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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85세 일기로 서거했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그러나 반드시 역사가 평가한다"고 강조해 온 고인의 영정 앞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평소 고인을 '빨갱이', 또는 '좌파용공'이라는 어두운 프레임에 가뒀던 정치인과 언론들도 있다. 이제 부디 어둡고 무거운 굴레를 벗고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빌면서 고인의 지나온 삶을 정리해 놓은 책과 언론을 통해 반추해 본다.        

# 장면 하나. '김대중 죽이기'

'김대중 죽이기'(강준만 저, 개마고원 펴냄)
▲ 김대중 죽이기 '김대중 죽이기'(강준만 저, 개마고원 펴냄)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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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최근 십수 년간, 한국 정치와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음모는 무엇이었는가? 그건 바로 '김대중 죽이기'이다. 김대중은 정치적으로 죽어야만 될 혐오의 대상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그리하여 김대중은 죽었다."

1995년 1월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강 교수는 그가 쓴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 책의 머리말에서 "지난 92년 대선을 통해서 김대중은 죽었다"며 "그의 장례식 또한 성대했다"고 묘사했다. 왜 그랬을까. 아직 살아 있는 정치인을 왜 그는 저승에 감추려 했던 것일까. 그 궁금증은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문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김대중 문제는 건드리면 언제라도 피고름 터져 나오는 상처로 생생히 살아 있다. 집단적 탐욕과 음모와 무지와 위선과 기만에 희생된, 앞으로도 희생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대중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김대중은 일찍이 정치적으로 죽어야만 했고, 이미 죽었으나 '김대중 문제'만은 살아 있다는 논리다. 다소 해괴한 논리 같지만 그 논리의 한 중심에는 '쓰레기와 같은 정치평론'이 대한민국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그가 이 책 머리말 말미에서 강조한 "정치평론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김대중은 진짜 죽어도 된다. 편안하게 눈을 감아도 된다"고 한 대목에서 읽혀진다.

그렇다면 왜 하필 김대중의 정치적 죽음을 정치평론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 것일까. 늘 상대성을 지닌 정치인들의 상관관계나 정치적 변수에서 찾지 않고 정치평론가들에게 몰매 맞을 소리를 한 것일까. 모두 넷째 마당으로 구성된 그의 책 중에서 셋째 마당은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킬 만한 시원한 음료 역할을 해준다.

'언론의 김대중 해석법', '언론이 조작한 김대중 이미지', '조선일보의 김대중 확인사살' 등에서 그는 추리소설로 전락한 정치보도를 비판한다. 지역감정과는 무관한 김대중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주범은 역대 군사독재 정권이었지만, 저자는 언론이 김대중에겐 역대 군사정권보다 더 무서운 '또 하나의 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역대 군사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실무를 담당한 건 바로 언론이었다"며 "당시 언론이 권력의 탄압에 못 이겨 조작된 사실이나마 '사실'보도에만 임했다 해도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보다 직설적으로 다가선다.

'김대중 잡아먹고 자란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용공조작', '조선일보의 김대중 확인사살', '조선일보는 정치세력이다', '조선일보에 대해 비굴한 김대중'

이들 소제목만 봐도 <조선일보>와 이 책 제목과의 함수관계를 대략 가늠케 해준다. 사례를 들춰보면 이해가 훨씬 빨라질 것이다.

"언론은 김대중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의 책임을 오히려 김대중에게 되씌우는 일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주필 김대중은 91년 6월 23일자 칼럼 '김대중 총재의 거취'에서 '그의 정치는 반대와 공격, 타협과 술수로 대변된다. 그는 반대와 강성을 선명의 지름길로 삼아왔다'고 말하면서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젠 물러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고 표현했다. 하도 어이가 없었던지 그는 이어 "다른 사람도 아닌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앞장섰던 <조선일보>의 주필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980년 5월 28일자, 8월 23일자, 10월 28일자 사설 등에서 '광적인 전두환 찬양가'를 부른 <조선일보>의 '김대중 죽이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 내용이 흥미를 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92년에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 간첩단 사건과 관련하여 안기부장의 발언을 1면에, 그것도 사이드 톱으로 실은 신문은 <조선일보>(10월 24일자)뿐이었다. 그것도 인용부호를 빙자해 '간첩단 정치권 접촉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긴 전형적 사례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이러한 증상은 날로 심했다. 이 때 등장한 '김일성이 미는 김대중 후보'란 표현은 훗날 두고두고 김대중을 '빨갱이', '좌파용공'의 프레임에 가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때문에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이 대목을 매섭게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월간조선> 12월호는 의도적으로 김대중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특집을 꾸며 <조선일보>의 '반 DJ정서'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케 했다. 특히 <월간조선> 11, 12월호에 연이어 실린 '대선정국의 뇌관, 조선노동당 수사의 진행 방향: 안기부의 정치권 수사'와 '간첩단 사건과 정치인'이라는 두 기사는 안기부와 민자당의 시각을 빌리는 척하면서 '김일성이 미는 김대중 후보'를 부각시키고 있다." 

