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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조원을 '4대강 삽질'에 투입하지 말고 다른 곳에 쓴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이 사업 때문에 지역에서는 SOC예산이 삭감되고, 취약계층 복지예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22조원보다 더 많은 돈이 더 투입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22조의 상상' 기획을 통해 4대강 예산을 '삽질'이 아니라 주택, 교육, 의료, 비정규-실업, 빈곤층에 투입했을 때 우리의 삶의 질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 상상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만 바뀌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합니다. 독자들의 제안이나 관련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4일 노동부는 미루고 미루었던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100만 해고설은 거짓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 37%만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리고 노동부는 동시에 '양치기 소년'이 된 셈이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등 고용문제가 심각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겨우 정부는 올해 말로 끝내려던 희망근로사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6월 어느 날 필자는 한 학회에서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실업보험제도 확대 및 장기실업자,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실업부조 제도 도입 방안과 재정 추계'라는 내용의 발표를 하면서 그 재원을 4대강 살리기 예산으로 충당하면 고용복지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8월 비정규법 개정 논란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온전한 정규직 전환에 따른 막대한 재원을 우선 4대강 살리기 예산을 전용해서 해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 실용'을 강조하면서 최근에는 지지율까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자감세와 4대강 살리기 그리고 서민 생활안정 대책이 동시에 전개되는 양상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또한 국가 재정적자 수준은 감당할 만한 것인지,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실용 행보와 친부유층 보수 행보를 동시에 진행하는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부자감세와 친서민 실용정책의 공존?

 

얼마 전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 방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08년 부자 감세로 집약되는 소득세,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감소 총 33조원을 메우기 위해 5조 원가량 적자를 줄이는 미봉책은 거의 모든 계층에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대운하 정책을 녹색뉴딜로 포장한 4대강 살리기 예산 22조 2000억원까지 감안하면, 국가 재정은 그야말로 위기국면이다.

 

1년 예산의 70% 가까이를 상반기 중에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에 기대한 만큼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추가 경기 부양책을 쓸 재원조차 마련하기 힘들다. 부자감세 2단계 대책 재검토 얘기가 나왔던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더구나 예산 조기 집행과 부자 감세의 여파는 안 그래도 어려운 지방재정을 파탄 일보직전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판국에 경기 부양 효과도, 고용 유발 효과도 크지 않은 4대강 살리기에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국민 경제 차원에서는 물론, 정권 안정 차원에서도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부자감세 기조(세수 감소)와 경기부양책(세출 증대)을 동시에 쓰면서 여기에 불요불급한 4대강 살리기 예산이 그대로 집행된다면, 한국 경제만 이상 호황을 구가하지 않는 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강남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자산 불평등의 확산과 극단적인 소득 양극화이다.

 

그럼 22조 2000억원 올바른 고용대책, 복지예산으로 쓴다면 어디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최근 경기가 반짝 회복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자·서민들의 생활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다. 또 위기국면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일시적 대책으로 최저임금 언저리의 한시적 일자리만 양산하는 정책으로는 고용위기와 소득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기에 제도개선을 통해 고용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4대강 예산이면 실업자 지원 개선 가능

 

먼저 실업자 지원 제도를 보자. 대표적인 것이 실업급여인데, 현행 실업급여는 이전 임금의 50%를 지급하고 있다. 이는 4인가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평균 임금 노동자의 경우 최저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급여수준이 70-80% 이상 되는 서구 복지국가들과 비교하여 볼 때도 한국의 실업급여는 매우 낮다.

 

미국에서 실업보험을 받지 못하는 경우 실직에 따른 소비 감소가 22%에 달하는 반면, 실업보험 수급자의 소비 감소는 6.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실업보험 프로그램의 소득대체율을 84% 이상-현행 소득대체율은 약 50% 수준-으로 증가시킬 경우에는 실업보험에 의한 소득만으로 실직 기간 내내 취업 당시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제도적, 구조적 서민 생활안정대책이다.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거나 반(半)실업 상태에 있는 일용직 노동자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빈곤의 통로인 영세 자영업자와 청년층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미약한 실업자지원제도를 유지한 채 한시적 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에서 벗어나 제도적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의 실업자 지원제도 개선을 위해 실업급여일을 60일까지 늘리고, 급여 수준을 60%로 높이고, 장기실업자와 자영업자들의 실직에 대해 실업급여를 제공한다면 최소 1조 3천억에서 최대 2조 2천억 정도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발적 이직자에 대해 실업급여를 지급할 경우 약 9800 억 정도가 더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서 실업부조에 필요한 금액을 정부 일반회계로 처리한다면 4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며, 나머지 1조 9000억원 정도의 고용보험 확대 예산은 보험료 인상과 병행해 일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 있다.

 

한시적 일자리 대책도 올해 말로 종료되면 내년을 기약하기 어려운데, 이같은 제도 개선을 통해 노동빈곤층의 확산을 막을 대책으로 22조 2000억원을 쓴다면 정부 일반회계로 모두 충당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7년에서 최대10년간 쓸 수 있는  예산이다. 구조적, 지속적 제도개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2년 이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드는 예산 5조원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는 '절반이 넘는 규모가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약된다.  비정규직 확산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① 생산성 저하와 이로 인한 저생산성 경제로의 구조화 ② 내수기반 침체와 안정적 성장기반 위축 ③ 노동소득 기반 붕괴와 양극화 심화로 요약될 수 있다.

