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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2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자유예술캠프' 수업 첫 날이었다. 자유예술캠프는 문화부 감사의 타깃이 되었던 한예종의 이론수업 강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일반인을 위한 강좌다.

사실은 '자유예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한예종 건물에서 진행될 수업이었는데, 총장 선거에 지장을 준다는 저어기 '윗분'들의 꼬장으로 결국 연기되고 연기되다가 이름을 바꾸고, 장소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 회관으로 변경되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6월 즈음 그 소식을 접했는데,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예종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땐 이미 수강신청이 거의 막바지라 수강이 아닌 청강 신청을 했다.

그런데 위쪽에서 태클이 걸려와서 수업이 자꾸만 미뤄지는 탓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홈페이지만 '광클' 하고 있었던 터였다. 수강료는 '무료'지만, 장소 대관을 위해 한 과목당 만원씩, 수업이 많은 명작읽기의 경우는 3만 5천 원씩 내서야 '다행히' 수업은 시작될 수 있었다.

673명이 수강신청... 후끈 달아오른 학구열

뒤통수만 봐도 학구열이 느껴진다. 수업 시작 전에 여러 안내 사항을 이야기 하는 중이다.
 뒤통수만 봐도 학구열이 느껴진다. 수업 시작 전에 여러 안내 사항을 이야기 하는 중이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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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회관에 도착해서 2층에 올라가니 수강등록을 받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황지우 전 총장의 수업인 명작읽기의 경우 장장 673명이 수강 신청을 해서 그 열기가 후끈했다고 하는데, 한예종에서의 수업이 취소된 지금은 장소상의 문제로 수강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140명 들어가는 강당에 보조의자까지 총동원해서 163명을 최종 확정했단다. 남들은 다 피서를 떠나서 출근 시간마저 한산하다는 이 '휴가철'에 꾸역꾸역 두꺼운 '고전서' 옆구리에 끼곤 공부 좀 해볼 거라고 모인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했다.

헉, 그런데 과제가 있었던 걸 잠시 깜빡, 아니 살짝은 알고 있었는데 안했다. 첫 번째 과제는 그리스로마신화 읽고 '신들의 가계도' 그리기. 신들의 문란한(?) 연애사로 복잡하디 복잡한 가계도를 그리기가 힘들어서 잠시 패스할까 했는데, 어머머 다른 학생들은 커다란 전지에 자로 반듯하게 그려온 게 아닌가. 반성했다. 집에 가서 꼭 그려봐야지.

친근한 모습의 황지우 전 총장 "명강의는 기대 말라!"

이윽고 황지우 전 총장이 들어왔다. 실물은 처음 보았는데, 이렇게 말해도 될진 모르지만, 귀여웠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왔는데, 유명인(?) 같지 않고 친근한 모습이랄까?

게다가 수업은 "글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릿느릿 해서 명강의는 기대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중간 중간 허를 찌르는 솔직 화끈한 '말빨'로 좌중의 배꼽을 좌지우지했다.

황지우 전 총장의 모습. 동글 동글한 안경이 인상적이다. 수업 중간에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바람에, 단번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영어 공부도 해야 하는 거?
 황지우 전 총장의 모습. 동글 동글한 안경이 인상적이다. 수업 중간에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바람에, 단번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영어 공부도 해야 하는 거?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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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총장을 하면서 예술을 중심에 두고 인문학과 과학 기술과의 접속을 시도 했다. 새로운 교육 대안으로 '열린 학교'의 형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누구나 알지만 읽지는 않는 뻑뻑한 텍스트'인 명작을 읽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수업의 핵심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정복하기. 거기에 그리스시대의 철학, 희곡 등의 텍스트를 공부한다. 생각 만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선생님 말처럼 몇 천 년 동안 읽혀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명작을 내가 쓴 것처럼 '따져보며 읽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첫 번째 수업으로는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 분석하기,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을 '그려보기',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서사분석하기 등으로 진행되었다. 독특했던 점은 수업 내내 '직접 그려보고, 직접 읽어보라'는 주문이 많았다는 건데,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신선했다.

아, 깊고도 넓은 신화의 세계여. 나름 학창시절에 머리를 싸매고 읽어대었던 고전들의 향기는 이미 희미해져서, 다시 새롭게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30분에 한 번씩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봐 주는 센스를 발휘했지만 금세 4시간이 지나가버리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3일부터 16일까지, 총 8개의 강좌

자유예술캠프는 3일부터 16일까지 프란치스코 교육 회관에서 진행되고, 명작읽기의 경우 8월 말까지 계속된다. 대부분의 수강신청이 끝났지만, 일부 강좌의 경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의 강의실 3개를 빌려 여는 자유예술캠프에는 모두 8개의 강좌가 개설됐다. 황 전 총장 명작읽기 외에도, 이동연 전통예술원 교수의 '우리 시대 문화의 최전선', 김소영 영상원 교수의 '새로운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김채현 무용원 교수의 '종횡무진 축제난타', 소설가 복도훈의 '다른 세계로부터 배우기 SF' 등으로 구성돼 강의당 하루 2시간씩 5~6회 진행된다.

실기 전문학교와 맞지 않는 이론 교육을 해서 문화부 감사의 표적이 되었다는데, 실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윗분들은 모르시나? 그래서 이렇게 일반인인 나도, 수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오랜만에 공부 좀 해보고 싶다는데 그걸 막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

나름 열심히 필기한 노트와 노란색 이름표다. '상상력에 자유를!'
 나름 열심히 필기한 노트와 노란색 이름표다. '상상력에 자유를!'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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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자유예술대학을 시작으로 앞으로 이런 강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예종도 시련을 이겨내고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예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꿈의 학교'인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지.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던 하루였다. 맨날 골방에 틀어 박혀서 세상 어떻게 돌아가나를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나와서 보니 열심히 꿈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을 '새삼' 깨달았다.

니체의 "읽기만 하는 게으른 정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인용하여 결국은 모든 글을 '피로 써야 한다'는 황지우 전 총장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일단은 뭐, 숙제부터 열심히 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수강신청이 끝난 강좌도 홈페이지에 녹취록이랑 수업 파일 올라와 있으니, 자유예술대학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freeuniv.cafe로 들어가 보자.



태그:#자유예술캠프,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명작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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