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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북한이 최고위급 특사조문단을 파견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다. 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파탄지경까지 치달았던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상에만 그칠 줄 알았던 북측 조문단은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기다리다가 청와대를 예방,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하고 돌아갔다. 이로써 북측은 남북대화 의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남과 북의 화해와 교류는 멀리는 통일을 달성하여 민족사의 웅비를 기약하는 밑거름이 될  터이고 가까이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게다가 애타게 순서를 기다리며 늙어가는 8만 5천 이산가족을 생각할 때 이것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당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역사관과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북화해를 쌍수로 환영해야 할 일이다.

 

DJ 계승하자면서 남북대화에 딴죽 걸다니

 

그런데 입에는 통일과 화해를 담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남북이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정체불명의 수구단체들이나 조갑제 류의 사람들을 거론하지는 않으련다. 어느 사회든지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연합뉴스>라는 멀쩡한 언론 상호를 가지고 있는 세력들이 남북화해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실태는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이 남북화해에 반대해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것 같다.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의 유지를 계승하자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화해에 구정물을 끼얹는 기사를 생산하고 있으니 이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가 없다.

 

"북한·현대 간 합의사항 이행을 비롯해 남북 당국이 만나서 풀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는 마당에 북한 정권에서 대남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이 오는 것이다. 이런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서울에 와서도 굳이 남측 당국과의 접촉을 외면한다면,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조선> 8월 20일 자 사설 '북 조문단의 서울 일정을 주목한다' 중에서)

 

<조선>은 처음 북측 조문단이 남한 당국자를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한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이 내심 원했던 바라고 본다. 그래서 미리 그들이 '서울에 와서도 남한 당국과의 접촉을 외면한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고  못박아 두었다. 그래도 <조선>은 만에 하나 북측 조문단이 남한 당국자를 만날 경우에 대비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남북 당국 간 접촉이 이뤄질 경우, 정부는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할 일이 아니다. 이 접촉이 본격적인 남북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지려면 상호 불신부터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돼야 근본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같은 사설)

 

<조선>은 문상 온 조문사절단에게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미리 요구해 놓았다. 물론 <조선>은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결국 북측 조문단이 남한 당국자를 안 만나면 남북 대화를 외면하는 것이고 만나더라도 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편 셈이다. 요컨대 안 만나도 잘못이고 만나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사설은 논리적 오류로 독자를 기만하고 있다.(이런 것을 가리켜  '거짓 딜레마의 오류'라고 한다.)

 

<조선>의 다음 날짜 사설을 읽어 보자.

 

"일부 공개된 행사를 제외한 북한 조문단의 서울 체류일정 대부분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부는 북측 조문단의 신변 안전을 이유로 언론의 접근까지 철저히 제한했다. 조문단에 대남(對南) 정책을 총괄하는 북측 고위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지만, 국민은 이들이 24시간 가까이 서울에 머물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남북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일정 등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요청에 따라 북한이 조문단을 보냈고, 이후 이 센터가 협의 창구로 나서면서 정부가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측 조문단이 의도적으로 남한 당국을 건너뛰고 무시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조선> 8월 21일 자 사설 '정부는 원칙 갖고 북 조문단 대해야 한다' 중에서

 

북측 조문단이 서울에 온 지 24시간도 채 안 된 시점에 쓴 사설이다. 그 사이 북측 조문단은 빈소에 가서 문상했고 전 통일원장관들과 공개만찬을 했다. 물론 나머지 시간은 숙소에 머물렀을 터이다. 그런데도 <조선>은 북측 조문단이 무슨 불온한 암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또한 이 사설은 북측 조문단의 방남이 '김대중평화센터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격하시켰다. 아울러 그들이 '남한 당국을 무시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고 근거 없이 말함으로써 북측 조문단에 대한 반감을 유도하고 있다.

 

대화하자는 상대에 진정성 운운하는 저의가 뭘까

 

"대표적인 사례가 핵 문제다. 과거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해 남측과 상관없는, 미국과의 문제라고 강변하면서 남측과의 대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나 이는 대북 대화파들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기 어려웠던 이유다. 북한의 그러한 억지 주장에 공감할 남측 주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북한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흔들며 우리와 주변국을 위협하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김기남 조문특사에게 우리 정부의 대북 원칙을 설명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핵 문제에 진전이 있으면 획기적인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화 자체에 급급하기보다 원칙을 지켜가면서 남북관계를 관리, 발전시키겠다는 뜻으로 북한이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화려한 평화 공세'를 펴는 북한의 최근 행보가 '공세'보다 '평화'에 방점이 있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8월 24일 자 사설 '남북 당국 대화 핵 해결로 이어져야 한다' 중에서

 

<중앙일보> 역시 핵 해결을 남북 교류의 전제로 내세웠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나아가 <중앙>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을 편들고 있다.

