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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기운이 엄습하고 있다. '제3차 북핵 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제3차 서해교전'과 '3일 전쟁'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남북한의 50년 갈등과 증오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협력의 첫걸음을 내디딘 6.15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건 긴급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말]
문정인 교수는 2000년과 2007년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해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합의과정을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본 유일한 학자이다.
 문정인 교수는 2000년과 2007년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해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합의과정을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본 유일한 학자이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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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연세대 정치외교학과)는 2000년과 2007년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그는 유일하게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합의과정을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인수위 시절부터 당선자의 대미 고위사절단 일원으로 워싱턴을 방문하고 한미동맹관계를 조율했으며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대선을 앞둔 2007년 12월 1일 방한한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에 의심을 품은 북측을 설득하는 특수임무(?)도 수행했다.

2007년 당시 대선을 코앞에 두고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김양건 부장은 마지막 날에 당초 예정됐던 SK텔레콤 참관을 불참하고 일행과 따로 떨어져 호텔에서 머물렀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당시 '공백의 2시간' 동안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 '김양건 미스터리'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김양건 부장을 만난 사실과 그 2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처음 밝혔다.

"그때 우리가 북에 주문한 것은 (과거처럼) 새 정부를 길들인다고 인수위 때부터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남북관계, 앞이 안 보인다... 6자회담 복귀, 해법이 없다"

문정인 교수는 "이렇게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남북 간의 많은 문제를 자꾸 국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정인 교수는 "이렇게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남북 간의 많은 문제를 자꾸 국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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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상아탑에 함몰되지 않고 현장에서 국제정치와 외교안보를 연구한 전문가이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때로는 망원경(거시적)으로, 때로는 현미경(미시적)으로 남북관계를 탐구했다. 그런 그가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앞이 안 보인다"고 했다.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도 "해법이 별로 없다"고 했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문 교수는 23일 오후 연세대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 실효성 없는 대북정책(비핵개방3000)의 강요 ▲ 남북문제의 국제화 ▲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의 부재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문 교수는 특히 "이렇게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남북 간의 많은 문제를 자꾸 국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유엔의 공동제안자로 나섰고, (금강산에서 피격된) 고 박왕자씨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으로 가져갔고, 북핵 문제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도 그렇고, 남북한 문제를 국제적인 쟁점으로 만들어서 국제압력으로 가니까 북한이 남측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한미일 공조로 자신들을 봉쇄하고 고립시키겠다는 것인데 남한과 대화할 필요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남북 간에 20개월 넘는 대화의 단절이 있었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가 '믿는 구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단절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국면은 '3차 북핵위기'... 핵 가진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이 북한이 6자회담 등 '대화의 장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는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보 전문가인 그에게 현재의 상황은 더 우려스럽다.

"문제는 제재국면이 중장기화되면 우발적 충돌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확전을 막을 메커니즘이 없다. 핫라인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의 국면을 '3차 북핵위기'라고 진단했다.

"3차 북핵위기가 맞다. 그런데 세팅이 달라졌다. 1, 2차 위기는 북한이 핵을 갖기 전이었다. 그래서 플루토늄을 갖는 것과 플루토늄 무기화를 막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무기화를 했고 탄도미사일 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 지금은 핵을 가진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1차 북핵위기는 북미 제네바합의, 2차 북핵위기는 6자회담의 틀로 각각 해소되었다. 그렇다면 3차 북핵위기의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그는 "앞이 안 보인다"고 했다. 이유는 "각국이 다 국내정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양보를 하면 지지세력에 엄청 비판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지도도 낮은 상황에서 지지세력을 만족시키려는 정책을 쓰게 될 것이다. 일본 아소 다로도 인기가 최악이기 때문에 북한이 악수를 두고 거기에 강경 대응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강경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보문제에 아주 취약한 대통령으로 비판받게 돼 있다."

"북한은 국방위 중심으로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이들이 대동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정인 교수.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이들이 대동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정인 교수.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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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교수는 특히 "북한은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고, 핵 정책·대미·대남 정책이 국방위 중심으로 가고 있다"면서 "북한의 핵을 북한의 후계구도와 연결시켜서 보는데 상당히 잘못된 관찰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언론이 2012년 강성대국 만들면서 김정운에게 핵이라는 선물을 줌으로써 김정운의 영도력을 높이려 한다고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핵개발은 단기적 사안이 아니고 롱텀(long-term) 전략이다. 보통 북한의 핵 보유배경을 서너 가지로 보는데, 미국에 대한 최소한의 핵 억지력, 남쪽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열세 만회, 김정일 체제 유지, 핵 무장력 강화로서의 대미 협상력 카드 등 네 가지다.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가장 큰 이유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틀 내에서 핵 문제를 풀어나가야지 세 번째인 북한의 체제안보-후계구도를 위해 핵을 쓴다고 보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대북 접근이다."

