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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생활을 한 지 한 달 째, 공식적인 첫 취재를 하게 됐다. '공식적'이라 함은 가족, 동료 등 내 주변의 얘기가 아닌 모르는 누군가 혹은 장소를 취재한다는 의미 정도로 보면 되겠다. 

 

편집부의 전화를 받고 취재거리는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무조건 '오케이'했다. '기자가 기사 가려서 쓰면 되나'라든가 '뉴스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간다'는 사명감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단지 기사쓰기의 ABC도 모르는 내가 청탁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고, 취재에 대한 환상 혹은 기대감 정도였던 것 같다.

 

다시 알아보니 연예 매니지먼트 관련 사업에 대한 취재였다. 매니지먼트는커녕 연예계에도 관심 없던 나였다.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보니 그저 그런 홍보기사들 뿐이었다. 잘 모르는 분야라는 점은 둘째 치고 기삿거리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날 왜 여기로 가라는 거야'

 

관련 종사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굳이 알릴 필요도 없는 장소였다. 도대체 날 왜 왜 가라는 거야. 편집부에서는 "부담 갖지 말라"며 "기삿거리가 없을 것 같을 땐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정권도 기자에게 있다"고 했다. 

 

잘 모를 때는 사전조사가 필수다. 주최 측을 비롯한 여러 곳에 연락을 취해보고는 살짝 겁먹었다. 취재협조 요청도 해야 했고, 일반인이 참여할 수도 없는 행사였다. 기자증은커녕 아직 시민기자 명함도 없는 내가 그 곳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부딪혀 보기로 했다. 현장스케치만 해보자. 쓸 거리가 없으면 안 쓰면 되고, 못 들어가게 하면 안 들어가면 되지 뭐.

 

"취재기자는 가장 먼저 도착해서 가장 늦게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연예매니지먼트 법무연수과정' 교육이 있는 19일, 이왕 가기로 했으니 일찌감치 교육장소인 압구정동으로 출발했다. 상황을 살펴 참가자들과 사전 인터뷰라도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첫 취재를 축하라도 해 주듯, 햇살은 유난히 뜨거웠다. 비도 오려는지 습하기까지 해 가만히 서 있어도 지치는 날씨. 땀을 뻘뻘 흘리며 가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지도 검색을 하고 나와 놓고도 워낙에 '길치'인 탓에 헤매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기삿거리도 없는 곳인데 무슨 '개고생'인가 싶다. 돌아갈까. 안 된다. 편집부에 '길을 못 찾아서요'라고 말해야 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내 생의 첫 인터뷰, 특명! 뻔뻔하게 들이대라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안도하며 다음부터 위치는 철저하게 알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맙소사,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다. 결국 5층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같은 곳으로 향하는 이들도 짜증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도 오기 싫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천국이 따로 없었는데 그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곳에 온 사람들은 족히 100명은 돼 보이는데 여자는 관계자 포함해 딱 세 명 뿐. 남자들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가끔 그런 세상을 꿈꿔보긴 했지만 오늘은 내가 첫 번째 취재하는 날. 아무나 붙잡고 뻔뻔하게 '들이대야'한단 말이다.

 

막상 도착하니까 욕심이 났다. 현장스케치에만 그치고 싶지 않아 먼저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인사하는 것을 보니 '높은 분'인가 보다. 흔쾌히 받아 주었다.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며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최측 이야기만으로는 진짜 분위기를 알 수 없는 법.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뷰하기로 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저씨들, 험상궂은 20대 중후반의 청년들, 모두 다가가기란 쉽지가 않았다. 용기를 내 뚝 떨어져 있는, 그나마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두 번 하니 별거 아니다. 심심했던지 인터뷰하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옆 사람 추천도 해준다.

 

현장 분위기도 느꼈고, 기삿거리도 얼추 얻었지만 '취재기자는 가장 늦게 떠나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계속해서 새로운 목소리를 들었다. 같은 장소에,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이 하는 생각은 제각각이었다. 그 탓에 구상하던 기사의 방향이 흐려지기도, 갈피를 못 잡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새로운 정보를 얻었고, 프로그램의 취약성도 느껴졌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홍보 문구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가자들의 불만도 알게 됐다. 하지만 기자는 개인의 목소리만을 듣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자님은 그냥 '좋게 좋게' 쓰세요"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에 만났던 '높은 분'을 찾았다. 역시나 웃으며 반겨주었지만  이번에는 목소리에서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에이, 뭘 그렇게 세세하게 쓰려고 하시나. 다 잘 되고 있어요. 기자님은 그냥 '좋게 좋게' 쓰면 됩니다. 아시겠죠?"

"……."

 

그도 풋내기 기자의 어수룩함을 눈치 챈 걸까. 무안했지만 알 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물러나지 않는 나에게 이제 그만하자는 손짓을 취했다. 끝까지 지어보이는 그의 웃음이 썩 달갑지는 않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사람을 붙잡고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하겠다며 20분간을 걸으며 인터뷰했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은 알았지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의 얘기를,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와 얘기를 나눈 후에도 확실히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역시나 분명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취재를 끝내고 지하철역을 찾았다. 20분간을 상대에게만 집중하며 걸었기 때문에 이미 길을 잃은 상태였고 또 다시 헤맬 수밖에 없었다. 처음 행사장을 찾을 때처럼. 무더위는 초저녁이 되어도 꺾일 줄을 모른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 지하철역을 찾아 헤매면서도 그 '높은 분'이 '좋게 좋게' 쓰라던 말이  잊혀지질 않았다. 힘과 힘 앞에서 무기력한 약자, 진실과 은폐, 그리고 언론. 그 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이 못내 아쉽다.

 

"저, '좋게 좋게' 기사 쓸 생각 전혀 없거든요?"


태그:#취재, #기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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