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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늦더위 속에 비옥한 땅에서 나날이 익어가는 곡식들...
빨갛게 익은 고추를 씻고 있습니다.
▲ 내 고향은 지금... 8월 늦더위 속에 비옥한 땅에서 나날이 익어가는 곡식들... 빨갛게 익은 고추를 씻고 있습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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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삶는 듯한 8월 늦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제도 바람 한 점 없는 듯 후덥지근하고 더운 날씨더니 오늘은 어제보다 한층 더 무더운 날씨다. 이른 새벽에 깨어 일어나자마자 미적지근하고 바람 없음을 느꼈는데 온종일 불볕더위다.

잦은 비와 궂은 날들이 계속되어 가을 같은 여름날들이 이어지더니 8월 중순을 즈음하여 불볕더위가 전국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뒤늦게 대지를 뜨겁게 달구어대고 있다. 마치 여름날 충분히 내리쬐어야 할 일조량을 뒤늦게 다 소비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쏟아 붓는 듯한 뜨거운 햇볕, 폭염 속에서 그동안 일조량이 적었던 가을 곡식들이 땡볕에 잘도 익어가고 있겠다.

다행스런 일이다. 흐렸다 비 오다 수시로 변덕을 부리던 날씨 속에서 거둬들인 붉은 고추도 제대로 말리지 못해 아침이면 하늘 올려다보며 '내다 널어도 될까, 그냥 놔둘까?" 하던 어머니. 어제 넌, 빨갛게 익은 고추가 든 그물망을 놨다 들었다 하던 어머니는 고추를 '내다 널어 말리지 못하면 검어질 텐데' 걱정부터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은 시중에 농기계가 잘 나와 있어 고추 건조기만 구입하면 잘 씻은 고추를 건조기에 간단하게 말리는 방법도 없진 않지만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보다 아래채가 불 타 버린 뒤 비좁은 집에 그 큰 기계를 들여놓을 만한 넉넉한 공간도 없다. 또한 건조기의 편리함도 좋지만 한 여름 뙤약볕에 내다 널었다 거뒀다 정성이 들어간 태양초만 할까.

오늘 같은 날 고추를 내다 널면 참 잘 마르겠다. 궂은 날이 반복되는 날씨 속에서 벼이삭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걱정도 하시더니 어제 오늘 같은 뜨거운 태양아래선 알알이 벼이삭이 들고 또 잘 영글어 가겠다. 이 짧은(?) 여름날의 더위가 도시사람들이나 나 같은 사람에겐 잠시라도 성가시기도 하겠지만, 애써 가꾼 가을 곡식이 뙤약볕에 잘 익어갈 것을 생각하면 이만한 더위야 못 참겠는가.

내가 자란 고향 마을은 지금, 8월의 따가운 태양아래 콩대에 콩이 누렇게 익어 단단해지고 고추밭엔 붉게 익은 고추와 초록색 고추가 서로 이웃해 주렁주렁 고추밭 가득 색칠하고, 온몸에 짙푸른 가시를 돋우고 영글어가는 밤알들은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 간다.

유난히 잦았던 비로 오이와 가지, 토마토도 주렁주렁 가지 휘어져 식탁위에 올라오고, 가지가 휘어지게 달린 풋감은 또 매일 하루가 다르게 알이 굵어 가리라. 하얀 참깨 꽃 흐드러지게 핀 깨밭엔 깨꽃 사이로 하나 둘씩 돋아난 씨방 속에 80여개의 깨알들이 알차게 채워지고 익어가고 있다.

깨꽃 떨어진 그 자리에 긴 대롱에 가득 채워진 깨알들은 가을을 기다린다. 연하디 연한 연두 빛에서 짙은 초록으로 단단해지면서 붉게 익은 고추는 어느새 부지런한 주인의 손길에 의해 거둬지고 집 안팎에서 곱게 마르고 있다.