사실 그의 말대로 "그렇게(후계구도로) 보면 북한의 체제전환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도 협상에 나올 이유가 없다. 그는 "김정일 유고상황이 와도 북한은 국방위 중심으로 움직여 나갈 것"이라면서 "힐러리 국무장관도, 이 대통령도 후계문제 때문에 북한이 강경하다고 하는데 지금 북한은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해법은 원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남북한이 모두 6·15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멀리 나가 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도 회의적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 정부가 10·4선언과 6·15공동선언을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 두 선언은 '친북 좌빨'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이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으로 두 선언을 수용할 수 있을까?"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우세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찬바람이 불면 북미가 대화의 장에 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말 여름의 고비를 넘기면 가을에 북미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유엔이 제재를 결의했고, 미국은 독자적인 금융제재에 나서겠다고 했기 때문에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을 폐기시킬 명분이 없다.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중략)… 해법이 별로 없다. 아직 대북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는데, 7월 말~8월 지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거다. 북한의 핵무장은 더 증강되고…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다."

다음은 문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난 정부는 한계가 있는 속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많이 했다. 6자회담 교착국면에서 풀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지난 정부는 한계가 있는 속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많이 했다. 6자회담 교착국면에서 풀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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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흔히 '기다리는 전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북한이 6자회담 등 '대화의 장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는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 포함해 이 정부 외교라인은 어떤 때는 북한과 잘 해나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북한의 체제붕괴에 따른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시그널이 동시에 나타나서 헷갈린다. 또 어떤 때는 개성공단 발전을 원한다고 하고, 어떤 때는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발전은 어렵다고 한다. 메시지를 정리해야 한다. 혼란스럽다."

- 지난 정부에서는 핵문제는 북미관계에 맡기고 남북관계에 주력했다면, 이 정부는 처음부터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선 '비핵개방3000'은 기본적으로 등가성이 문제다. 북한에게 핵은 체제와 국가안보와 같은 것인데 우리는 북한을 개방시켜서 (국민소득) 3천불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니까 등가성에서 수용을 못 하는 것이다. 또 개방하고 안 하는 것, 그 시점과 폭은 북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 남측에서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3천불이라는 것도 남쪽에서 일방적으로 자의적으로 결정한 것이니 수용 못 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남북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남북 간의 많은 문제를 자꾸 국제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유엔의 공동제안자로 나서고, (금강산에서 피격된) 고 박왕자씨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으로 가져가고, 북핵 문제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도 그렇고, 남북한 문제를 국제적인 쟁점으로 만들어서 국제압력으로 가니까 북한이 남측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이 없다. 남북경협은 막혀 있고, 핵문제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직접 나서기보다는 한미일 3국 공조에 북핵문제를 신탁한 경향이 있다. 우리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한미일 공조로 자신들을 봉쇄하고 고립시키겠다는 것인데 남한과 대화할 필요가 있겠나. 지난 정부는 한계가 있는 속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많이 했다. 6자회담 교착국면에서 풀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 이 대통령의 <월스트리트저널>(13일) 인터뷰를 보면, 기존의 '기다리는 전략'을 버리고 더욱 공세적인 대북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5자회담 제안이 대표적인데 5자회담 구도는 부시 행정부 때 추진했다가 용도 폐기된 네오콘적 발상 아닌가. 도대체 의도가 뭔가.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2003년 2월 2일 당시 노무현 당선자의 대미 고위사절단의 일원으로 워싱턴에 가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한테 '남쪽 얘기를 듣고 북한과 직접 대화하라'고 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했다. P5(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5(남·북·일·호주·EU)로 가자는 것이다. 북한이 거기에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나머지 9개국이 똘똘 뭉치면 결국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게 아니냐고 하더라.

