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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아침 8시 강정마을 주민들이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 도보순례 14일 아침 8시 강정마을 주민들이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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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 더위 끝인 14일 이른 새벽, 제주에는 다시 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의례회관 마당에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도보순례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에서 동쪽으로 출발해서 제주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하는 도보순례는 6박7일의 일정이며, 총 구간이 180여 킬로미터에 이른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2008년 여름에도 '해군기지 반대'를 주장하며 제주도 전역을 순례한 경험이 있다. 윤호경 사무국장은 당시 경험을 떠올리면서 "여름 뙤약볕에 그을리고 발에 물집이 잡히는 와중에도 주민들은 흔들림이 없었고, 갈수록 합류하는 주민들이 늘어나 도착할 때는 출발할 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주민이 마을회관에 모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순례대열 맨 앞에서 양홍찬 위원장이 깃발을 들고 걷고 있다.
▲ 선두 순례대열 맨 앞에서 양홍찬 위원장이 깃발을 들고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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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오전 8시가 되자 주민들은 쏟아지는 비를 가리기 위해 우비를 착용하고 손에는 깃발을 들고 빗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 청년들이 앞장서서 교통의 흐름을 정리하고, 김규남씨가 트럭을 몰며 주민들의 길을 안내했다. 양홍찬 위원장이 '생명평화마을'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순례대열의 맨 앞에 섰다. 그리고 윤호경 사무국장이 양 위원장의 뒤에서 주민들의 행진을 지휘하고 있다.

양홍찬 위원장이 들고 있는 깃발에 검은 페인트로 글씨를 지운 자국이 남아 있다. 원래 '생명평화 강정마을'이라 적힌 깃발이었는데, 불법 소환운동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강정'이란 부분을 가리라는 선관위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첫날 주민들은 강정마을을 출발하여 서귀포시 시내를 지나 남원리 남원성당에 이르는 20여 킬로미터의 구간을 걷게 된다. 천주교계의 도움으로 숙박은 매일 밤 숙박은 성당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날짜별 도보순례 구간은 성당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오전에 이곳에 도착한 주민들이 유세에 참여했다.
▲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오전에 이곳에 도착한 주민들이 유세에 참여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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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에 마을 의례회관을 출발한 주민들은 8시40분에 '서귀포시 월드컵경기장' 입구에 도착했다. 월드컵 경기장 입구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선 주민들은 돔베낭골을 경유하여 서귀포시 3호광장, 동문로터리 등을 지나 10시경에 중앙로터리(일호광장)에 집결했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기쁨의 그날을 위해
함께할 친구가 있잖아요.


주민들이 빗속에서 도보순례를 하는 동안 김규남씨가 운전하는 인도트럭에서는 경쾌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길을 지나는 동안 거리의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드물게는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중학생인데 도보순례에 동참했다.
▲ 조성민군 중학생인데 도보순례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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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대열에 앳된 청소년의 얼굴도 보였다. 중문중 3학년에 재학중인 조성민군이다. 이번 순례에 참여한 아버지(조응남)를 따라 나섰다. 조성민군의 친구들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캠프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힘든 일정에 나설 때 캠프에서 재미있게 놀고 오는 것은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며칠만이라도 순례에 함께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어른들이 도보순례에 왜 참여했는지 아는지 물었더니, 조군은 "해군기지를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앙로터리에 도착한 주민들은 휴식을 취한 뒤 오전 10시 40분경부터 유세에 참여했다. 주민소환운동본부에 참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민주노동당 현애자 전 의원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 주민들을 격려했다.

유세 도중 감정이 복바쳐 눈물을 흘렸다.
▲ 강동균 회장 유세 도중 감정이 복바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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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터리 유세에는 강동균 마을회장만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강정마을을 해군에 통째로 갖다 바치려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게 김태환 지사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정마을이 끝이 아닙니다. 이번에 강정마을이 밀리면 서귀포시가 계속 저들에게 밀리게 됩니다. 해군기지에 이어 공군기지를 짓겠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유세도중 순례에 나선 주민들을 보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려 현장에 있던 주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순례 길에 나서주신 주민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아마도 더위에 찌들고, 다리가 붓고 발에 물집이 잡히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순례에 참여해주시고, 제주도민들이 우리의 뜻을 헤아려주신다면 저 오만한 김태환 소환대상자를 반드시 심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낮에 효돈생활체육관에 도착한 주민들이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 점심 낮에 효돈생활체육관에 도착한 주민들이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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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가 끝나자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주민들의 발걸음은 예정대로 효돈을 향했다. 효돈생활체육관에 도착한 주민들은 부녀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잠시 시름을 잊었다. 식사 도중에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주민들도 있었는데, 술자리에 웃음꽃이 시들 줄을 몰랐다.


태그:#강정마을, #도보순례, #해군기지, #주민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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