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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의 책 <사는 즐거움>(뜰 펴냄)
 보경 스님의 책 <사는 즐거움>(뜰 펴냄)
ⓒ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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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혼자서 온다.
죽을 때에도 혼자서 간다.
괴로움도 혼자서 받는다.
윤회의 길도 혼자서 걸어간다.
사람에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이 네 가지 고독함이 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그렇습니다. 외로운 나날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 했습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고(苦)와 고(苦)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의 종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그 괴로움을 들여다보라."

보경스님의 말입니다. 그리곤 뜻밖에 장자(莊子)의 '낙출허(樂出虛)'를 빌려옵니다.

"마음을 비우면 즐겁다."

"절집 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

집착과 탐욕을 버린 부처님과 당신의 제자들은 항상 즐거운 자세로 살았답니다.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역시나 스님이 근거로 삼은 노자(老子)의 말입니다.

<사는 즐거움>(뜰 펴냄)을 함께 나누기 위해 문자로 설했습니다. 세상은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역설이지요. '절집 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일하는 즐거움'이 그 첫째입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고, '사람을 얻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베푸는 즐거움'을 얘기합니다. '비우는 즐거움'이 있고,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섯 가지 방편을 통해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겁게 잘 살다 가자는 겁니다.

"하늘과 땅을 덮고도 남으니
매일 매일이 다 좋은 날"

운문스님의 등신불전에 있는 말입니다.

보경스님이 출가한 송광사는 승보종찰입니다. 송광사에는 송광사만의 독특한 가풍이 있습니다. '목우가풍(牧牛家風)'이지요. 소를 치는 가풍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양떼를 몰고 가듯, 송광사의 스님들은 소떼를 몰고 갑니다. 소떼를 몰고 가듯 사람들의 마음을 몰고 갑니다. 소떼를 찾아 나섭니다. 잃어버린 소를 찾듯 자신의 마음을 찾아 나섭니다. 괴로움의 뿌리를 찾아 나섭니다. <사는 즐거움>을 찾아서 입니다. 대중을 위해서, 대중과 함께입니다.

하지만 중생 스스로 고통을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는 이적(異蹟)을 연출할 수 있을까요. 이 어렵고 고단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백 년 삼만 육천 일을
근심 아니면 병중에 있네."

옛 시인의 글입니다. 1년 365일을 100세로 계산하면, 3만6천500일이 됩니다.

'인생이 비록 백년을 산 데도 잠든 날과 병든 날과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사노니.' 우리 전통 단가 '사철가'의 부분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아프다'... 가슴을 파고드는 헤겔의 한 마디"

다들 중도와 실용을 얘기하지만 세상은 도리어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지고, 극락과 지옥만큼이나 즐거움과 괴로움은 간극을 넓혀갑니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내집 마련의 꿈을 도리어 어렵게 하고, 원주민들은 밖으로 밖으로 밀려납니다. 전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닫습니다. 자살률은 이미 OECD 국가 중 10년째 1등을 달리고 있습니다. 내집 마련의 어려움도 그러하고, 사교육비도 늘 그러합니다. 미래를 예비하는 저축률은 내년쯤이면 거의 영(0)의 수준으로 떨어질 형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일로 인한 고민은 항상 풀어야 할 숙제였던가 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든다. '인간의 역사는 아프다.'"

세상에 대한 스님의 연민입니다. 연대입니다. 스님은 절집에서 살아가지만 공론(空論)에 머물지 않습니다. 공론(公論)을 제시합니다.

"이 공공의 정신은 사사로움을 멀리함으로써 담보되는 것이다. 서로 나누어 함께 누리는 즐거움은 공평무사에서 나온다. 인간세에서 이보다 큰 즐거움도 드물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괴로워하는 동고동락이 즐거움의 절정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얘기합니다.

"동지에 밤이 가장 길다. 음의 기운이 가장 치성하다는 것은 사는 일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로 비유된다. 그런데 맨 아래 양의 효 하나가 자리 잡고 있으니, 아무리 밤이 길고 음이 강해도 저 깊은 땅 속에 양의 기운 하나가 생겨나고 있으니, 봄이 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동지를 '시작점'으로 여기는 것이다. 살다 보면 언젠가 인생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이것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온다.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잘 될 거라는 믿음을 버리면 안 된다. 희망을 가지라."

속세의 누구보다도 지독한 독서벽을 가진 문학 소년, 보경 스님

스님은 문학 소년입니다. 김지하 시인과 곽재구 시인을 지독히도 좋아하고, 일본 근대문학에 빠져 한때 헤어나지 못한 문학 소년입니다. 도처가 즐거움이요, 세상 어느 곳 부처님이 안 계신 곳 없듯, 오늘의 시(詩)가 곧 부처님 말씀입니다.

"바람이 부는 까닭은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미루나무 이파리 순천, 수만 장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자기 자신을 먼저 흔들 줄 알아야 한다고" (안도현, <바람이 부는 까닭은>)

이 시에 대한 스님의 해석을 볼까요.

"수행의 궁극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모든 생명들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의 삶과 다른 이들의 생활이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일으키는지를 살펴 깨닫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미루나무 이파리 한 장이 바람을 일으키듯이, 불자들의 자비심으로 세상을 맑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누는 기쁨입니다.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갑니다. <사는 즐거움>을 책으로 묶어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수행납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다짐인 셈이지요.

보경스님은 산속 절이 아닌 서울의 한복판 경복궁 옆 법련사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님 책들이 그러하듯 또 부처님 말씀 얘기이겠구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스님은 책날개에 '불서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2553년 전의 부처님 말씀을 오늘의 인문학으로 풀어놓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독서가 요청되겠지요. 스님은 속세의 누구보다도 지독한 독서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동서와 고금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결코 부처님 말씀에만 근거하지 않습니다.

"금생에 와서 읽는 책은 이미 늦다(書到今生讀己遲)"

소동파의 말입니다. 이 책의 속표지는 스님이 직접 붓글씨로 쓴 이 문장이 반기고 있습니다.

스님이 설하고 계시는 <사는 즐거움>을 제 말로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랐던 건 아닙니다. 믿음과 수행으로 다져진 깨달음을 어찌 제가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맑고 청안한 이 가을 이 책을 권합니다. 가장 편안하고 텅 빈 마음으로 <사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이제 와서 읽게 되는 보경스님의 책, <사는 즐거움>이 이미 늦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지요.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마법의 주문이 있답니다.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러면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이 또한 스님의 법문입니다. 읽는 즐거움입니다. 깨닫는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사는 즐거움'입니다.


사는 즐거움 - 절집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

보경 지음, 최재순 그림, 뜰(2009)


태그:#보경 스님,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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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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