이 달리는 밥나무->밤나무▲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느림보나무 대추나무 등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나우송은 참 많이 닮아 구분이 힘들다. 메타세쿼이아의 잎은 마주나고 낙우송은 어긋난다.(고양시 고양중고등학교 11월)
 메타세쿼이아와 나우송은 참 많이 닮아 구분이 힘들다. 메타세쿼이아의 잎은 마주나고 낙우송은 어긋난다.(고양시 고양중고등학교 11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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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좋아지는 나무 책>이 진짜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단지 나무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생활과 연결 지어 들려준다는 것이다.

- 갈등(葛藤)이라는 말을 아나요? 한자로 '갈(葛)'은 '칡'을 가리키고,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켜요. 칡 줄기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꼬며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시계방향으로 꼬면서 자라요. 갈등은 칡과 등나무가 엉켜서 자라는 것처럼 복잡한 상태를 말해요.

- 명자열매를 옷장에 넣어두면 벌레와 좀이 생기지 않아요. 옛날에는 명자 열매를 좀약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 개암은 밤처럼 단단하고, 밤처럼 고소해요. 게다가 향도 근사해요. 개암향이 궁금하다면 헤이즐넛 커피를 떠올려보세요. 헤이즐넛 커피는 헤이즐넛 향을 넣은 커피로 향이 달콤하고 부드러워요. 헤이즐넛 향료가 바로 열대개암나무에서 뽑아낸 것이랍니다.

덧붙이면, 오동나무 잎에는 구더기가 생기지 않게 하는 성분이 있어서 옛사람들은 오동잎 몇 장을 화장실에 넣었다고 한다. 또한 치통을 가라앉히는데 쓰였던 산초나무로는 모기를 쫒았고 명자나무 열매 몇 개를 옷장 안에 넣어 좀과 벌레 발생을 방지했다고 한다.

이제는 재래식 화장실이 우리 생활에서 거의 사라져 오동나무 잎이 별 쓸모없어 보이지만 오동나무와 산초나무를 좀 더 연구해 본다면 자연과 우리 몸에 덜 해로운 살충제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좀약의 성분인 나프탈린(naphthalene)은 발암물질이다. 명자나무는 꽃이 예뻐 요즘 워낙 많이 심는다. 이런 명자 또한 방향과 방충제로 활용해 봄직하다.

'잠자는데 귀신같다' '자귀 손잡이로 쓰이는 나무다'에서 나무이름이 유래했다는 자귀나무잎
 '잠자는데 귀신같다' '자귀 손잡이로 쓰이는 나무다'에서 나무이름이 유래했다는 자귀나무잎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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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만난 참 아쉬운 이야기 하나.

'구상나무는 '열매가 하늘을 보는 나무'라는 뜻이에요. 열매를 뜻하는 한자 구(毬)와 위를 뜻하는 한자 상(上)을 더해 만든 이름이지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저절로 자라는 소중한 특산식물이에요.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구상나무를 '코리안 퍼(Korean fir), 즉 '한국 전나무라고 불러요. 구상나무는 한라산, 덕유산, 지리산과 같이 아주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어요.…하지만 구상나무를 우리나라 나무라고 주장할 수 없어요. 외국에서 구상나무를 좀 더 멋진 식물로 새롭게 만들어서 특허 등록을 해버렸거든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의 품종이라 특허 등록 대상이지만, 특허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서 비싼 돈을 주고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 책속에서

구상나무는 소나무, 전나무 등과 같은 바늘잎나무이나 감촉이 매우 부드럽고 위를 보고 열리는 열매도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런 구상나무를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무 전체 모양이 단정하고 세련됐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하여 서양에서 정원수나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크리스마스트리는 모두 구상나무.

