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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가슴 아픈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한 지 반년이 넘어 일곱 달이 지났다. 그 추운 신년 벽두인 지난 1월 20일 새벽, 전쟁을 방불케 하는 무리한 진압 작전이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많은 부상자도 속출했다. 하지만 7개월째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있는 고인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태이다.

 

지난 21일 서울광장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분향소 주변에서는 용산철거민 장례와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시위가 있었다. 이들은 '용산참사 희생자도 장례를 치르고 싶다', '숨기고 싶은 진실, 보이지 않는 아픔, 용산의 눈물, 이명박 정권의 희생자를 잊지 말자'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통해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대통령 유족 앞 사죄, 진압 책임자 처벌, 구속철거민 석방, 살인개발 중단 및 철거민 생존권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매일 저녁 용산참사 현장에는 추모미사와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시청 앞 철야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인권과 민주주의가 다섯 분의 시신과 함께 냉동고에 얼어붙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망루 안에서 끔직한 폭력이 자행됐고, 유족 동의 없이 시신을 빼돌려 강제부검까지 자행했다면서 울분을 통하고 있다. 7개월이 지난 동안 상복을 벗지 못한 유족들은 "살려고 망루에 올라 저항하는 철거민들을 죽여야만 하는 세상"이라면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모르쇠로 일관한 잔인한 이명박 정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16일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천정배 민주당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김 후보자를 두둔하는 글을 남겼다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법무부장관시절 법무실장으로 김 후보자와 손발을 맞췄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아는 남자 김준규는 유연하고 소통이 능하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시쳇말로 쿨한 검사였다'고 추겨 세웠다. 당시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 변칙증여 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터라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인터넷 누리꾼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야당의원들까지도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천정배 의원의 글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김 후보자를 두둔한 것은 맞지만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용산참사 수사기록에 대한 중요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 발언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천 의원은 김준규 후보자에게 인사청문회에서 딱 한 가지만 약속해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그것은 바로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항간에 검찰 수사기록에 이명박 정권과 경찰을 결정적으로 곤혹스럽게 할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면서, 이런 의심과 의혹을 밝히기 위해 김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되면 용산참사 수사기록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천 의원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는 검찰의 중립성과 권위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는 후배 검사들의 자존심을 살려줄 수 있는 결단이 될 것이라고도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 김준규 후보자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천 의원이 말한 유연한 소통과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쿨한 검사인 그가 검찰총장 업무에 들어갔다. 이제 3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밝혀야 한다. 지금까지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뒤집을 만한 중요한 단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용산참사 관련 구속 철거민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변호인단에 의하면 수사기록 1만여 쪽 중 1/3에 해당하는 3000여 쪽을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용산참사 변호인단이 재판 도중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면서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구속된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은 구속 시한이 2개월 더 연장됐다. 그는 이미 한 달 전에 출소를 했어야 했다.

 

현행법상 구속기한이 6개월을 넘을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 변호인단이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하면서 재판을 기피한 기일을 구속일로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속 2개월 연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호인단은 재차 검찰의 수사기록을 촉구했다. 급기야 재판부가 수사기록 공개를 명령했으나 아직 검찰은 법원의 명령 조치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미공개 3000여 쪽의 자료에는 진압 당시 경찰 핵심라인인 김석기 전서울경찰청장, 경찰특공대,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의 진술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결과를 뒤집을 만한 단서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 민주국가에서 검찰이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 검찰수사 발표대로 원칙에 따른 정당한 공무집행과 정당한 진압이었다면 공개를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제 검찰은 수사기록을 감추지 말고 공개해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시절에도 불리한 사건들을 숨기려고 했다. 경찰의 고 박종철 열사 고문사건이 그랬고, 권인숙 성추행사건도 그랬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모두가 낱낱이 밝혀졌다. 무엇이든지 영원히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면서 검찰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반드시 미공개 수사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수사 은폐 당사자들이 훗날 국회청문회에 서서 가중 처벌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태그:#용산철거민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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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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