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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빛깔로 유혹하는 꽃무릇. 남도의 초가을을 대변한다.
 선홍빛깔로 유혹하는 꽃무릇. 남도의 초가을을 대변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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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풍경에 색깔을 입힌다면 누런색을 칠해야 할 것 같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이 색깔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또 형형색색의 단풍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남도의 초가을 풍경에 선홍빛깔 하나가 더해졌다. 껑충한 연초록 꽃대 끝에 왕관처럼 얹혀진 붉은 꽃술의 꽃무릇이다.

꽃무릇 군락지로 가본다. 남도의 꽃무릇 군락지는 영광과 함평 그리고 고창이 꼽힌다. 그 중에서도 고찰 불갑사가 있는 영광으로 가본다.

꽃무릇은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잎은 꽃을, 꽃은 잎을 서로 그리워한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상사화(相思花)라고도 한다. 본디 상사화 본래의 원종이 있고, 그 방계로써 꽃무릇과 석산화, 개상사화 등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루뭉술하게 상사화 또는 꽃무릇이라고 부르고 있다.

꽃무릇은 해마다 이맘때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소재다. 이 꽃의 생김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애틋해진다. 금세 선홍빛 꽃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한두 송이씩 피어난 꽃무릇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세 마음 한 구석을 애틋해진다.
 한두 송이씩 피어난 꽃무릇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세 마음 한 구석을 애틋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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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 고창 선운사가 대표적이다. 모두 우리나라 서남해안이고, 또 절집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너무도 유혹적이어서 그다지 절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유독 절집에 꽃무릇이 많다.

여기에는 여러 설이 있다. 절집을 찾은 아리따운 처녀에 반한 젊은 스님이 짝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 피를 토하고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출가한 스님을 그리던 처녀의 혼이 붉게 타오른 것이란 전설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꽃무릇 뿌리의 독성에 이유가 있다. 절집을 단장하는 단청이나 탱화에 이 꽃무릇의 뿌리를 찧어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 필요한 꽃무릇을 절 주변에 심었고, 이것이 번져 군락을 이룬 것이란다. 최근엔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지자체에서 부러 심기도 했다.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때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법성포로 들어와 처음 세운 절이다. 요즘 여기저기 공사중이어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그러나 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꽃무릇은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다.

불갑사는 대웅전 뒤편과 저수지 주변은 물론 절로 들어가는 길에도 활짝 피었다. 흡사 빨강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불갑사는 대웅전 뒤편과 저수지 주변은 물론 절로 들어가는 길에도 활짝 피었다. 흡사 빨강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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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불갑사 대웅전 뒤쪽 저수지 주변이 꽃무릇 감상 포인트다. 저수지에 접한 산비탈에 꽃무릇이 가득 피어 장관을 이룬다. 저수지 물에 반영된 나무와 꽃무릇의 붉은 색감이 가을 분위기를 한껏 뽐낸다. 사진작가들은 사찰의 흙담이나 저수지의 잔잔한 물을 흐릿한 배경으로 처리해서 멋진 사진을 얻기도 한다. 저수지 주변의 호젓한 오솔길은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인기다.

불갑사가 있는 불갑산은 평소에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초가을 산행코스로도 좋은 이유다. 또 산을 넘어가면 용천사에 닿는다. 함평 용천사도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불갑사와 용천사는 따로 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곳이다. 사실 불갑사와 용천사는 영광과 함평으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을 뿐,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산의 이쪽과 저쪽 자락이다. 불갑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용천사까지 넘어가는 길은 꽃무릇을 보면서 등산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꽃무릇 군락지는 용천사에서도 만날 수 있다. 꽃무릇 포인트는 사찰 위 산책로 주변이다. 푸른 왕대 밭 아래에 융단처럼 깔린 꽃무릇 군락이 압권이다. 용천사 주변도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용천사를 중심으로 야트막한 산책로가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으면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공원 진입로와 산책로 주변에 설치된 크고 작은 돌탑과 장독대, 구름다리도 볼거리다.