이후 6자회담 때 북한이 말을 듣지 않을 때 5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했고 한국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현도 (5자가 아니라) '6-1세팅'으로 만나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말을 안 들으니까 5자가 제재하자는 건데, 기본적으로 중국이 (5자회담을) 받을 이유가 없다. 후진타오 체제가 시작한 이후 외교에서 가장 성공적인 게 6자회담이다. 그리고 주도권을 한미일이 잡으면 중국으로서는 기분 나쁜 것이다. 5자 구성 자체가 북을 고립봉쇄하려는 기제일 뿐이지, 그 자체가 외교적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

- 이 대통령은 또 같은 인터뷰에서 "북한은 김정일 일가의 정권유지를 위해 핵보유를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화할 용의가 있다면서 이런 말을 한 것은 논리적 모순이고 상대방에게 대화 제안의 신뢰를 줄 수 없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핵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면, 북핵 문제는 체제를 바꿔야 해결된다는 것인데 북한이 수용할 수 있겠나."

- 그 인터뷰를 계기로 이 대통령이 '기다리는 전략'에서 공세적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지금까지 공세적으로 나갔지, 사실 기다린 것도 없었다. 북한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응한다고 하는 것은 교류협력 지연시키고 북한의 내부적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다림의 전략이나 지금 전략이나 차이가 없다."

-'5자회담' 같은 것은 청와대 안보라인이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니겠나.
"그렇게 본다.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들이 현 정부에 들어갔다.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나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이전부터 기본적으로 북한에 '당근'은 필요 없다, '채찍'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를 저질렀는데 처벌해야지 보상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고, 5자가 제재하고 응징하면 결국 북한이 협력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나 외부 자문그룹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 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서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조장하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런 지적이 타당하다고 보는가.
"문제는 제재국면이 중장기화되면 우발적 충돌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확전을 막을 메커니즘이 없다. 핫라인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 한 신문 칼럼에서 "북한이 비행기가 안 뜨는 시간을 택해 해주 쪽에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미사일 2~3개만 쏘면 공항 폐쇄고,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는 마비된다"며 남측이 압도적인 군사력만을 믿고 무력충돌을 쉽게 생각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국가안보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우려해 얼마나 많은 국방비를 쓰나. 모든 개연성을 다 염두에 두고 관리체계를 준비하는 게 국가안보의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그럴 개연성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런 발상은 위험하다.

어느 누가 알 카에다가 비행기 납치해서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나. 미국 정보기관이 왜 실패했나?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취약성에 대해 더 신경 썼더라면 예방도 할 수 있고,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쪽에서 국방 계획하는 사람들이 남쪽의 어디를 가장 급소라고 생각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내재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계5027에 따라 기계적이고 관성적으로 서해에서 접전하면 북한이 해안포 쏘고 우리는 반격하고, 그럼 전면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자체가 초토화될 것이 두려워서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주 같은 데서 인천공항에 미사일 두어 발만 쏘면 한국 경제가 마비되는 것 아닌가."

- 북한과 접촉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이 대통령이 경제문제를 내걸고 당선됐다는 사실과, 경제문제가 이 정부의 약한 고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럴 가능성을 우려하더라.
"그럴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의 취약점을 비집고 나서겠다면 자신들도 심각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북한도 우리 시각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지난 11일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특별강연을 듣고 있다.
 지난 11일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특별강연을 듣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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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세미나에서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정부,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다"고 진단했는데, 이 정부가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도 그걸 참 모르겠다. 콜린 파월 자서전을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더라. 합참의장이던 1차 걸프전 때 파월은 이라크 침공에 부정적이었다. 월남전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적 결과를 잘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서전에 'chicken hawk'(닭 같은 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군대 안 가본 사람들이 더 강경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월남전 때는 반전운동 하다가 입장을 바꿔서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 들어갔고, 그 일부는 네오콘이 됐는데 이들을 비꼰 표현이다.

우리도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국가안보전략을 짜는 사람들이 그런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전쟁은 외교도 안 되고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쓰는 최후 수단 아닌가."

- 이번 위기를 3차 북핵 위기로 보는 데 이의가 없는가? 그렇다면 이번 위기가 지난 1, 2차 위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3차 북핵위기가 맞다. 그런데 세팅이 달라졌다. 1, 2차 위기는 북한이 핵을 갖기 전이었다. 그래서 플루토늄을 갖는 것과 플루토늄 무기화를 막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무기화를 했고 탄도미사일 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 지금은 핵을 가진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 1차 위기는 북미 제네바합의, 2차 위기는 6자회담의 틀로 각각 해소가 되었는데 3차 위기는 어떻게 타결될 것으로 예상하나.
"앞이 안 보인다. 각국이 다 국내정치와 맞물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양보하면 지지세력에 엄청 비판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지도도 낮은 상황에서 지지세력을 만족시키려는 정책을 쓰게 될 것이다. 일본 아소 다로도 인기가 최악이기 때문에 북한이 악수를 두고 거기에 강경 대응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강경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보문제에 아주 취약한 대통령으로 비판받게 돼 있다. 이미 공화당은 공세를 시작했다.

