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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9월의 첫날, 한강습지 탐사를 했다.

 

DMZ(비무장지대)에 있는 장항습지와 곡릉천을 둘러보고 교하초소에 올라 임진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한강하구의 습지는 4대강 정비사업이 이뤄지면 사라질 위기에 있는 습지들로서 한강 본래의 모습이 남아 있고, 비무장지대인 까닭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도 잘 보전된 곳이다. 생태답사가 활발해지면서 몇몇 민간단체를 통해서 일반인들도 비무장지대의 생태를 답사하는 길이 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유로 주변에 있는 한강습지 중 국내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지가 있는 고양시 신평동에 있는 장항습지가 생태답사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자유로를 따라 7.6km에 걸쳐 형성된 장항습지는 민간인들의 발길이 50여 년 동안 거의 닿지 않은 곳으로 단일 군락으로는 국내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생태해설가의 생태 탐방에 앞서 장항습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은 후, 장항 습지의 기운을 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삵과 고라니의 똥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버드나무 군락지에는 말똥게가 인기척에 놀라 발걸음이 분주하다.


 

버드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며 생태해설가의 설명을 듣는다.

 

조석의 영향으로 주기적으로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버드나무 군락지의 바닥은 뻘흙이다. 그럼에도, 나무뿌리가 썩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버드나무의 이파리를 먹는 말똥게 덕분이다. 버드나무 주변에는 수도 없이 많은 말똥게의 굴이 있었다. 서로 공생하는 것이다. 버드나무와 말똥게가 공생하면서 만들어놓은 버드나무 숲은 그들에게뿐 아니라 철새들에게도 서식처를 제공하고, 수많은 뭇생명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50여 년간 닿지 않은 곳이라 식생이 상당히 궁금했지만, 서울 근교인지라 식생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 흔히 봐왔던 강아지풀과 그령, 세모고랭이, 갈대 등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도심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마저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생태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어린 시절 그령을 묶어놓아 뒤따라오던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떤 날은 급한 일로 뛰어가다가 전날 내가 묶어 놓은 그령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천천히 버드나무 군락지를 지나 한강 모래사장에 섰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한강 모래사장이다. 정비가 된 곳에서는 모래사장을 볼 수가 없다. 모래사장을 따라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직의 콘크리트벽에 갇힌 물길, 유람선이 떠다니는 그 물길은 생명력을 상실한 물이다. 이렇게 모래사장이 있고, 모래사장에 또 수많은 생명의 흔적들이 있고, 철새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강이야말로 살아 있는 강이 아니런가?

 

영동대교가 생기기 전 지금의 청담동을 가려면 뚝섬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했다.

 

장항습지의 무성한 버드나무를 보니 그 시절 뚝섬에도 버드나무가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여름방학이면 광나루 근처의 한강에 나와 물놀이를 했고, 간혹 모래를 채취한 곳에서 익사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한강은 본래 모래사장이 넓은 곳이었던 것이다. 정비된 한강만 본 이들에게 한강의 모래사장은 생소하기만 할 것이다.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바라본 건너편 김포시의 한강 주변은 이곳과 확연히 달랐다.

 

고양시는 습지를 보존하려는 입장이고 김포시는 이미 개발을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이라 한강의 이쪽과 저쪽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물줄기는 하나인데 강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개발에 몸살을 앓고, 다른 한쪽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반자연적인 것인가 싶었다.


 

버드나무 숲 아래 물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말똥게가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단일 군락으로서는 국내 최대규모의 버드나무 군락지인 이곳, 뭇생명과 철새의 낙원인 이곳도 4대강 정비사업이 진행되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22조 2000억 원 이상의 국민의 혈세로 4대 강을 살리는 일이 아닌 죽이는 일을 하려고 한다. 습지에 기대어 사는 생명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한강의 본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지키는 것이 자연과 공생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4대 강 정비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히 토목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전국토가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땅에 깃대어 사는 생명, 그것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이 땅에서 볼 수 없다. 단지 경제논리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녘땅이 임진강 강너머로 보인다.

 

비무장지대인지라 모래사장과 강 중간에도 많은 토사가 쌓여 있다. 홍수에 북한에서 흙이 많이 떠내려온 이유도 있다지만 그곳은 겨울이면 철새들의 쉼터란다. 어린 시절 한강의 추억을 가진 분은 옛날 한강도 저랬다고 말한다. 유람선이나 큰 배는 다닐 수 없겠지만, 저것이 생명의 강이다, 생명을 품은 강이 아닐까 싶다.


생명의 보고인 한강 습지, 그곳을 돌아보고 나는 왜 그곳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몸으로 느꼈다.


태그:#한강 습지, #4대강 정비사업, #말똥게,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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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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