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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수 이삿짐센터 일용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이삿짐센터 노동자에겐 물 한 모금의 배려가 간절하다.
 이삿짐센터 노동자에겐 물 한 모금의 배려가 간절하다.
ⓒ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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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플라스틱 박스, 바구니, 담요 등을 챙긴다. 여기저기 흠도 나고 낡은 자재들이지만 나의 하루를 거들어 줄 소중한 녀석들이다. 허겁지겁 자재들을 싣고 사무실을 나와 이사하는 집으로 출발한다.

5톤 차 안에는 남자 셋, 여자 한 명이 타고 있다. 대부분 인맥으로 찾아오는 일용직들이다. 사실 직원들도 4대 보험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고정수입이 있다는 것만 빼면 거의 일용직과 별반 다름없이 일한다. 그럴 바에야 여기저기 소개받아서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게 낫다는 게 이 업계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러니 이삿짐업계에 뜨내기가 많을 수밖에.

이사하는 집에 도착하면 자재들을 올리고 먼저 장롱 등 가구 속에 있는 잔짐들을 빼낸다. 그리고선 본격적인 포장이 시작된다. 책은 책끼리, 옷은 옷끼리, 그릇은 그릇끼리, 이불은 또 이불끼리 따로 담으면 박스만 족히 50개가 넘는다.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일일이 매직으로 물품을 표시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잔짐들을 빼내는 사이사이 의자와 같은 중간짐들을 섞어 내놔 트럭 안에 싣고 마지막으로 장롱, 냉장고 등 큰 짐들을 빼내면 이사 갈 준비가 끝난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속옷이 젖는 건 예사다. 집주인들이 물이라도 잘 챙겨주면 좋은데, 좋은 데 사는 사람들은 힘든 일을 안 해봐서인지 '일하는 사람이 힘들 거다'란 생각을 잘 못한다. 그러니 물 좀 달라고 하면 1.5리터가 아닌 0.5리터를 사오지. 미지근한 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갈증. 그 갈증을 일반인들은 모른다. 앞으로 이사할 때면 물 네 통만 얼려놓길 부탁드린다.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아침도 굶은 상태로 이삿짐을 싸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그렇다고 바로 밥을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우선 이사 갈 곳에 도착해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종종 점심을 챙겨주는 집주인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사무실에서 받은 식대는 그대로 반납한다. 돈 '1만 원'에 울고 웃는 것이 이 이삿짐 업계이기 때문이다. 사장들은 일당 외에는 어떤 비용도 더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감춰서 마음 불편한 것보다 그냥 반납하는 게 속 편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짐을 풀기 시작한다. 짐 쌀 때는 꼼꼼한 주부가 있는 집이 약간 더 힘들다. 같은 공간이라도 다른 곳에서는 박스 하나면 충분한데 이런 집은 빼 내도 빼 내도 짐이 계속 나와 여섯 박스를 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주부들은 다른 사람이 정리하는 게 성에 안 차 "놓고만 가라"고 해서 짐을 풀 땐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 할 일이 영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새 집에 맞게 가구들을 배치하고 50여 개의 박스를 다 풀어서 물건들을 제 위치 찾아 넣어 놓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부엌은 주부 마음에 들게 깔끔하게 해야 한다. 이삿짐센터 노동자들 하는 얘기로, 남자들이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 아줌마가 잘 해서 주부 마음에 들어야 대접이 후하다.

짐을 다 풀고 나면 드디어 이사 비용을 받는다. 그런데 처음에는 호인처럼 잘 대해주다가 돈을 줄 때는 가구에 흠집이 났다느니 인터넷에 올리겠다느니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럴 때면 사무실은 중간에서 쏙 빠지고 일용직들이 해결하게 놔둔다. 이사비용을 받아와야 우리가 일당을 받는다는 걸 빌미로 맘 편히 배짱을 튕기는 거다. 고의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 "소비자 고발하겠다"고 하면 "하세요, 우리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운송업이어서 A/S랑 상관없어요"라고 말은 하지만, 서글퍼진다.

그래도 집 주인이 화내는 건 웬만하면 참는데, 주로 업주와 트러블이 생긴다. 견적을 잘못 내 5톤이라고 보내놓고 막상 보니 6톤이 넘어 저녁 8~9시까지 일하고 사무실 눈치 보느라 밥도 못 먹고 들어가면 밥값도 안 주면서 "왜 밥 먹고 오지 그랬냐"고 얄밉게 말만 건넨다. 일이 일찍 끝나 4~5시에 사무실에 들어가면 아침 7시부터 일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일당이 아까워 자재 배달이라도 시키려고 하는 사장들도 많다.

사다리를 써야 하는데도 돈 때문에 안 쓰는 집도 있는데, 그런 경우도 우리가 기계보다 못한가 싶어서 서럽다. 그것도 견적 내는 사장이나 직원이 "사다리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건비 더 쳐 줘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무조건 싸게 견적내서 실적만 올리려고 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돈 '1만 원'에 벌벌 떠는 곳이니 산재처리는 꿈도 못 꾼다. 다치면 대부분 "네가 알아서 고쳐라" 식이다. 미움을 사면 다음에 일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우리 일용직 인생이다. 이런 와중에도 사고는 늘 발생한다. 옛날엔 합판 붙인 가구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나무도 통으로 쓰고, 돌침대, 돌식탁처럼 갈수록 가구들이 무거워져서 혼자서 들기가 힘들다.

둘이 들려면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처음 보는 일용직들이고 초보들도 많아서 물건을 들 때 손발이 안 맞아 손이나 발을 찧는 경우가 많다. 뒷걸음질하다가 문턱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잘못해서 정강이라도 부딪히는 날에는 정말 죽을 맛이다. 큰 사고가 아니어도 손바닥은 전체가 굳은살이어서 곰발바닥 같고, 팔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영광의 훈장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가구에 흠집이 나는 등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흠집이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리려고 했던 것도 본전이 생각나 고쳐 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도 사무실에서는 일용직에게 50:50의 변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예전에 탑차 안에 옆으로 세워놓은 대리석 식탁이 쓰려지려고 해서 무의식중에 넘어지는 걸 막는다고 발을 갖다 댔다가 발을 내리찧은 적이 있다. "같은 브랜드로 사야겠다"는 집주인의 말에 이사비용 90만원을 그대로 남겨두고 돌아오는데, 아파서 절뚝거리는 다리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쫓아다니며 일을 해야 가정이 유지되는 이 일용직 생활.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우리가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는 날은 언제 오려는지.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서며 고단한 나의 일상에 해 뜰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노동세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삿짐센터, #노동자,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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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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