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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문배례석이 의미하는 것

진공대사보법탑비 이수의 한 가운데 전액: 故眞空大師碑
 진공대사보법탑비 이수의 한 가운데 전액: 故眞空大師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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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언급되는 스님은 진공(眞空: 855-937)대사다. 진공대사는 비로사에 자신의 흔적을 분명히 남겨놓고 있다. 그의 탑비인 진공대사 보법탑비가 비로사 경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진공대사는 신라 말 고려 초를 살았던 큰 스님이다. 탑비에 따르면 진공대사는 선종계열의 스님이다.

그는 소백산사를 중수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 7-8년 동안을 이곳에서 머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또한 이곳에서 입적했는데 그가 남긴 가르침(遺誡)이 정말 인간적이다. 그는 사랑, 예의와 질서 그리고 수행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소백산사가 현재의 비로사다.
그런데 성공스님이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한다. 적광전 앞에 있는 탑의 바닥면에 연화문배례석이 있는데, 이것이 왕의 행차를 증거하는 물건이란다. 비로사에 왕의 행차라니? 처음 듣는 소리라 귀가 솔깃한다. 성공스님이 말하는 사연은 이렇다.

왕건이 사용했다는 연화문배례석
 왕건이 사용했다는 연화문배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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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족 출신인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운다. 후고구려는 남쪽으로 소백산에서 북쪽으로 대동강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앙을 차지한다. 이때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진공대사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소백산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사는 왕건의 인품을 보고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이 말을 새겨들은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워 왕이 된다.

왕이 된 후 태조 왕건은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소백산사를 찾아 진공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게 되는데 이 때 머리를 대도록 만든 것이 연화문배례석이라고 한다. 연화문배례석은 부석사에도 있는데 그것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가다 예를 표한 돌이라고 한다.       

보법탑비에 적힌 진공대사의 삶

진공대사보법탑비
 진공대사보법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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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대사는 계림(경주) 사람으로 젊은 시절 가야산 선융화상을 찾아 불가에 입문한다. 그 후 선종의 가르침을 따라 진전사로 도의선사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의 가르침에 따라 도의 나무에 머물고 선의 숲 속에 기거하였다. 그러다 찾아간 곳이 소백산사이다. 그런데 왕이 스님을 불러 개경에서 법회를 여니 대중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후 왕은 스님을 만나기를 희망해 다시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스님이 덕산(德山)으로 옮긴 후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스님이 산사로 돌아가기를 희망했고 학인들 역시 스님에게 배우기를 희망하므로 고산(故山)으로 돌아가 선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937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

겨울의 보법탑비
 겨울의 보법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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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미병(微病)이 생기고 날로 점점 심해져서 천복(天福) 2년 9월 1일 (결락)에서 입적하였다. 햇빛은 참혹하고, 구름은 우울하였으며 강물은 마르고, 땅은 진동하며 산은 무너지는 듯하였다. 사방(四方) 멀리까지 모든 사람은 슬픔에 잠겼을 뿐만 아니라, 인봉(隣封)까지 모든 사람들이 식음을 전폐하였다. 임금께서도 갑자기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들으시고 깊이 슬픔에 잠겼다. 특사를 보내 조문하는 한편, 장례에 필요한 자량(資粮)도 함께 보냈으니, 왕의 전인(專人)과 문상객들의 왕래가 기로(岐路)에 상접(相接)하였다."   

해체되거나 깨진 석조물의 아름다운 조각

탑비는 탑에 따라 다니는 부속물이다. 왜냐하면 탑호가 내려지고 나야 탑비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로사에는 보법탑비는 있는데 보법탑은 없다. 그럼 진공대사 보법탑은 어디로 간 걸까? 비로사 경내의 석조물로 보아서는 적광전 앞의 탑 부재가 보법탑의 일부로 추정된다.

안상의 꽃무늬
 안상의 꽃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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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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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각으로 이루어진 석재들이 탑의 아래와 중간에 보이는데 이것이 보법탑의 하대석과 중대석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들 석재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하대석 안상에는 꽃이 조각되어 있고, 중대석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 보법탑비 옆에는 석재들이 깨진 채 방치되어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조각이 너무 정교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불이다. 광배로 보이는 석재가 두 기 있는데 이곳에 불꽃무늬와 화불이 분명하다. 1,0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수인과 신광 두광 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연꽃 대좌와 부처님의 상호까지도 분명하다.

광배의 화불
 광배의 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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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 조각은 정교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 탑재의 연꽃, 연화문 배례석의 연꽃 등은 세월의 풍상에 닳고 이끼도 끼었지만 은근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로사는 어느 정도 불사가 완성되어 당우로는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부처님의 뼈를 묻은 탑과 조사들의 뼈를 묻은 부도탑을 온전한 형태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비로사의 주지인 성공스님이 그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 대화를 통해 성공스님이 그러한 일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훼손이 안 된 당간지주

비로사 당간지주
 비로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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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사 당간지주는 일주문을 지나 계단 왼쪽에 있다.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두 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높이가 4.8m이다. 양 지주의 안쪽 면은 평평하고, 맨 위와 가운데에 각각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전 후면에는 가장자리와 중심부를 따라 띠가 조각되어 있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의 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에 당간을 꽂아두던 구멍이 뚫려 있다.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치밀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당간도 원래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할 부분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이곳 비로사에 들렀던 적이 있는 회원 중 한 분이 당시에는 당간지주가 누워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러고 보니 비로사의 불교문화재 중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청다리 옛집을 찾아

보수중인 성혈사 나한전
 보수중인 성혈사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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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순흥면 덕현리에 있는 성혈사다. 그곳에 있는 나한전과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그리고 16나한상을 볼 예정이었다. 특히 나한전 꽃살문에 대한 회원들의 기대가 대단하다. 사실 사전답사를 통해 지금 나한전이 공사 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와지붕에는 비닐을 덮었고 건물에는 비계를 설치했고, 그 앞의 석등은 철판을 덮어 씌웠다. 한마디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성혈사를 답사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비로사에서 우리는 1시간 이상을 보내고 말았다. 문화재 답사와 주지스님 강론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심을 먼저 먹는 쪽으로 일정을 변경한다. 그래도 점심이 이른 것은 아니다. 이곳 절에서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가려면 20분은 족히 걸릴 테니 점심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식당에 전화를 해 점심시간을 조금 늦춘다.

청다리옛집 풍경
 청다리옛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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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날 점심을 주지스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청다리 옛집에서 하기로 했다. 메밀냉면 전문점인데 순흥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소수서원과 금성단 그리고 청다리를 끼고 있어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메밀을 즉석에서 반죽해 국수를 뽑고 냉면을 바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청다리 옛집에 도착한 시간이 1시20분이다. 미리 도착시간을 알려주었음에도 바로 냉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들 배가 고파 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명이나 되는 회원이 방과 마루에 앉아 옛집의 정취를 즐긴다. "이 건물은 얼마나 되었을까? 벽에 걸린 저 글자들은 무슨 뜻일까? 바깥 정원에 꽃이 참 아름답다"는 등 대화들이 오간다.

청다리옛집 냉면
 청다리옛집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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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여분이 지나자 냉면이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냉면 곱빼기를 시켰다. 배가 고파서인지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또 사실 냉면 자체가 맛도 있다. 면이 부드럽고 가늘기도 하거니와 육수 또한 담백하면서도 시원하다. 자연재료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한여름에 시골 옛집에서 제대로 된 냉면 맛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답사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맛과 멋이다.     


태그:#연화문배례석, #진공대사, #화불, #당간지주, #청다리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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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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