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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한 농성 노동자가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한 농성 노동자가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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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일 '40% 구제안'을 내놓은 사측이 '총고용보장'을 주장하는 노조에게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청산론'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파산신청을 하루 앞둔 4일, 최악의 정리 구도인 경찰력 투입이 시작됐다.

파국의 '원흉'은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3일 "노조가 같이 빠져죽자는 식으로 죽을 길을 선택하고 있다"며 협상 결렬의 책임을 노조에게 돌렸다. 경영인단체인 전경련은 4일 <쌍용차 사태로 본 노사관계 현실과 과제> 보고서를 내고 "민주노총과 노조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리한 고용보장 요구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기업을 망하게 하는 노조활동이 더 이상 수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구조조정의 '희생양'인 이들이 파국의 '원흉'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 하지만 노동계는 현재 이를 막을 힘이 없다. '외부세력'이라 지탄받고 구속당하거나,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고지서를 받아든다. 총파업 깃발을 내걸어도 수세에 내몰릴 지경이다. 쌍용차 사태를 통해 오늘날 몇 차례 위기에 봉착했던 노동운동의 현실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다.

20년 넘게 노동운동 현장을 뛰어다닌 조건준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 정책국장은 자신의 책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매일노동뉴스 펴냄)에서 이 '마녀사냥'의 원인을 노동운동 내부에서 찾았다.

그는 "매년 쏟아지는 비난은 단지 보수언론들의 악의적인 왜곡선전에 머물지 않는다"며 최근 민주노총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임금실리'에만 매달려온 대공장 노조의 '자업자득'이라고 평했다. 또 경제위기가 깊어갈수록 노동운동은 언제든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녀사냥' 당하는 노동운동... '고용불안' 프레임으로 공장에 속박된 인간

20년 넘게 노동운동 현장을 뛰어다닌 조건준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 정책국장은 책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를 통해 고립된 대공장 노조 중심의 공성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지전을 펼치는 것만이 위기에 빠진 노동운동의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20년 넘게 노동운동 현장을 뛰어다닌 조건준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 정책국장은 책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를 통해 고립된 대공장 노조 중심의 공성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지전을 펼치는 것만이 위기에 빠진 노동운동의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매일노동뉴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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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원인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마음에 생긴 새로운 프레임들이라고 설명한다. 

먼저 언제 잘리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증'이 첫번째 프레임이다. 정리해고라는 과거의 혹독한 악몽과 '단결'을 위해 노조의 "대안 없는 위기를 강조한" 노동조합이 키운 고용불안증은 "고용만 보장된다면 뭐든 한다"는 조합원들의 생각을 키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국가에서 "고용불안에 대한 유일한 보험"인 공장에 매달리면서 스스로 "노동속박"을 선택했다. 저자는 이 현상을 '공장감옥'이라고 설명했다.

'공장감옥'은 '경기장에서 일어서기'와 '일부만 일어서기' 프레임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화된다.

"경기장에서 한 명이라도 일어서면 모두가 일어나서 경기를 구경하게 되는" 속성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자신이 필요한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매몰하게 되고, 모두가 경기장에서 일어서지만 다리가 아파 일어날 수 없는 이가 있는 것처럼 '일부만 일어서는 현실'은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현실을 자본과 권력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1등보다 미운 10등의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이다. 11등에게 1등보다 10등이 비교대상인 것처럼 비정규직에게 자본은 너무나 먼 1등이라면 매일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정규직은 10등이다.

특히 이는 앞서의 프레임들과 결합해 노동자 사이의 '생존경쟁'을 부추긴다. 공장감옥 안에서 조합원에게 인금인상을 책임지는 '자판기'로 전락한 노동조합과 가족들에게 '현금인출기'가 되어버린 노동자들은 이 프레임 안에서 무력하다.

저자는 노동운동의 위기와 패배의 결정판인 이 현상을 이렇게 개탄했다.

"결국 범인이 바뀌었다.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양극화의 주범은 자본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가 된 것이다. 가장 치졸하고 악랄한 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뺨 때리기'를 닮았다."

'공장탈출'만이 해법... 노동운동, 지역·사회와 소통 공감하는 진지전 펼쳐야

종교·시민사회단체·정당 대표자들이(오른쪽)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식수반입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친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에게 먹을 물과 음식물, 의약품 전달을 시도하다가 쌍용자동차 직원들로부터 저지되고 있다.
 종교·시민사회단체·정당 대표자들이(오른쪽)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식수반입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친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에게 먹을 물과 음식물, 의약품 전달을 시도하다가 쌍용자동차 직원들로부터 저지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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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조건준 정책국장은 역설적이게도 "공장탈출"을 주문한다.

그가 말하는 공장탈출은 공장과 직장을 모두 버리고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이 생산라인과 물량에 집착하는 '공성전'이 아닌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지전'을 펼치면서 '잠·일·술 세대'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다시 되찾자고 주장한다.

"지금의 민주노총은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구심이 아니며, 정부나 자본이 두려워하는 적대자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뻥 파업'으로 조롱받아 왔으며 급기야 '말 펀치'도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 무의미한 총파업의 반복이 법안을 좌지우지할 수준이 아님을 인정하고 저항의 진지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낫다."

저자는 "공장의 힘에 의존한 투쟁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공격받고 있지만, 거리로 흐르며 소통의 장벽을 넘고 부수며 만들어 가는 사회적 힘은 더 강력한 희망을 만들고 있다"며 촛불시위를 노동운동이 자성해야 할 계기로 제시한다.

"만약 파업이 공장 밖의 노동자와 민중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목적을 상실한 파업"이라며 "그런 파업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비판한 저자는 다시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함께 살자"라는 구호로 돌아온다.

그들은 70여 일이 넘게 "함께 살자"는 사회적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 - 잠일술 세대가 꿈꾸는 달콤한 상상 공장탈출

조건준 지음, 매일노동뉴스(2009)


태그:#민주노총, #노동운동, #쌍용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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