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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철회 도미노'에도 교과부는 30개 고집

대전을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자율형사립고 신청이 마감된 가운데 교과부는 서울에 26개, 지방에 13개 등 총 39개교가 접수하였고 이 중에서 서울에 20개, 지방에 10개 정도의 자율형사립고를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3일까지 신청을 접수 중인 대전에서도 현재 신청한 학교가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신청이 매우 저조하고, 서울에 편중되어 있다. 그나마 신청학교들의 대부분이 최소 자격 미달인 부실사학들이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서울 20, 지방 10'이라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 자율형사립고 신청 현황 전국적으로 신청이 매우 저조하고, 서울에 편중되어 있다. 그나마 신청학교들의 대부분이 최소 자격 미달인 부실사학들이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서울 20, 지방 10'이라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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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신청교들 대부분이 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기준인 등록금 대비 재단전입금 3~5%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어서 과연 이 공언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의 경우 애초 희망교 67개 중 절반 이상이 중도 포기하고 33개만이 신청을 접수하였는데, 이 중에서도 인창고, 대원여고, 미림여고, 대진고, 대진여고, 충암고, 덕성여고 등 7개교가 신청서를 접수한 후 포기해 버렸다.

포기 사태는 지방에서도 줄을 이었다. 애초 12개 정도가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던 경기도에서도 신청 단계에서 5개 정도로 줄어들더니 막상 최종 신청을 한 학교는 안양 동산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4개의 학교가 신청하였다가 경상고와 영진고는 신청을 철회하고 2개만 남았다. 더 많은 학교들이 심각하게 신청 철회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애초 계획대로 "서울 20개, 지방 10개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자신(?)하고 있다.

남아있는 학교들도 자격 미달인 부실사학들이 대다수

언제, 또 어떤 학교가 신청을 철회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서울에 현재 남아 있는 26개 학교 중에서 07년 기준으로 최소 자격기준인 재단전입금 5%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는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10개 학교도 강남구와 종로구 등에 중복되어 있어서 자치구별로는 7개 구에만 자격을 충족하는 학교가 있고 나머지 18개 구에는 해당 학교가 없다. 애초 서울교육청은 5개 정도를 인가한다는 방침이었는데 20개를 고집하는 교과부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다.

지방은 사정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나마 10개 남짓 되는 신청 학교들 중에서도 대부분이 최소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자립형사립고였다가 자율형사립고로 전환을 신청한 부산 해운대고와 대구의 계성고 정도를 제외하면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익산 남성고나 부산 동래여고, 군산 중앙고, 경북 김천고, 경남 창신고 등 전입금 비율이 1%도 안 되는 학교들도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했다.

목표치 달성 위해 '무사 통과'시키겠다는 속내

전국적으로 자율형사립고 30개가 아니라 10개도 어려운 것이 현재의 객관적 현실로 보인다. 사정이 이런데 교과부는 무엇을 믿고 '서울 20개, 지방 10개'를 장담할까? 재정뿐 아니라 교육과정이나 선발계획, 시설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는 이렇게 될 수가 없다.

결국 교과부는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장밋빛 '희망 사항'으로 가득 차 있는 신청 서류만 보고 거의 모든 학교를 지정해 주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어느 학교가 기준에 미달하는 계획서를 내고 허가를 해달라고 하겠는가? 이는 재정이 열악해 법정전입금도 못 내고 있고, 학교 운영도 어려운 부실 사학들에게 자율형사립고를 허가해 주겠다는 셈이다.

부실사학이 자율형사립고가 되면 그만큼 학생들의 등록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고, 부패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교과부가 애초 설정한 목표치인 30개를 고집하는 것은 '심사 없이 무사 통과'시켜 주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속 타는 교과부 뻥튀기와 거짓말, 당근에 협박까지

최근 교과부의 행동은 교과부가 자율형사립고 30개에 얼마나 초조한지를 잘 보여준다. 먼저, 인천에 자율형사립고 설립 신청교가 하나 있다고 발표하였지만 거짓말로 보인다. 인천공항공사는 공적 기업의 사회 환원을 위하여 장기적으로 자율형사립고나 (일반)사립고 설립 계획을 밝힌 적은 있지만 교육청에 2010년 설립 신청서를 내지도 않았다. 자율형사립고 설립은커녕 이를 신청할 학교법인도 설립하지 못했고, 학교 부지도, 건물도 없는 상태이다. 내년 2010년 자율형사립고 설립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충남 천안 북일고도 사정이 비슷하다. 최근 불법적인 국제반 운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천안북일고가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한 것으로 발표하고 언론도 이렇게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으로 보아 천안북일고가 설립 신청을 한 것은 자율형사립고가 아니라 자립형사립고이다. 천안북일고는 전국단위 학생 50% 모집과 한화임직원 자녀 특별전형을 내세웠는데 이는 자율형사립고에서는 불가능하고 자립형사립고에서만 가능하다. 이 둘은 법적 근거도, 모집 단위도, 교육과정도 다른 별개의 학교이다. 그런데 천안북일고도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하였다는 식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겉으로는 자율형사립고를 신청했지만 사실상은 자립형사립고를 신청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과부는 서울이 26개, 지방은 부산·광주·전북·대구 각 2곳, 경기·인천·충남·경북·경남 각 1곳 등 총 13곳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울산·강원·충북·전남·제주·인천·충남 등 7개 시도에 신청 고교가 없다는 것이 맞다.

