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자금을 대출받으면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못해도 갚아야 되니까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 30일 작심한 듯 자신이 받은 '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날 교육과학기술부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를 발표했다. 미흡하고 보완해야 하는 점들이 있지만 이 정책은 진보 진영에게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유독 많은 잡음을 일으켰던 전력을 고려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참 오랜만에 시원한 안타를 때려낸 셈이다.

 

사실 진보 진영에게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생소한 게 아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등록금 후불제' 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두 정책은 이름만 다를 뿐, 구체적 내용은 거의 같다.

 

'빨갱이 정책'이라 불렸던 등록금 후불제

 

이 대통령에게는 대졸자가 등록금 대출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충격적인 뉴스였지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등록금 대출로 인한 '대졸=신용불량자'는 뉴스도 아니었다. 오래된 현실이었다.

 

그 오래된 현실을 바꾸려고 최일선에서 노력한 집단은 바로 전국교수노조였다. 이들은 2005년부터 '등록금 후불제' 실현을 위해 서명운동과 1000km 전국 도보행진, 그리고 많은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보수우익은 교수노조의 등록금 후불제 운동을 향해 이렇게 외치며 손가락질했다.

 

"빨갱이 정책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정책은 3~4년 만에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이명박 정부의 '서민 정책'이 됐다. 그리고 당시 등록금 후불제 도입을 위해 노력했던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은 김상곤 현 경기도교육감이다.

 

여전히 김 교육감을 향해 "빨갱이" "좌파"라고 손가락질 하는 보수우익은 이런 역사와 정책의 흐름을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보수우익은 "빨갱이 정책"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빨갱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일관성' 면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보수우익 대신 박정원 상지대 부총장을 지난 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박 부총장은 2005년 교수노조 기획정책실장을 맡으며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함께 등록금 후불제 운동을 이끌었다.

 

박 부총장은 등록금 후불제 실시에 대해 "지금이라도 등록금 후불제를 시행하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정책이 채택돼서 학부모 학생에게 도움이 되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부총장은 "이자율 확정, 대졸자 졸업생이 얼마를 벌어야 환불을 시작하는지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로스쿨, MBA, 의학 전문대학원 등 대학원생에 대한 대출 지원도 필요하다"고 정책 보완을 지적했다.

 

또 무엇보다 박 부총장은 "등록금 후불제를 핑계로 대학이 마음대로 등록금을 올릴 수 없도록 '등록금 상한제'도 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부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를 '등록금 후불제'로 볼 수 있나.

"우리가 요구한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것을 뼈대로 나온 정책이라 사실 감격스럽다. 물론 급하게 발표돼 미흡한 점은 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등록금 후불제를 시행하는 건 다행이다."

 

- 교수로서 등록금 문제를 처음 고민한 시기는?

"90년대부터 대학교마다 등록금 투쟁이 벌어졌다. IMF 이후로 지방학생들은 더욱 큰 등록금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과 대학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2002년 교환교수로 영국에 갔는데, 유럽 여러 나라에서 등록금 후불제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회 교육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은 무상교육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대학) 무상교육을 공정한 제도라고 보지 않는다. 고졸자가 대졸자 교육비를 부담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수익자 부담원리에 따른다면, 고등 교육의 수익자는 누구일까? 개인과 사회가 비슷하게 수익을 본다. 따라서 국가와 개인이 절반씩 부담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완전 무상도, 전액 개인부담도 부당하다고 봤다. 여러 가지 제도를 비교해보니 등록금 후불제가 제일 낫더라.

 

그래서 지난 2005년 교수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등록금 후불제 운동을 시작했다. 지식인 노조로서 교수들의 이익만 추구하면, 사회가 지식인에게 바라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걸 찾았는데, 그것이 등록금 후불제였다."

 

"처음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 2005년도에는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을 텐데. 

"처음에는 '졸업생이 내는 세금', 뭐 이런 식으로 불렀다. 하지만 당시 김상곤 교수노조위원장이 '그렇게 부르면 사람들이 어려워서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등록금 후불제로 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게 뭔가?' 했다. 그래도 정책을 알리기 위해 전국 1000km 도보행진,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 등록금 후불제를 처음 주장했을 때 '좌빨' 논란도 벌어졌을 것 같다.