내가 볼 때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 볼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이것이다. 북한의 핵을 북한의 후계구도와 연결시켜서 보는데 상당히 잘못된 관찰이다. 북한은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고, 핵 정책·대미·대남 정책이 국방위 중심으로 가고 있다. 많은 언론이 2012년 강성대국 만들면서 김정운에게 핵이라는 선물을 줌으로써 김정운의 영도력을 높이려 한다고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핵개발은 단기적 사안이 아니고 롱텀(long-term) 전략이다. 보통 북한의 핵 보유배경을 서너 가지로 보는데, 미국에 대한 최소한의 핵 억지력, 남쪽과의 재래식 군사력 열세의 만회, 김정일 체제 유지, 핵 무장력 강화로서의 대미 협상력 카드 등 네 가지다.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가장 큰 이유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틀 내에서 핵 문제를 풀어나가야지 세 번째인 북한의 체제안보-후계구도를 위해 핵을 쓴다고 보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대북 접근이다.

그렇게 보면 북한의 체제전환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북한도 협상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북한 체제 내부의 역동성을 관련국들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도,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이 저렇게 하는 것을 후계구도 때문이라고 하면 북쪽 지도자 바뀐 뒤에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대안이 없는 것이다."

- MB의 남북관계 공약은 후보 시절부터 공격적이었지만 북한은 대선 기간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MB 비난을 중단했었다. 내심으로 MB정권에 기대를 했었다는 얘긴데 남북관계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꼬인 것인가.
"2007년 11월 말에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내려오지 않았나. 12월 1일 돌아가기 전에 나하고 최학래 전 <한겨레> 사장이 만난 적이 있다. 김양건 부장이 SK텔레콤 가기로 했는데, 두 시간 정도 사라졌다고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는데 실은 그때 우리하고 만났다.

그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고 하길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다'고 했더니 '어떤 사람이냐'고 묻더라. 최학래 사장이 '나하고 대학 동기 동창인데, 상당히 실용적인 사람이다, 대선 공약에 구애받지 않고 실용적으로 기존입장을 바꿔서 협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가 북에 주문한 것은 '(과거처럼) 새 정부를 길들인다고 인수위 때부터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10·4선언 이행문제도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08년 3월 26일 김태영 합참의장이 선제공격론을 말할 때까지 북한은 조용했다. 우리가 비판하지 말라고 말한 것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나 김대중 대통령 때는 처음부터 비판했었다. 그 무렵이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북한이 이 대통령 취임식 때 온다는 것을 이 정부가 안 받았다고 하는데, 이 대통령의 핵심과제가 경제 살리기 아닌가. 남북관계가 잘 돼야 그가 말한 러시아와 연계, 시베리아 자원개발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봤다. 북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했고.

지난해 7월 11일 국회 개원연설 때가 계기였다. 박왕자씨 피격사건이 없었으면 8·15때 새로 판을 그리는 언급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금강산 사건이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포로로 잡아 버린 것이다. 이 대통령이 당시에 그 사건을 보고받고도 국회에서 그런 연설을 한 것이라면, 이후에도 더 대승적으로 갔어야 한다. 북한에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금강산관광 유지하면서 이산가족면회소 문제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실용적으로 나갔다면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이 엇박자로 나가는 바람에 마치 일본사람들의 납치 일본인 문제와 비슷해졌다. 그 뒤로 유엔 대북인권 결의안에 한국이 공동제안자로 나서고, 대북삐라 사건도 나오고, 대남비방에 남쪽도 대응하면서 상황이 상승작용을 불렀다. 올해 3월에는 북한에 중유 5만 톤을 최종적으로 지원하게 돼 있었는데 핵시설 불능화작업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안 줬다. 인수위 때까지는 북한과 관계(채널)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끊긴 것 아닌가.

이 대통령이 실용적인 분인데 '촛불' 영향도 있다. '친북세력이 촛불의 배후에 있다'고 봤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대통령 참모들이 '우리 쪽 사람이라도 확실히 챙기자, 그러려면 대북강경책으로 가자' 이렇게 되면서 결국 북한문제가 국내정치와 연계된 것 아닌가. 북한도 여기에 대응을 잘 못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상황으로 간 것이다."