아침이면 널고 저녁이면 거둬들이기를 며칠...그렇게 고춧가루는 만들어진다

8월 늦더위 속에서 곡식들은 알알이 익어가고...
붉게 익은 고추를 거둬들여 씻고 또 씻어 내다 널기 위해 손질하는...
▲ 내고향은 지금... 8월 늦더위 속에서 곡식들은 알알이 익어가고... 붉게 익은 고추를 거둬들여 씻고 또 씻어 내다 널기 위해 손질하는...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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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내다 넌 고추...잘고 길게 다시 잘라 또 말립니다...
▲ 내고향 8월... 햇볕에 내다 넌 고추...잘고 길게 다시 잘라 또 말립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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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발갛게 잘 익은 고추를 서리서리 가득 따와서 흐르는 수돗물로 몇 번이고 씻고 씻은 다음 소쿠리에 건진 후 바깥 햇볕 잘 드는 곳에 검은 그물 망사를 넓게 펼쳐놓은 뒤 커다란 광주리에 담은 붉은 고추를 쏟아 붓는다. 광주리 가득 가득 담아온 고추는 넓게 펼쳐 햇볕에 잘 익도록 손으로 고루 펴 놓는다.

하루 온종일 한낮의 여름 태양아래서 말라가는 고추들...하루, 이틀...잘 말라가는 붉은 고추를 또 가위로 길게 몇 번씩 잘라주어 눅눅한 데 없이, 햇볕 들지 않은 곳이 없도록 손질해 다시 내다 널어 말린다.

아침이면 볕에 널고 저녁이면 거둬들이기를 몇 날을 반복해 비로소 햇볕에 잘 마른 고추를 자루에 담아 거두어들인다. 또 밭에서 며칠 사이에 익은 고추를 가득 따오고 또 씻고 말리고 거둬들이기를 여름내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 고춧가루가 되어 나올 것이다.

누렇게 익은 콩은 또 어떤가. 이른 봄, 밭을 갈고 땅에 심은 콩이 싹을 틔우고 가지가 커 가고 잎이 나고 콩 꽃이 피고 콩이 씨방 안 마디마다 조롱조롱 박혀서 햇볕과 바람과 낮과 밤이 바뀌는 사이에 잘 익어 단단해지면 콩을 수확하는 부모님의 손길은 바빠진다.

고추를 내다 널고 있는 모습...
▲ 내고향 8월... 고추를 내다 널고 있는 모습...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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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펼 사이 없이 콩대에 달린 콩을 손으로 훑어 따고 집 앞이나 비어있는 옆집 마당에 널어서 잘 마르면 또 콩을 방망이로 두드려 씨방에서 튀어나와 모아진 콩을 후후 불고 손질해 거둬들인다. 그 와중에도 아직 푸른 콩이나 연한 콩은 따로 골라내고 까서 콩죽 콩국거리로 냉장고에 보관해두면서 시시때때로 콩국을 끓여 먹거나 한다.

지금 밭에는 깨꽃이 하얗게 지천이다. 하얗게 핀 깨꽃들은 마치 작고 하얀 종들 같다. 깨끗하고 예쁜 깨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옆에 가보면 어느새 깨꽃 떨어진 자리마다 단단한 씨방 안에 깨가 보석처럼 촘촘히 들어있다. 여름 내내 뜨거운 볕을 받아 무르익어 가을엔 신비한 깨알들을 쏟아놓을 것이다.

누렇게 익은 깨가 추수의 손길을 기다릴 즈음, 또 부모님의 손과 발은 분주할 것이다. 깨를 두드려 거둬들이는 정성, 그리고 깨를 손질해 보관하고 참기름을 짜고 깨소금을 만들고 자녀들에게 나눠줄 것들을 따로 보관하기도 하면서 가을 내내 바쁠 터이다.

올망졸망 영글기 시작한 고구마, 가을 수확의 기쁨

가을엔 누렇게 익을 호박이...
▲ 내고향 8월... 가을엔 누렇게 익을 호박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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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엔 지금, 이른 봄에 심은 고구마 순이 밭 가득 고구마넝쿨 뻗어나가더니 푸르고 싱싱하게 뻗어나간 고구마줄기 아래 뿌리엔 빨간 고구마 하나 둘씩 영글기 시작해 나날이 알이 굵어가고 있다. 땅에 깊이 심긴 뿌리 끝 땅 속에서 올망졸망 영글기 시작한 고구마는 늦은 가을 수확의 수고와 기쁨을 안겨 줄 것이다.

지금 내 고향 내 부모님 밭에는 가을이면 넉넉한 크기와 무게로 누런 황색을 띤 누렁호박이 될 풋풋한 초록색 호박이 넝쿨 아래 단단하게 익어가고, 밤나무엔 밤송이, 감나무엔 주렁주렁 달린 감이 새파랗고, 유자나무에 달린 진초록 유자가 알알이 단단해지고 있다.