"보수에게는 '교육을 빨갱이처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진보에게는 '무상으로 가야지 무슨 소리냐'는 지적을 받았다.(웃음) 진보진영에서는 '후불제'가 아닌 '무상교육'을 주장하지 않나. 사실 대학 등록금 무상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너무 커서 어렵다고 본다.

 

현실적인 제도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 등록금 후불제 같은 걸 실시하고 경제발전 속도에 따라서 개인이 내야 하는 비용을 조금씩 줄여가며 무상교육으로 가야 한다. 이게 더 현실적인 길이라고 본다. 처음부터 무상으로 가면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

 

- 그동안 등록금 후불제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모든 걸 이명박 정부가 준비하고 실시하는 것처럼 됐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것 없다. 정책에 특허권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좋은 정책 채택돼서 학부모와 학생에게 도움이 되면 그 자체로 좋은 것 아닌가."

 

- 정부 정책에서 더 보안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이자율을 확정해야 하고, 대졸자 졸업생이 얼마를 벌어야 환불을 시작하는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돈을 못 갚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또 대학원생 대출 지원도 필요하다.

 

로스쿨, MBA, 의학 전문대학원은 졸업과 동시에 우리사회 상류층이 되는 사람들인데 등록금이 굉장히 높다. 결국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다. 중·저소득층 학생들도 전문직에 진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등록금 상한제 병행해야... 감세 비용 대학 등록금에 투자하자"

 

- 그동안 대학 등록금은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 후불제가 실시되면 등록금이 더 오를 것이란 우려가 있다. 

"미국은 사립대학의 경우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공립은 주지사가 정한다. 주지사는 선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다. 그리고 등록금을 과도하게 인상하는 대학들은 의회에서 이유를 보고해야 한다.

 

이런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국립이건 사립이건 모두 마음대로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영국이나 호주의 경우는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는데 학교마다 등록금 액수가 거의 같다. 영국은 의회에서 등록금 상한선을 정한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에서는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등록금 자율화된 상황에서 후불제를 하면 국립 사립 모두 등록금 인상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 점은 보완해야 한다."

 

- 결국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상한제'와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등록금 상한제는 후불제 실시에 앞서 도입해야 했다. 교육비 계산해서 분야별로 비용이 얼마 드는지 표준 교육비 정해 일괄처리 하는 게 좋다. 정부가 전문 기관 만들고, 그곳에서 교육비를 연구하고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 대학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정책이 사립대학, 특히 지방 사립대학에 도움이 될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고소득층 자녀는 흔히 말하는 '서울 1류 대학'에 가고, 저소득층은 전문대나 지방대 가는 게 요즘의 추세 아닌가. 지방대일수록, 명문대가 아닐수록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학생이 많다. 당연히 자퇴, 휴학생들도 많다. 후불제 실시하면 이런 대학에게도 도움이 것으로 본다."

 

- 사립대학 교직원들 월급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비용으로만 써야 한다. 교직원 인건비 정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초중고는 다 국가가 부담하지 않나. 국가가 부담해줘야 사립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교육에만 쓰인다."

 

-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며 그 세금으로 등록금을 지원하자는 주장을 했었다.

"보수정권이니 감세 정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세금을 대학에 투자했다면, 우리 사회 등록금 문제는 거의 해결된다. 현재 대학 등록금 총액은 14조원이고, 현 정부 감세 규모는 12조원이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2년까지 26조 4000억원의 세금이 줄어들게 된다. 한 해 5조원 이상이 감세되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반값 등록금'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필요한 정책인가.

"우리나라의 고등교육비 국가보조 규모는 GDP 대비 0.6%다. OECD 평균이 1.1%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절반 수준이다. 국가보조 규모를 OECD 수준으로 올리고, 이걸 대학 등록금에 투자하면 그것이 바로 '반값 등록금'이다. 당연히 빨리 추진할수록 좋다."


태그:#등록금 후불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