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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쌍용차사태가 협상으로 극적 타결되었다. '제2의 용산참사'가 우려되는 상황이었기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하루 전 5일 아침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앞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 전에도 두 세 번 쌍용자동차 농성장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사실 내가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 날은 공장안 공권력 투입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난 아침 일찍 농성장옆 넓은 공터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사측 직원들이 공장앞에 일렬로 줄지어 서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순간에 그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피해야 한다는 직감은 들었지만, 너무 갑자기 진행된 상황이라 피하지 못했고, 난 누군가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측 사람들을 말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넌 누구야? ㅅㄲ야......" 그 말 뒤 내머리에 둔탁한 몽둥이의 부딪힘을 느꼈고, 쓰러져 있는 나에게 수많은 몽둥이질과 발길질이 가해졌다. <정상조업>어깨띠를 매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들에겐 적이었다. 내가 낀 선글라스까지 벗겨갔다. 나중에 생각해본 것이지만 '내가 두려워하는지 눈동자를 확인하고 싶었나?......' 공포가 밀려들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구나...' '저 사람들도 자녀가 있고, 형제가 있고, 부모가 있는 사람들 일텐데...'

 

간신히 자리를 피했지만, 전체 대열은 계속 쫓겼다. '아 여기가 2009년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사측직원들의 집단폭행에 이어 무장한 경찰에 의해 농성대열은 계속 밀려나고 있었다. 길가에 앉아있던 학생이 사측직원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한 후 버려져 있었고, 병원으로 실려간 뒤 8명에게 수혈을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포는 분노로 변했다. 집단폭행을 당하고 목격한 사람들은 돌을 깨고 가로수 받침목을 들었다. 나도 분노했다. 나의 분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진심이 필요한 때이다.

 

 

왜 힘없는 노동자끼리 싸워야 하는가?

공장에서 한솥밥 먹으면서 함께 일하고 살아온 사람들인데......

모두 자녀가 있고, 형제가 있고, 부모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누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땀흘리는 노동자들에게 야비한 싸움을 조장하는가?

 

쌍용차사태를 시작으로 비정규직 근로조건은 점점 열악해지고, 정리해고 구조조정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제2의 쌍용차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문제, 일자리문제, 경제위기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일하는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 정부는 살인적 공권력 투입이 아니라 쌍용차를 살리고, 평택경제를 살리는 공적자금투입을 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농성참가자들은 모두 감옥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다.

 

마지막으로, 절망의 순간에도 노동자는 노동자에게 칼날을 겨누지 말자고 호소하고 싶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심정과 삶을 안다.

동료에게 칼날을 겨눈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과 희망마저 없어지지 않는가?

차라리 함께 울자! 그리고 함께 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http://hytal082.tistory.com에도 동시 게재합니다.


태그:#쌍용차, #노동자, #상생의길, #가족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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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1번출구 초역세권 노동자마을카페 <카페봄봄>과 마포구 성산동 <동네,정미소>에서 주로 서식중입니다. 사회혁신 해봄 협동조합,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경제민주화네트워크에서 변화를 꿈꾸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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