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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월리 풍경.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로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계월리 풍경.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로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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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드는 게 요즘 여행의 추세다. 오지체험 여행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시티와 슬로푸드를 찾는 여행객들이 느는 것도 이런 연유다.

이런 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딱 어울리는 마을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월등면(月燈面) 계월리(桂月里)다. 마을의 지세가 둥그런 달을 닮아 월등면이고, 달그림자가 계수나무에 걸린 것 같다고 해서 계월리다.

상동, 외동, 이문(중촌) 등 3개 마을에 100여 가구 200여 명이 사는 계월리는 달그림자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서 그늘막을 펼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암수가 서로 몸을 합한 모양새라고 입을 모은다.

나무의 지체가 높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지 몸에 금줄을 두르고 있다. 그 아래엔 나무로 만든 벤치 2개가 놓여 있다. 햇볕 뜨거운 날 잠시 마음 풀어놓기에 제격이다.

500년 된 느티나무와 금줄을 두르고 있는 나무 밑동.
 500년 된 느티나무와 금줄을 두르고 있는 나무 밑동.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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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구부러진 돌담. 반듯하지 않아 더 정겹다.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돌담. 반듯하지 않아 더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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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도 옛 모습 그대로다. 이리 저리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반듯하지 않아 더 정감이 간다. 돌담에 양철지붕을 올려놓은 집들도 눈에 띈다. 그 담에 몸을 기댄 능소화의 자태는 요염하다.

문이산과 바랑산이 감싸고 있는 산자락엔 매실을 중심으로 복숭아, 감, 배 등 과수가 지천이다. 수확기를 보낸 매실나무는 잎만 무성하다. 재배면적이 자그마치 825만㎡나 된단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으로 매화 향이 가득하다고 해서 '향매실마을'로 불린다.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민들의 힘만으로 4년째 향매실축제도 열었다.

땡볕에 몸을 맡긴 복숭아나무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그 개수가 하도 많아 버거워 보인다. 가을에 딸 감은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고, 밤나무는 순한 밤송이 안에서 알밤을 토실토실 살찌우고 있다.

능소화 핀 돌담길을 따라 한 할머니가 걷고 있다.
 능소화 핀 돌담길을 따라 한 할머니가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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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월리 계곡.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계월리 계곡.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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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도 예쁘다. 군장 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고 깨끗하다. 바위마다 다슬기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찾는 발길도 드물다.

하긴 마을을 몇 바퀴 돌아봐도 여행지가 아니다. 변변한 문화재나 유적지도 없다. 그렇다고 술집이나 식당, 찻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편의점은 커녕 제대로 된 슈퍼 하나 찾기도 힘들다. 모텔은 고사하고 민박집 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돌담과 느티나무, 과일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이 여기저기 눈에 띌 뿐이다. 햇살 잘 드는 집 마당엔 빨간 고추가 널려 있다. 주인 떠난 빈집의 안방은 한우가, 작은방은 토종닭이 지키고 있다.

계월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토란대를 거둬들이고 있다.
 계월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토란대를 거둬들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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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을 동물이 지키고 있다. 소는 안방에, 닭은 작은방에 각각 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을 동물이 지키고 있다. 소는 안방에, 닭은 작은방에 각각 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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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예쁘다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여럿 있다. 오지랖 넓은 황토염색가로 널리 알려진 류숙(58) 씨가 맨 앞자리에 서 있다. 그녀는 황토를 비롯 명아주, 토란, 민들레, 물푸레, 진달래, 쑥, 황칠 등 토종식물로 염료를 만들어 의류와 침구류, 생활소품류를 생산하고 있는 '문화재급' 주민이다.

대처로 나갔다가 돌아온 토박이들도 있다. 전자회사를 다니다 6년 전 돌아온 윤철환(34) 씨와 금호고속에서 정년퇴임하고 올해 들어온 박종균(60) 씨가 그들이다. 윤씨는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꽃차를 만들고 있고, 박씨는 녹색녹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순천시로부터 '스타농업인'으로 선정된 김선일 씨도 이 마을 사람이다. 그는 매실을 재배하며 돌탑을 쌓고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반듯하게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도 살고 있다.

마을이 더 아름다운 이유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데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마을을 지키며 가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다.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다만 맘먹고 산골을 한번 돌아보고 싶거든 한번쯤 가볼만 하다. 섬진강이나 지리산 부근을 오가는 길에 가볍게 들러도 좋다.

돌담을 따라 늘어선 능소화. 볼수록 요염하다.
 돌담을 따라 늘어선 능소화. 볼수록 요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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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월리 풍경. 산 아래 몇몇 가구씩 모여 살고 있다.
 계월리 풍경. 산 아래 몇몇 가구씩 모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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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계월리는 구례읍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순천방면으로 가는 길에 있다. 괴목역과 망룡삼거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계월’을 알리는 조그마한 표지판이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면 된다.



태그:#계월리, #중촌마을, #순천,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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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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