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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학생들은 지난 5월 22일부터 문광부 앞에서 감사처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47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예종 학생들은 지난 5월 22일부터 문광부 앞에서 감사처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47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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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1인 시위도 해보네."

문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내뱉은 말이다. 지난 5월 말, 문광부의 한예종 감사결과 발표를 접한 뒤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전공이 없어지게 생겼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1인 시위까지 나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7일 정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영상이론과에 재학 중인 P씨는 전날 비를 맞아 여전히 축축한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문광부 앞에 묵묵히 서 있었다. 1인 시위에 나가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응원하러 찾아갔지만, 막상 현장에서 내가 무슨 응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저 시위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평소 농담 삼아 "밥줄이 끊겼다"고 푸념하던 친구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단순히 밥줄 때문에 1인 시위에 나온 건 아닐 게다.

신임 총장 선출을 시작으로 구조조정 시작?

이달 중순 진행될 한예종 총장선출을 위해 김남윤 음악원장, 박종원 영상원장, 임웅균 음악원 교수, 허영일 전 무용원장이 지난달 18일 후보등록을 마쳤다. 이에 대해 6월 25일 <한겨레>는 총장 후보와 관련하여 "후보들은…대체로 친보수 성향의 교수들로…김남윤 교수와 영화 '영원한 제국'의 감독으로 알려진 박종원 영상원장의 2파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교수는 저명한 실기 전문가로서, 학내 인망이 높고, 박 영상원장은 학계 뉴라이트 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현 정권 코드와 잘 맞는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다시 말해 특정 교수가 총장으로 임명될 경우, 실질적으로 신임 총장은 친보수 성향을 띤 채 이명박 정권과 코드를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예종 사태를 촉발시킨 유인촌 문광부장관을 비롯해 친보수 성향의 총장을 두려는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문광부 정문 옆에 놓여있다.
 한예종 사태를 촉발시킨 유인촌 문광부장관을 비롯해 친보수 성향의 총장을 두려는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문광부 정문 옆에 놓여있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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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명박 정권과 같은 코드의 인사가 이루어질 경우, 사실상 한예종은 문광부의 감사결과에 따른 처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예종 비대위의 감사결과 의의신청에 대한 문광부의 답변이 이를 추측케 한다. 문광부는 지난달 16일 답변서에서 "이미 재학생이 수학하고 있는 '서사창작과' 등 기존의 학과는 폐지하지 않는다. 단, 현행법과 불일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이는 우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적절한 계획을 마련한다"면서 서사창작과 및 이론학과의 존치가 현행 한예종설치령에 위배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리면서 이들 학과에 대하여 분명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문광부의 원칙은 "학교 자율에 맡긴다"

문광부는 한예종 사태에서 발을 빼는 수순을 밝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신임 총장을 선출하더라도 문광부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통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문광부의 입김은 실질적으로 여전히 행사될 전망이다.
 문광부는 한예종 사태에서 발을 빼는 수순을 밝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신임 총장을 선출하더라도 문광부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통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문광부의 입김은 실질적으로 여전히 행사될 전망이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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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교수의 인사, 즉 임용, 재임용 및 징계는 감사에서 제시된 범위를 고려하여 학교에서 학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한다"라고 하는데 이는, 한예종설치령 제4조 제1항에서 문광부 장관의 승인만 얻으면 총장이 학칙을 정하고, 변경을 가능하게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신임 총장의 뜻대로 교원들을 재구성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수 임명권은 총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앞으로 신임 총장이 누가 되는냐에 따라 한예종 교원 재구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얼마 전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1인 시위를 하는 학생에게 학과를 없애지 않으니 안심하고 공부하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또한 문광부는 감사결과만 발표하고, 나머지는 학교 자체에서 해결할 문제이니 학과폐지를 걱정하지 말라는 친절한 설명도 잊혀지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문광부가 직접 칼을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칼은 한예종 내부에서 꺼내질 것이다. 문광부는 제도적 허점을 노려 한예종을 재구성하는 일에 간접적으로도 깊숙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적 주인공이길 원하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고생하는 친구에게 "왜 1인 시위를 하냐?"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친구의 답변 또한 간단했다.

"부당하기 때문이다."

응원은커녕 방해만 됐을 나에게 그 부당함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숙제를 준 것이다.

처음으로 1인 시위에 참여한 친구를 보면서 그가 말하는 ‘부당함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1인 시위에 참여한 친구를 보면서 그가 말하는 ‘부당함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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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결과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물음에 핵심적 내용이 변하지 않은 문광부의 답변, 그리고 새로운 총장 선출과 총장을 정점으로한 학교의 자율권. 이후에는 학교차원에서 이론전공을 폐지하게 되는 수순이 정해져 있는, 마치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은 이미 결정된 감사결과를, 이미 등록된 총장후보를 바꿀 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나리오의 비극적 주인공이길 거부한다. 부당하기 때문이다. 부당함을 알리는 이 1인 시위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태그:#한예종, #한국예술종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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