 

비정규직 확산이 생산성 저하를 가져오면서 기업 수익률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경제의 성장기반도 축소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비정규직 고용확대는 내수침체, 세수감소, 사회보장지출 증대 등 전사회적 비용 부담을 증대시킨다. 아울러  비정규직 확산은 빈곤선을 넘나드는 노동빈곤층을 확대시켜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가는 사회적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악순환을 단절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와 악성 고용구조가 유사한 스페인에서 대규모 정규직 전환프로그램을 기간제 사유제한의 재도입, 불법파견 엄단의 조처와 함께 시행한 바 있다.

 

온전한 정규직 전환을 통해 생활불안정 계층을 대폭 줄이고 저소득층 생활안정과 내수촉진을 통한 경기회복에 주목할 시점이다. 2006년 시점에서 비정규센터 통계로 비정규직 841.4만 명(전체 노동자 1535만 명의 54.8%)을 OECD 평균 수준인 27.1%, 416만 명으로 425만 명(27.3%)의 비정규직을 온전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재정 투입을 한다면 소요되는 총 비용은 22조 40억원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기업에만 적용할 경우 1조가 조금 넘으며, 100인 이상 기업에 적용할 경우 2조 3000억원 정도 필요하다. 기간제한 2년으로 인한 해고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상시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2년 이상 비정규직을 모두(기간제 만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하는 데 5조원 가량이면 충분하다.

 

물론 정규직 전환프로그램에서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고 전적으로 정부 재정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의 고용안정세(또는 부담금) 부과를 통해 기업의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며, 정규직 전환을 않거나 추가 비정규직 고용을 남발하거나 외주,용역,파견 등 고용책임을 전가할 경우 고용안정세 부과요율 누증제를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한편으로 고용안정성에 기여한 기업에 대해서는 요율을 감축하고 고용안정세(부담금)을 주 재원으로 하는 고용안정기금을 통해 정규직 전환 비용의 20-50%를 지원하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따라서 위 정규직 전환비용의 일부만 재정으로 부담하면 4대강 예산 22조2000억원으로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이 안착할 5년 이상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벨기에 로제타 플랜에서 배우는 '청년실업' 해법

 

청년실업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적극적 고용창출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정책적 유인장치를 모색하는 방안으로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의 한국 적용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말 벨기에의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했다. 98년 졸업 후 6개월 이내 인원 13만3천명 중 7만2천명이 실업 상태라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99년 9월 고용부장관 온켈린스(Laurette Onkelinx)는 독자적으로 25명 이상 기업에 의무적으로 한 해 동안 1명을 청년실업자를 의무 고용하는 계획을 제출하였다. 당시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 영화가 청년 실업자인 로제타(Rosetta)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라서 로제타 플랜이라 이름 붙이게 되었다.

 

25인 이상 기업은 고용인원의 4%의 청년실업자를 추가적으로 의무 고용하는 방안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에게는 임금의 80%의 고용부담금 감축을 적용 받게 되는 유인책이 제시됐다. 이후 2000년 시행된 벨기에의 청년실업자의 의무고용제는 기업규모 기준 50인 이상, 3% 의무고용으로 하향되어 적용되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50명 이상 고용 기업은 고용인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노동자를 추가 고용하게 되었다. 

 

기업에 대한 유인책으로 사용자들은 고용 첫 해에 사회보장 부담금을 감면받고 이후 점차 감소되는 체계를 도입했다. 유인책과 함께 견인책도 마련되었다. 의무고용 할당량에 미치지 못할 때 1인당 벌금을 일정액씩 부과하게 만들었다. 최초 안보다 다소 완화되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도입되었다.

 

이 제도를 변형해서 100인 이상 기업에 5% 의무고용제를 도입할 경우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를 고용할 수 있다(2007년 기준).

 

14만명이라는 청년실업 의무고용으로 인한 고용가능 숫자는 청년실업자 층의 약 50% 수준이며, 넓은 의미의 청년실업 해결 대상층 70만 명의 1/5 수준이다. 이 때 의무고용 적용대상자는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정규직 채용을 기준으로 한다.

 

청년실업 의무고용을 위반한 업체에 대한 고용의무위반 부담금을 거둬 고용의무를 이행한 기업의 고용지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원과 벌칙의 병행 시스템은 최소한의 재원으로 청년실업을 최대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행정인턴, 교육인턴 등 최저임금 최단기 일자리만 양산하는 정책에 쓰이는 예산만으로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4대강 예산 전용 등으로 재원마련이 용이하다면,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측 유인을 높이는 방안으로도 설계하여 고용규모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2조 2000억원을 고용정책 예산으로 집행할 경우, 생활 불안정층의 생활개선과 함께 사회경제적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개별기업에 단기적으로 비용이 발생하지만, 내수 증대를 통한 부가가치 증대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더 큰 사회적 유익을 가져다 준다.

 

노동자, 서민의 생활안정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서민살리기 정책으로 22조원 2000억원의 예산을 고용복지대책으로 쓸 경우 긍정적인 사회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효과가 의문시되며 건설경기 부양으로 인한 자산 양극화의 심화 등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되는 4대강 살리기 정책을 포기하고, 나아가 부자감세의 기조를 변화시키며 진정한 서민 살리기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노동빈곤층을 위한 실업보험제도 전면 개편과 획기적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낮출 온전한 정규직 전환제도, 청년실업해결을 위한 의무고용제 도입이 가능하다. 그밖에 정리해고 등 극단적인 고용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시간단축 방식의 일자리나누기 사업을 지원할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병주고 약주는 서민 살리기 행보에서 벗어나 서민을 위한 실용정책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로 지속적 효과를 거둘 방안이 정책목록에 추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입니다.


태그:#4대강 , #22조 ,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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