지난 14일 용천사를 찾은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꽃무릇을 살피고 있다.
 지난 14일 용천사를 찾은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꽃무릇을 살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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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꽃무릇이 활짝 피었으니 축제가 빠질 수 없다. 꽃무릇축제가 불갑사에서 열린다. 18일 시작된 축제는 20일까지 계속된다. 불갑산 연실봉 정상까지 가을정취를 함께하는 꽃길 등반대회를 비롯 관광객 노래자랑, 푸른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와 공연, 전시회가 마련된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해볼 수 있는 소원성취 풍등 띄우기와 짚공예 체험 등도 준비된다. 용천사 꽃무릇축제는 신종플루 확산을 우려해 취소했다.

불갑사 주변엔 가볼만한 곳도 많다. 불갑사에서 가까운 내산서원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일본에 주자학을 전파한 수은 강항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불갑저수지 수변공원도 들러볼 만하다.

또 법성포에 가면 좌우두마을이 있다.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첫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성인 마라난타가 불법을 갖고 들어온 포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곳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 가면 간다라풍의 건축물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인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본 일몰. 하루 일과를 마친 해가 서해 칠산바다로 넘어가고 있다.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본 일몰. 하루 일과를 마친 해가 서해 칠산바다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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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백수해안일주도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백수해안일주도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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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에서 그리 멀지 않는 백수해안도로도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아름다운 도로다. 법성포구에서 842번 지방도를 타고 산길을 넘어가면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난다.

여기가 백수해안도로의 시작이다. 원불교 성지가 있는 길용리에서 백수읍 백암리까지 19㎞에 이르는 길이다. 영광을 가장 영광스럽게 해주는 도로다. 도로 곳곳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어서 차분히 해안절벽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해로 떨어지는 일몰도 해안도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영광은 또 종교의 성지다. 법성면에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가 있고, 백수읍에 원불교 성지가 있다. 염산면 설도항에 가면 기독교인 순교비가 있다. 또 설도항은 천일염과 젓갈로 유명한 곳이다. 법성포는 영광의 대표 브랜드인 굴비의 주산지다. 추석을 앞둔 요즘 법성포에 가면 굴비를 말리고 엮는 장면 흔하게 볼 수 있다. 영광 여기저기 돌아보면 하루해가 짧게만 느껴진다.

영광엔 멋진 곳이 많은 만큼 맛있는 음식도 가득하다. 먼저 영광과 굴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굴비를 주재료로 한 식당이 여러 군데 있다. 굴비백반에서 굴비매운탕, 굴비정식까지 식단이 다양하다. 가격대도 여러 가지다. 굴비의 본고장에서 맛보는 굴비음식, 영광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모싯잎송편도 별미다. 보통 송편의 두세 배 크기로 빚은 것인데, 옛날 일꾼들이 먹었다고 해서 '머슴송편'이라고도 한다. 모싯잎을 삶아 섞은 떡맛이 일품이다. 영광엔 전문적으로 모싯잎송편을 만드는 집이 60여 곳에 이른다. 값도 25개에 1만원 정도로 싸다. 간식거리로 그만이다. 군데군데 떡방앗간 있고, 버스터미널 부근에 떡집이 여러 군데 있다.

일반 송편보다 두세 배 큰 '모싯잎송편'. 영광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일반 송편보다 두세 배 큰 '모싯잎송편'. 영광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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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법성포의 자연이 만드는 '영광굴비'. 법성포구에선 서해의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영광굴비를 볼 수 있다.
 영광 법성포의 자연이 만드는 '영광굴비'. 법성포구에선 서해의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영광굴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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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꽃무릇 군락을 볼 수 있는 불갑사는 서해안고속국도 영광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23번국도 타고 함평방면으로 가다 보면 불갑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바로 불갑사다. 영광읍내에서 불갑사 이정표도 잘 돼 있다. 영광읍터미널에서 불갑사 가는 군내버스도 하루 10여 차례 다닌다. 소요시간은 20분.



태그:#꽃무릇, #불갑사, #용천사,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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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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