# 장면 둘. '김대중 살리기'

'김대중 살리기'(박용수 외 저, 시와사회사)
▲ 김대중 살리기 '김대중 살리기'(박용수 외 저, 시와사회사)
ⓒ 시와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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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죽이기'에 이어 1995년 5월, '김대중 살리기'(시와사회사)가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영남지역에 거주하거나 그 지역 출신 문인들 17명이 최초로 고백한 내용들이어서 더욱 주목을 끈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앞서 출판된 '김대중 죽이기'란 책에서 미처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던져 주었다.

영남인들은 김대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점이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또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  어느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은 문인들이 펴낸 자기고백서에는 김대중과 전라도, 호남에 대한 편견과 레드 콤플렉스가 화두로 등장한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박용수씨는 이 책 첫 장 '정치는 아름답다 그러나 한국식 정치는 추하다'에서 '김대중과 빨갱이'에 관한 문제에 깊숙이 접근했다. 아마 보수세력과 보수신문들이 이 글을 읽어 본다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릴 것이다. 특히 '김대중 죽이기'에서 자주 거론됐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를 욕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농민과 도시빈민을 빨갱이라 할 때 이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오염되었다는 이야기겠는데 어느 세월에 세뇌교육이라도 받았다는 말인가. 결국은 수구세력이 자기 보신을 위해 만들어낸 말임이 확인되는데 '전라도 놈은 다 빨갱이다', '김대중은 빨갱이다'는 말은 오랜 역사를 통해 유배지로 활용하며 호남지역을 푸대접하고도 모자라 모든 경제적 이권을 계속 독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경쟁자를 도태시키는 수단을 찾던 끝에 생겨난 말이다." 

작가이자 시인인 이적씨는 이 책 '반공에 멍든 정치인 김대중'이란 제목의 글에서 국내 정치인 중에 가장 탄압 많이 받고 불행했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꼽았다.그런 그는 빨갱이와 용공의 실체에 더욱 근접한다.    

"이 땅의 지식인이나 진보성향을 띤 정치인들은 반공의 철퇴에 맞아 빨갱이니 용공이니 하는 덫에 씌워져 쓰라린 고통을 맛보기도 했고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같은 불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어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작가 노가원씨는 '누가 용공이라 하는가'란 제목의 글에서 김대중의 사상적 의심의 근원을 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이를 앵무새처럼 확대 재생산한 보수언론 탓으로 보았다.

그런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중간수사발표에는 김대중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 친북 세력과 결탁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의심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됐지만, 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김대중의 당당한 증언과 빛나는 해명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돼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인 김기홍씨는 '빛의 에너지가 충만한 김대중'이란 제목의 글에서 양비론으로 끌고 가는 지식층들을 호되게 비난했다. 특히 <조선일보>를 겨냥해 일갈했다.

"사사건건 김대중을 흠집 내던 <조선일보>의 글쟁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청와대로의 직행. 자손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하기야 그들은 전두환을 영웅으로 만들고 이승만 복권을 노리는 자들이 아닌가. 그 비열한 작태에 응징하지도 않고 떠넘기는 신문을 펼쳐드는 사람들 역시 김대중을 상처 내는 사람들은 아닌가."

