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www.cha.go.kr/)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1호 김치인 선생묘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갔다. 신천동 지나 안현부락 마을회관으로 오르는 좁은 길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묘역을 둘러보기가 참 어려웠다.

표지판을 따라 허름한 집들 사이와 골목길로 올랐지만, 공장 건물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도통 길을 찾을 수 없어 묘역 주변을 서성이던 끝에, 인가 바로 옆에 가림막을 치고 공사중인 배수로를 따라 힘겹게 무성한 수풀을 헤쳐가며 묘역에 이르렀다.

안현부락 마을회관 언덕길을 내려오면...
 안현부락 마을회관 언덕길을 내려오면...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시흥시 향토유적 김치인선생묘를 찾아내, 표지판을 따라 갔더니 공장만 나왔다.
 시흥시 향토유적 김치인선생묘를 찾아내, 표지판을 따라 갔더니 공장만 나왔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김치인 선생 묘역으로 이어진 길이 없어 결국 배수로를 따라 수풀을 헤치고 올라야 했다.
 김치인 선생 묘역으로 이어진 길이 없어 결국 배수로를 따라 수풀을 헤치고 올라야 했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암튼 김치인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 자는 공서, 호는 고정이라 한다.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의 아들로 영조 24년에 춘당대시 갑과에 장원하여 예문관 전적, 좌승지를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고 1766년 영의정에 올랐다.

당파를 조성했다 하여 영조 48년 직산현으로 유배되었다가 반년만에 풀려나영중추부사에 기용되었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고부겸승습주청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정조 9년에는 <대전통판> 편찬을 주관했으며 편저로는 <명의록>과 <열성지장통기>가 있다.

김치인 선생 묘역, 수풀이 우거져 있다.
 김치인 선생 묘역, 수풀이 우거져 있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김치인 선생 묘
 김치인 선생 묘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석양이 양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석양이 양 옆에 자리하고 있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묘는 정경부인 완산이씨, 달성 서씨, 광주 이씨 세 부인과 합장으로 첫부인인 완산 이씨는 묘 오른쪽에, 둘째 부인 달성 서씨와 광주 이씨는 묘 왼쪽에 각각 합장되었다. 묘역은 호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왼쪽에 묘갑이 있고, 단 중앙에 상석과 향로석이 자리잡고 있고 좌우에 석양이 한 쌍 서 있다.

신도비는 묘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묘역 내 십이지신상과 문인석, 하마비 등과 함께 일제가 반출해갔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일제에 의해 훼손당한 묘역 주변은 '공장-땅 임대'란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세공장들이 다닥다닥 밀집해 있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시도기념물의 경우도, 문화재구역 안에서는 건축물 등 각종 시설물의 신축-증축-개축-이축 또는 용도변경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인데 말이다.

김치인 선생 묘역 주변은 시흥시 향토유적 제1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볼품없었다.

묘역에서 보이는 안현동과 신천동 일대
 묘역에서 보이는 안현동과 신천동 일대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묘역 아래는 인가뿐만 아니라 영세공장이 밀집해 있다.
 묘역 아래는 인가뿐만 아니라 영세공장이 밀집해 있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시흥시 향토유적 제1호 주변은 볼품없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1호 주변은 볼품없다.
ⓒ 이장연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치인선생묘, #공장, #향토유적, #시흥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