 

또한 <중앙>에 의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흔들며 우리와 주변국을 위협하는' 나라이다.   <중앙>은 북한의 대화 제의를 '화려한 평화 공세'라고 표현했다. 무력시위를 하면 '악의 축'이라고 하고 대화 제의를 하면 진정성 운운하며 '평화 공세'라고 하니 평화에도 공세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북한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김정일 위원장이 구두 메시지를 통해 파격적이고 통 큰 제안을 했다면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6.15 및 10.4 선언' 이행 같은 원칙론을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경우 북한이 진실로 남북관계의 회복을 원한다고 믿기 어렵고, 잇따른 유화 제스처도 저의를 의심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현정은 회장과 당국간 협의사항까지 일방적으로 합의해 발표하고, 이번 조문단도 정부의 공식채널을 배제한 채 추진한 것부터 벌써 신뢰에 흠집이 난 상태다.

 

유화조치도 일방적으로 취했던 것을 독단적으로 되돌리는 원맨쇼 성격이 짙은 면이 있다. 유엔주재 공사를 미국 내 북한통인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보내 북미 직접대화를 모색한 것도 석연치 않다. 북한은 권력이양을 비롯한 내부체제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대외환경 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 고비를 넘는데 남측을 이용하기 위해 웃음 속에 비수를 감추는 소리장도(笑裏藏刀)의 꼼수를 써서는 안 될 것이다."

-8월 24일 자 <연합뉴스> 시론 '물꼬 튼 남북대화 진정성이 관건이다' 중에서

 

<연합뉴스>는 이번 북측 조문단 기사에서 조중동 이상의 퇴행성 기사를 남발했다. 이 시론은 6·15나 10·4선언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역시 6·15선언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DJ를 계승하자는 건지? 또한 이 시론은 '석연치 않다' '원맨쇼' '웃음 속에 비수를 감추는 꼼수' 등의 비속적인 표현을 남발하고 있다.

 

이 시론 외에도 <연합뉴스>의 다른 기사는 '치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저속하다. 그들은 북한 조문단이 호텔 종업원에게 팁을 주지 않은 것까지 기사화했다. 

 

"이들이 묵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은 특1급 호텔(금장 무궁화 5개)로, 북한 조문단은 말 그대로 '좋은 방'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었다. 이들은 호텔에 비치된 칫솔, 치약, 생수 등은 이용했지만 냉장고 안에 가득 채워진 음료에는 손을 대지 않아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조문단원이 묵은 4개의 방에는 속이 비워진 각종 음료수 병이 테이블 위에 올려 있었다.... 호텔 종업원은 객실에 '팁'이 남아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그런 건 없었다"고 답했다. 조문단이 22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과 만찬을 하며 곁들인 식사는 '최고급' 중국 요리였다."

-8월 24일 자 <연합뉴스> 기사

 

더 나아가 조중동은 24일 오전 자신의 인터넷판에 이 기사를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조중동과 연합뉴스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통일을 두려워하는 보수언론들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남북대화를 반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들은 통일을 두려워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 하나를 반추해 보기로 하자.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2월 28일 자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국은 카이로선언에 따라 조선을 즉시 독립시키자고 한 데 반해 소련은 신탁통치할 것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은 조선에 신탁통치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미국이었고 이에 영국과 소련이 동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소련은 미국보다 신탁통치 기간을 짧게 잡았다. 그런데도 <동아>는 '미국은 즉시 독립, 소련은 신탁통치'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겁 없이 내보낸 것이었다.

 

왜 이런 오보가 나왔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지금도 한국 언론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아무튼 이런 기사는 남북분단의 내재적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한 점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 오보였을까?

 

세월이 다소간 흘러가더라도 만약 민족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필연적으로 친일세력을 추궁하게 될 터이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동아>와 <조선>은 친일의 원죄를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언론이다.

 

<조선>과 <동아>의 이력은 다양하다. 요즘은 민주화를 찬양하는 그들이지만 한때는 독재를 미화했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기도 했다. 요즘은 전두환을 희화하는 그들이지만 한때는 그를 영웅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미국에 부단한 신뢰를 보낸다. 무엇보다 그들은 '반공'에 열정적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쳤던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5·16 혁명공약)'한 박정희를 추앙한다.

 

그런데 <조선>이 <동아>를 앞선 이유 중의 하나가 '반공'에 더 교묘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7,80년대 <조선>은 선정적인 '반공' 기사를 거침없이 양산하는 신문이었다. 하지만 독재 미화건 반공포르노건 친미건 그 원초적 뿌리는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물론 '친일'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 조문단 방남에 보인 한국 보수언론들의 논조가 <요미우리>나 <아사히> 같은 일본 신문의 것과 비슷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태그:#북조문단, #보수언론, #조중동,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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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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