# 장면 셋. '신 DJ 죽이기'

"김대중 정권은 출발부터 언론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 언론은 처음부터 김대중 정권의 발목, 아니 몸통을 잡고 늘어졌다. <내일신문> 1998년 5월 13일자는 '재벌과 언론의 신 DJ 죽이기...언론, DJ 외곽 때리기 시작...재벌, 언론 활용 새 정부 견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재벌과 언론의 합작으로 김대중 정권을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2000년 5월. 강준만 교수는 그가 쓴 책 '권력변환: 한국언론 117년사'(인물과 사상사)의 '김대중 정권하의 언론 편'에서 '신 DJ 죽이기'란 표현을 썼다. 책에서 그는 "일부 언론은 처음부터 김대중 정권을 비판할 건수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건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자구책인 동시에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색깔 공세'에 시달려 온 김대중 정권이 초기 정부인사와 관련된 '지역주의' 문제로 보수언론에 집요한 공격을 받을 무렵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강 교수는 "김대중 정권은 언론에 대해 계속 '비굴하다'는 표현이 좋을 정도로 무력하게 대응했다"고 비판한 뒤 "김대중 정권과 언론과의 갈등은 1998년 가을 가장 크게 불거지고 말았다"며 사례를 적시했다.

"<조선일보>가 <월간조선> 98년 11월호에 게제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기사를 통해 김대중 정권의 사상 지향성을 문제 삼았을 때에 가장 크게 갈등이 불거졌지만, 이는 어설픈 봉합의 수준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김대중 정권의 구태의연한 언론관을 계속 꼬집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이념 공세에 눈을 떼지 않던 그는 "5년 전 '한완상 사건'과 비교하여 <조선일보>의 '색깔 공세'가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결국 최장집은 정책기획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김 정권의 <조선일보>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비굴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혹독한 비난을 가했다.

그래서 일까.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수신문들은 내내 그를 괴롭혔다. 퇴임 후에도 '붉은색 덧칠'은 줄곧 그의 정치인생 발목을 잡은 요인이었다. 이것은 고인이 되기 직전까지 따라 다녔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특별연설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세력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 등의 관계를 언급하며 보수층 정서를 자극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이란 사설에서 "올해 86세의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다"며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부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독재'라고 부르고 "들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뿐더러 국가 원로가 취할 태도는 더욱 아니다"고 나무랐다.

<조선>은 이어 6월 23일 김인규 한림대 도서관장의 시론 'DJ는 김정일의 매 맞는 아내'에서 "2000년 6월 DJ는 '친정 곳간'에서 4억5000만 달러를 몰래 꺼내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며 평양으로 찾아가 '6·15 남북 공동선언'이라는 결혼식을 올렸다"면서 "김정일의 '매 맺는 아내'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에게 능욕 당하면서도 오히려 그를 말리는 친정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동아일보>도 6월 13일 사설 '민주 탈 쓰고 반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에서 "남북관계 경색에 대해 DJ는 이명박 정부와 미국 탓이라고 했지만 한눈으로 사물을 보는 편견이다"며 "실패한 좌파정권의 실패한 대북정책을 답습하라고 이명박 정권에 강요하며, 국민이 만들어 낸 현 정권을 공격하는 일에 모두 일어서라고 민중을 선동하는 것은 민주화 역사를 역류하는 죄짓기임을 DJ는 깨달아야 한다"고 꾸짖었다.

# 장면 넷. 고개 숙인 그들의 속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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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울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울역 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후퇴하고 서민경제가 전례 없이 빈부격차가 강화돼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남북관계가 초긴장 상태에 있어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슬픈 것"이라고 사실상 마지막 통한의 대중연설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 왔지만, 이 정부 들어 이러한 업이 후퇴하고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더 슬퍼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19일자 전국단위 일간지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며 김 전 대통령의 삶과 정치 역정을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지방의 주요 일간지들도 이날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1면에서부터 4~6면에 걸쳐 '통단'으로 제목을 뽑아 처리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달랐다. 김 전 대통령 서거 기사 옆에 결국 실패로 돌아간 '나로호 발사' 기사를 비중 있게 배치했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5·18 광주 학살', 고문으로 조작해 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정당화 시키거나 눈감아 온 언론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겉으로는 영정 앞에 고개 숙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숙이기에 앞서 먼저 김대중에 대한 '빨간색 프레임'을 거둬야 한다.




태그:#김대중,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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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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