신청 학교에 대한 조작뿐 아니라 자격에 대한 뻥튀기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교과부는 서울 20개, 지방 10개를 지정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 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 기준을 만족하는 학교는 지방 2~3개, 서울 10개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 안배과 지방교육청의 사정 등을 고려하면 전국적으로 30개는커녕 10개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교과부는 30개 지정에 문제가 없다고 뻥튀기를 하고 있다.

신청 철회가 도미노현상처럼 이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교과부는 서둘러 이주호 차관이 직접 교장단 모임에 나타나 자율형사립고 지정 조건을 완화해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하여 "올해에는 신청학교가 얼마 되지 않아 지정이 쉽지만 앞으로는 경쟁률이 높아져 지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상의 협박을 통해 자율형사립고 신청 철회를 막고 있다.

국회도 무시한 채 국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자기들끼리 만든 기준을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고,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을 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속이 타는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인데 이런 사태는 학생들 보기 부끄러운 일이다.

교과부의 30개 방침은 지방교육자치 무시하는 불법이자 월권

MB정부는 학원자율화 조치와 자율형사립고 추진에서 알 수 있듯 교육에서도 자율과 경쟁을 강조한다. 교육청의 자율을 내세우고, 학교장의 자율을 주장한다. 그러나 어찌된 판인지 말로는 그렇게 자율을 내세우는 그들이 정작 행동으로는 법으로 보장된 자율마저 짓밟고 있다.

초중등교사의 징계권은 시도교육감에게 있는데도 하루 전날 교육감들의 모임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다음 날 교과부는 징계권 없는 부교육감들을 소집해 놓고 시국 선언 교사들의 징계를 결정하고 시도교육감들에게 형사 고발을 종용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교사 징계 여부는 자신의 권한 침해라고 화를 내야 할 교육감들이 대부분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망각하고 이 요구에 순순히 응해서 교사들을 고발하고 징계에 나섰다는 점이다.

자율형사립고도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관장사무)는 "학교, 그 밖의 교육기관의 설치·이전 및 폐지에 관한 사항"을 교육감의 권한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05조의3(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제1항도 자율형사립고의 지정 운영은 교과부 장관이 아니라 교육감의 권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 평준화 지역에 자율형사립고를 지정 운영하는 경우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협의권만 가진 교과부가 자율형사립고 지정에 관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서울교육청은 자율형사립고를 '10개도 많고 5개 정도가 적당하다'는 판단이지만 교과부는 지침을 내리듯 20개를 고집한다. 20개를 설립할 경우 신입생 모집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의 막무가내에 서울교육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전북 교육감은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자율형사립고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지금도 학생 수급과 재정 부실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지방의 거의 모든 신청교들을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인천은 아예 교육청에는 신청학교가 없었는데 교과부가 나서서 신청 학교를 만들어 내는 수완까지 발휘한다.

대구나 광주, 경남, 경북 등도 시도교육감은 신청한 학교들이 거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교과부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지방에서 10개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법치와 자율을 스스로 부정하는 교과부의 표리부동

지역 교육청에서 난색을 표하는데 30개 자율형사립고 설립을 강제하고 있는 것은 교과부의 명백한 월권이고 불법이다. 이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과 초중등교육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방 분권과 교육자치의 기본 정신에 대한 부정이다.

말로는 자율을 내세우지만 정작 교과부 자신들이 나서서 국민의 투표로 뽑힌 지방교육 수장들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지방교육 수장들 역시 속만 끓이지 '월권하지 말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법치를 내세우면서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 교과부는 말로는 자율성을 내세우면서 지방교육 수장들의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고, 본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있다. 이것이 자율형사립고 30개 강행 방침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우리 교육의 슬픈 현주소이자 현 교과부가 내세우는 법치의 이중적 현실이다.


태그:#자율형사립고, #위헌, #월권,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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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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