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례 #1 김진호(28, 가명)씨는 2007년 5월 이후 지금까지 두 번 직장을 옮겼다. 세 번째 직장인 OO정밀은 임금체불이 너무 심해서 그만뒀다. 그러나 두 달간 새 일자리를 찾던 김씨는 결국 다시 OO정밀에 들어갔고 또 2개월치 임금을 못 받았다.

사례 #2 이진수(가명)씨와 박희준(가명)씨는 2008년부터 서울에 있는 한 떡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야간노동을 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심지어 오전 10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월급은 최저임금(시간당 3770원) 미만이었고, 이나마도 첫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10%나 깎였다. 다음해인 2009년에도 이들은 전년도의 최저임금을 받았다. 잔업수당과 야간수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1일 오전 11시, 이주노동자단체 활동가 30여명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 5년을 맞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11일 오전 11시, 이주노동자단체 활동가 30여명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 5년을 맞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 권박효원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임금체불에 강제노동 같은 명백히 불법적인 노동착취를 당해도, 이 사례의 주인공들은 회사를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고용허가제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합법적 이주노동자. 그러나 이들은 3번 이상 직장을 옮길 수 없고, 직장을 그만두면 두 달 안에 재취업을 해야 한다. 한국에 있을 수 있는 기한은 최대 6년. 그러나 일단 3년이 지나면 고국에 돌아갔다가 한 달 이상 있다가 재입국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소위 '불법체류자'가 된다.

위 사례에서 필리핀 출신의 김씨는 고용지원센터로부터 "같은 업체에 복직해도 직장이동 횟수에 포함된다"고 판정을 받았다. 그는 합법적으로 임금체불을 당해야 하는지 불법적으로 다른 직장에서 일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또한 네팔 출신 이씨와 박씨는 사업주가 직장변경 요구를 거부해 새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가명만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면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상황이, 이들 이주노동자에게는 현실이다. 오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5년을 앞둔 가운데, 이주노동자들과 인권단체들은 "직장 이동과 구직 기간 제한을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합법적 임금체불이냐, 불법적 직장변경이냐

11일 오전 11시, 이주공동행동 소속 활동가 30여 명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의 직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고용허가제를 전면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앞선 두 가지 사례를 포함해 다양한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했다.

A씨는 임신으로 인해 부당해고를 당한 뒤 구직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임신한 이주여성이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그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불법'의 신분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B씨는 고용지원센터가 알선해준 직장에서 근무하던 도중, 사측의 실수로 근로계약이 누락됐다는 것을 알았다. 곧 계약해주겠다는 회사의 말만 믿고 구직 기간 2달을 넘긴 B씨는 미등록 상태가 될 뻔했다가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구직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신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최저임금만 주면서 잔업과 특근을 강요하고, 이주노동자의 외출까지 통제하는 사업장 사례가 많았다.

C씨는 지난 5월초 물건을 나르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산재보상이 아닌 해고 통지였다. 최저임금 문제로 다투다가 지난 3월 회사를 그만둔 D씨 등 3명의 노동자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급여에서 매달 고용보험료가 빠져나갔지만 미가입 상태였던 것이다. 회사측 과실이지만 소급적용도 받지 못했다.

충남의 한 장난감 회사는 2008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의 80%만 지급했으며, 지난 2월부터는 기숙사비 명목으로 월급에서 10만원씩을 공제했다. 잔업에 특근까지 했던 노동자들은 한 달에 100만원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 이주노동자들은 추가 단속이 두려워 공장 문을 걸어 잠근 채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 이주노동자들은 추가 단속이 두려워 공장 문을 걸어 잠근 채 일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결국 이 같은 제도적 폐해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의 불법적 신분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 이주노동자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이정원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단체들은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단속도 대폭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 5월까지 추방된 이주노동자는 약 4만20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2008년 11월에는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 280여 명이 마석 가구공단에서 대대적 단속을 벌이면서 퇴로를 막고 외국인을 무조건 잡아들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5명이 크게 다쳤다.

이날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구직기간 제한으로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가 2448명(2008년 1월~2009년 1월)이나 되는데도,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어 취업에 실패했으니 체류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직장 이동의 자유 및 동등한 노동권 보장 ▲ 숙식비 공제 중단 ▲ 인간사냥식 단속 중단 ▲ 미등록 이주노동자 통보의무 폐지 ▲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등 고용허가제 전환을 요구했다.


태그:#이주노동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