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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7년전, 그러니까 1982년 여름 쯤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음악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하루였습니다.

너무나 고단해 보였던 삶이 재기의 희망까지 앗아가는 듯 그렇게 쓸쓸하게 우리의 영웅이 사라져 갔습니다.

화려한 무대를 누볐던 대가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눈요기 거리를 만들어 빚을 갚기 위해 무너져 내린 얼굴, 상할데로 상한 척추와 관절을 이끌고 약물에 의지해서 다시 무대에 나서야 했던 마이클잭슨(Michael Jackson).

성형에 중독되다시피 하며 자신을 계속 바꿔야 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마이클이 언론에 고백한 것처럼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이 싫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음악평론가 조성진씨는 "오늘날 마이클 잭슨의 신화는 그 자신의 천재성과 엄청난 노력이 함께 해 얻은 결실"이라며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그는 거의 갇혀 살다시피 하며 최고 음악인이 되기 위한 혹독한 영재교육을 받았고,  결국 최고의 가창력을 갖게 되었음은 물론 최고 수준의 댄스로, 전세계 춤과 음악계 판도 모두를 바꿔 버렸다"고 말합니다.

마이클의 인생에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마이클은 이와 관련해 "너무 일찍 데뷔해 학교도 못가고 친구도 없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면서 "나이 들어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성형을 해야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지나친 성형으로 다른 모습을 추구했던 것은 나이가 들면서 애증의 감정으로 엮인 아버지의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각종 소송사건과 황색 언론, 그리고 크고 작은 질병은 오랫동안 그에게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전처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최근 마이클이 약물 부작용으로 숨진 그녀의 아버지인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최후를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6일 마이클의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약물을 사용한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유족들은 마이클이 숨지기 직전에 그의 의사였던 콘래드 머리가 데메톨이라는 강력한 진통제를 주사한 것을 문제삼으며 재부검 실시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검에 따른 정확한 사인에 대한 발표는 6-8주 후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는 소송과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던 마이클.

왜 사람들은 영웅을 만들고, 그가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까요?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옛 기억을 들춰내고 그를 다시 바라보곤 할까요?  많은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그에 대한 질투와 시기 때문은 아닐까요?

심리학자인 보르빈반델로는 <스타는 미쳤다>는 저서를 통해서 마이클 잭슨이 소아애호증 환자라고 지적합니다.

마이클이 연예계 활동으로 공백이 생긴 어린 시절로 회귀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꼬마스타 시절부터 갇혀 살다시피 하며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려야 했던 마이클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의 네버랜드 목장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동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살 때부터 가수가 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호된 훈련을 받았던 그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행복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고 합니다.

마이클은 그의 노래 'Heal the world'에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라고 외쳤듯이 실제로 힐더월드재단을 만들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비롯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많은 기부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1999년 당시 마이클잭슨은 서울과 뮌헨에서 공연했던 Micheal Jackson and Friends 콘서트 수익금 총 330만달러를 UNESCO, 넬슨만델라 어린이를 위한 기금 국제 적십사단체에 제공한 것을 비롯해 각종 콘서트 수익을 내놓아 생전에 2000억원에 달하는, 빚에 버금가는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음악과 무대를 통해서 어린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지만, 정작 아동들을 상대로 한 성추행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네버랜드를 파괴하고, 2000억원이 넘는 소송관련 비용을 떠 안겨 그가 파멸에 이르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암을 앓고 있던 어린이를 살렸건만 그로 인해 어처구니 없는 잔인한 대가를 치룬 셈입니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전형적인 증후를 보인 마이클잭슨은 자서전 <문워크>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외롭게 만들었을까요?

보르빈반델로는 그의 저서에서 자신이 제시한 심리적 증상을 열거한 다음, 그것에 맞춰 스타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스타들을 내세워 요즘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 심리적인 증상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스타들의 유년기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얘기합니다. 또한, 그런 요소들이 나중에도 고쳐지지 않으며, 더 발전해서 스타들이 좋지 않은 결말을 자초한다고 말합니다.

마이클 역시 자신의 어릴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인해 천재적인 음악성과 연예기질을 뒤로한 채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속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린이를 빼놓고선 그의 삶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병적인 애착을 보였던 마이클은 전처인 데비로우와의 사이에서 프린스 마이클(12)과 패리스(11),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대리모를 통해서 프린스 마이클2세(7)를 슬하에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생전에 100곡 이상의 미발표곡을 녹음하고 이를 아이들 몫으로 남겨 뒀다고 합니다.

마이클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계속되는 셈입니다. 냉대와 구설수 속에서 사람들을 등지고 자멸해 간 그는 다름 아닌 그의 아이들을 위해 100곡의 노래를 남몰래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마이클이 프린스 마이클과 패리스 등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이클의 전 부인이자 두 아이의 생모인 데비 로우는 영국의 음악전문사이트 곤택트뮤직과 인터뷰를 갖고 파파라치에 의해 이달초 공개된 사진속 자녀들이 전형적인 백인아이라는 의문에 대해, 마이클의 뜻에 따라 정자은행을 통해서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백인의 정자를 제공받아 자신이 두 아이를 낳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이클과 결혼한 2년동안 서로 별도의 집에서 각자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데비 로우는 당초 마이클과의 결혼생활, 자녀 양육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던 그와의 합의를 깨고, 마이클은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아니라 백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녀 양육권에 대한 소송을 지난해 제기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이클은 스스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지나친 백색피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도 백인이기를 원했던 것일까요?

반면 마이클은 얼마전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 세 아이 모두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친자녀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아이들을 둘러싼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아이들을 위한 미발표곡 100곡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해 다시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피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P.S. 故 노무현 前대통령 추모곡으로 UCC사이트를 오르 내렸던 You are not alone... 신비하고 놀라운 선율과 춤으로 새로운 감각의 팝을 열었던 빌리진(Billie Jean)의 변천사를 아래에 담아봅니다.

마이클 자신을 위한 추모곡? 자신의 외로움을 담은 노래? You Are Not Alone

You are not alone.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For I am here with you.          내가 여기 당신 곁에 있으니까요.
Though you are far away,      당신이 멀리 떠나 있어도,
I am here to stay.                 난 여기에 머물러 있을겁니다.
you are not alone.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
For I am here with you.          내가 여기 당신 곁에 있으니까요.
Though we are far apart,        우리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You are always in my heart.    당신은 항상 내 맘 속에 있습니다.

빌리진(Billie Jean)의 변천사 (마이클은 빌리진을 노래할 때, 백댄서를 두지 않았다)

☞ ①1983년 모타운(Motown Records) 25주년 기념공연(25살) : 고조기

☞ ② 1997년 호주시드니 문워크 공연(39살) : 절정기

☞ ③ 2001년 마이클잭슨 데뷔 30주년 기념공연(43살) : 마지막콘서트


태그:#마이클잭슨, #빌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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