-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20개월 넘는 대화의 단절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단절에 대해서도 별 걱정을 안 하고 계속 기다리자는 것 같다.
"지금 단절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 이 정부 들어 모든 핫라인이 중단되고 대북접촉면이 너무 적어 '설'만 난무해 혼돈스런 상황이다. 김정운 후계구도설이 대표적 경우다. 후계구도를 어떻게 전망하나.
"최승철 처형설이 나오지 않았나. (개성공단에서 억류된) 유씨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판인데 김정운 후계구도까지….(웃음) '후계자 김정운'이 대세론처럼 돼 있는데, 거기에 북측 기관이 관계돼 있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북한은 가장 유교적인 사회다. 실리와 권세가 있어도 명분이 없으면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김정일도 계속 업적을 쌓았고, 김일성은 수많은 프로세스를 통해서 김정일이 훌륭한 지도자라고 당과 군에 설파했다. 김정운이 갑자기 등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명분 쌓기에 나설 것이다.

그런 명분 쌓기와 후계구도는 그대로 갈 것이지만, 우리의 관심인 핵·대미정책·대남정책은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갈 것이다. 오극렬·장성택 국방위원·전병호(군수 담당 노동당 비서) 등의 움직임이 수집과 분석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렇게 보면 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북한에 대한 판단에 혼란을 가져온 게 김정일 와병설이다. 유고가 될지 모른다, 후계구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급변사태가 날지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북한은 제도적으로 국방위 체제로 안정되게 진행되고 있다.

- 김정일 유고상황이 와도 북한은 국방위 중심으로 움직여 나갈 것이라는 건가.
"그렇다. 하등 이상 없다. 힐러리 국무장관도, 이 대통령도 후계문제 때문에 북한이 강경하다고 하는데 지금 북한은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고 있나. 여기서 아이러니는, '김정일 와병'과 '급변사태' 이런 말들이 나오면서 북한 군부는 더 '수령님 결사 옹위'를 강조하고 그러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 개성공단 문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유씨 문제는 남북 간에 조금만 신뢰가 쌓이면 쉽게 풀릴 문제다. 개성공단과 핵문제를 분리하고, 개성공단과 유씨 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노동자 합숙소도 허심탄회하게 하게 해주고.

개성공단은 평화공간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본래 우리가 원해서 간 것이었다. 당시 중국 청도에 간 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으로 철수하는 상황이었고, 건설경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개성공단은 초과근로를 해도 한 달 임금이 74달러인데 이런 곳이 세계 어디에 있나. 이런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개성공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금강산 문제도 그렇다. 지금 이산가족 1세대가 얼마나 어려운가. 고 박왕자씨 사건은 화가 많이 나는 일이지만 금강산관광 재개하고 반대조건으로 이산가족 재상봉하자고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피격사건 공동조사도 하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갖고 나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경분리가 아니라 정경연계가 돼버렸다."

-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낙관론은 유씨와 미국 여기자 등 억류자 석방 협상이 대화의 돌파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고, 비관론은 아까 말한 대로 각국의 대북정책이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여름의 고비를 넘기면 가을에 북미대화 가능성 있나?
"(고개를 저으며) 현실적으로 어렵다. 유엔이 제재를 결의했고, 미국은 독자적인 금융제재에 나서겠다고 했기 때문에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것을 폐기시킬 명분이 없다.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남북이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지금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공식, 비공식으로 시그널을 보내줘야 하는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그는 경직된 도덕주의적 시각으로 북한을 보고 있다. 국내 정치구도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있다. 또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중국이 북한의 팔을 비틀어서 나오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 정부가 10·4선언과 6··15공동선언을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 두 선언은 '친북 좌빨'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이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으로 두 선언을 수용할 수 있을까?

북한의 선전선동일 수 있지만, 북한의 기본입장은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없애라는 것이고, 남쪽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불간섭 약속과 6.15선언문 1조(우리민족끼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미국은 그에 대한 용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쪽이 그것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대북특사를 보내라는 주장을 많이 하는데, 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시각을 본질적으로 바꿀 용의가 없으면 특사를 100번 보내도 소용없다. 북한도 받지 않을 것이다. 특사 카드는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해법이 별로 없다. 아직 대북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는데, 7월 말~8월 지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거다. 북한의 핵무장은 더 증강되고…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다."


태그:#6.15공동선언, #3차 북핵위기, #6자회담, #문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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