우리의 특산식물인 이 구상나무가 국외로 나간 것은 대략 100여 년 전. 우리가 특산식물의 개념을 전혀 모르고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할 때 외국인들이 가져가 자신들의 나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구상나무뿐일까? 헤아릴 수조차 못할 만큼 수많은 우리의 특산식물들이 외국으로 나가 개량, 다시 우리가 수입하는 실정이란다.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 책>은 이처럼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한그루와 관련된 참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쳤던 나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책 내용에 비해 책표지가 좀 어린듯하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들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온 가족이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 책> 아쉬움

며칠 동안 나무에 푹 빠지게 한 책이다.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알게 하는 나무와 풀, 자연 생태계에 관한 책은 몇 권을 읽어도 늘 새롭다. 나무(식물)와 자연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아쉽다. 책을 읽는 동안 '편집자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훨씬 좋았겠는데? 이 사진은 왜 이렇게 넣었지? 차라리 넣지 말지' 이런 생각들 하게 하는 부분이 제법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옥의 티'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가. 

조팝나무 관련 사진 중 열매와 잎 사진 설명이 바뀌었다. 비슷한 경우가 자귀나무 관련사진. '줄기'라고 설명된 사진은 꽃을 틔우기 전 봉오리 맺은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처럼 봉오리 아래를 이 식물의 줄기라고 할 수 있을까? 비슷한 경우가 좀 더 많이 보인다. 조금만 신경 쓰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실수다.

산딸나무 관련사진 '줄기' 사진은 부적합해 보인다. 산딸나무의 줄기나 수피 부분을 찍은 것이 아니라 나무 전체 모습을 찍은 것 같은데, 나무는 전혀 짐작할 수없이 햇빛이 들지 않는 숲속을 찍은 것처럼 까맣다. 수국 관련 사진도 줄기는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아쉬운 대로 파악조차 힘든 사진들이 좀 많다.

어떤 나무는 나무 전체 모습을 넣었고 어떤 나무는 우리들이 흔히 수피라고 부르는 나무껍질 부분 사진을 실었다. 감나무나 모과나무처럼 굵게 자라고 나무둥치 자체가 아름다운 나무들은 수피라고 부르는 줄기 부분 사진을 넣으면 좋을 것이고, 조팝나무나 산딸기, 등나무 등처럼 휘어지는 줄기를 가진 나무들은 전체 모습을 넣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이 책의 경우 이런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나무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나무 전체 사진들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제일 아래 왼쪽 사진 설명이 틀렸다.
 제일 아래 왼쪽 사진 설명이 틀렸다.
ⓒ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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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식물들이 있다. 이왕 넣는 설명이라면 구분해주는 것이 훨씬 좋겠다 싶다. 그리고 우리들이 흔하게 먹는 과일나무의 경우 어린 열매 사진을 넣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각 나무마다 줄기/잎/꽃/열매를 모두 넣은 것은 좋아 보인다. 아니 이와 같은 책에는 꼭 들어가야 할 사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무 이야기를 읽으며 그 나무의 생김새를 쉽게 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또 내가 알고 있는 나무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의 이해와 관심을 위한 참고자료 보다는 형식적으로 넣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조금만 신경 썼다면, 독자의 입장을 조금만 헤아려 봤다면 이런 아쉬움은 거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야기 끝마다 같은 종류 다른 나무들, 혼동하기 쉬운 나무들 사진을 넣은 것은 좋은데, 어떤 사진들은 구분이 쉽지 않다. 역시 신경 쓸 부분 같다. '지금처럼 사진을 작게 넣지 말고 전체 사진을 넣어 부분 설명을 한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미흡한 사진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또, '-에요'로 계속 쓰다가 갑자기 '-다'로 쓰는 부분도 있다. 오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용이 썩 충실한 책이라 이런 부분들이 개선, 나무랄 데 없는 책으로 재판되기를 바라는 애정의 마음만으로 덧붙인다.

덧붙이는 글 |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 책|박효섭|다른세상|2009.8|1만 8천원



나무가 좋아지는 나무책

박효섭 지음, 다른세상(2012)


태그:#나무, #자연, #광릉수목원, #은행나무,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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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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