깨밭에는 깨꽃과 깨 집에 깨가 가득 실려 보석처럼 익어가고 고추밭에는 파란고추 붉은 고추 어린 고추들이 어울려 나날이 붉어지고 익어간다. 콩대에 조롱조롱 달린 콩은 어느새 부지런한 부모님 손길에 의해 수확되고 벼는 잦은 비로 인해 아직 옹골찬 쌀알들이 들지 못했지만 조금 늦어도 곧 단단하게 여물어 갈 것이다.

콩을 내다 널고...그 중에 연한 콩을 따로 골라내고 있다...
▲ 내고향 8월... 콩을 내다 널고...그 중에 연한 콩을 따로 골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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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로 콩을 두드리고 ...
▲ 내고향 8월... 방망이로 콩을 두드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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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8월은 지금, 나날이 무르익어 가는 곡식들의 조용한 부산함 못지않게 그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한 부모님의 몸짓이 있다. 익어가는 곡식들은 잦은 주인의 발걸음과 잦은 수고의 손길에 더 알차고 옹골진 열매들로 익어가고 있다. 부지런한 주인의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이 밭에서 익어가는 곡식들은 더 신명나게, 사랑스럽게 무르익은 열매로 선사할 것이다.

곡식들은 안다. 알고 있다.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땅에 심겨진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을...농부의 발자국 소리 들으면서 그것들은 알고 있다. 열매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농부의 부지런한 발자국에서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른 봄의 따뜻한 기후 속에서 심겨진 곡식알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 밤과 낮의 조화, 바람과 햇빛...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그렇게 자라고 향기로운 열매를 내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과 농부의 수고와 땀방울...그 부지런한 발걸음이 어우러져 위대한 열매로 늦은 가을날 선물로 안겨주는 것이다. 농부의 땀과 수고, 그 부지런한 몸짓, 그것 모두가 기도, 그 무엇보다 간절한 기도가 아니겠는가.

수고로운 손길 위로라도 하듯, 어느 날 아침 혹은 저녁에 밭에 가 보면 어제와 또 다르게 알차게 영근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부모님의 수고로운 발걸음과 땀방울 속에는 자식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소원이 담겨있다. 그 속에 담긴 기도가 봄, 여름, 가을 무르익도록 알차게 가꾼 논밭 곡식들에 닿고 하늘 아버지께 닿아 있는 것이다.

거둬들인 붉은 고추를 씻는 손길 안에도, 콩대에서 콩을 따고 콩깍지를 열고 콩을 까는 그 손길 안에도, 끝없이 호미질을 해도 자꾸만 자라는 풀을 메는 손길 안에도...울타리를 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치는 그 손길 안에도...그 안에...그 모든 수고로운 손길 안에...그 발걸음 안에...그 모든 행위 속에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 그것 자체가 기도이다.

내 고향 8월은 비옥한 땅에서 곡식들이 낱낱이, 알알이 영글고 익어간다. 늦더위로 기승을 부리는 8월의 불볕더위도 농부들은 저마다 반갑기만 하리라. 비록 땀으로 흠씬 젖고 뙤약볕에 발갛게 익은 검게 탄 얼굴로 나날이 고단한 일상이지만, 비옥한 땅에서 무르익은 황금빛 곡식과 알알이 익은 열매들로 풍성한 가을을 내다봄이다.

비옥한 그 땅이 심기만하면, 한 없이 주고 또 내어주듯, 무르익은 곡식과 알알이 어여쁘게 익은 열매들로 또한 한 없이 사랑으로 내어 줄 부모님의 그 기대에 찬 마음, 그 깊은 사랑으로 내다봄이다.

연분홍빛 참깨꽃...그 사이사이 씨방 속에 알알이 든 깨...
▲ 내고향 8월은... 연분홍빛 참깨꽃...그 사이사이 씨방 속에 알알이 든 깨...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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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새벽에도 ...해거름녘에도...주인의 발걸음 소리 들으며 자라는 농작물들...부모님의 손길 닿는 곳마다 마법처럼 살아나고 열매맺는 곡식들...
▲ 내고향 8월... 이른새벽에도 ...해거름녘에도...주인의 발걸음 소리 들으며 자라는 농작물들...부모님의 손길 닿는 곳마다 마법처럼 살아나고 열매맺는 곡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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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향, #8월, #곡식, #열매,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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