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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미디어법안에 대한 국민여론 수렴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가 파국을 맞았다. 필자를 포함한 여야 추천 미디어위원들은 25일까지 각각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다.

 

지난 3월 여야는 미디어위를 설치하여 100일간 여론수렴을 한 후 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측은 국민에게 직접 의견을 묻는 방식의 여론수렴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다. 한나라당과 MB정권은 국민의 '눈과 귀'인 미디어 질서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거부했다. '여론수렴'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 관계로 표결처리도 무효가 됐다.

 

국민 의견 수렴 거부하는 한나라당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법은 신문법, 방송법, 정보통신망법, IPTV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신문법 개정안은 외국자본의 참여를 허용했고, 신문과 뉴스통신 겸영을 허용했으며 신문사의 자료신고 의무조항은 삭제했다. 대체로 신문이 언론으로서 갖는 공적 책무는 최소화하고 영업의 자유는 극대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상파방송과 보도방송 경영에 신문사, 대기업, 외국자본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동시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을 49%까지 확대했고,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 SO의 겸영을 허용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포털사업자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임시조치 의무화, 사이버 모욕죄, 실명제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될 경우 지난 4월 개정한 저작권법과 함께 작용하여 네티즌과 인터넷사업자에게 재갈을 물릴 수 있다. 이 밖에 IPTV법 개정안에는 직접사용 채널 허용, 요금규제 완화, 정체가 불분명한 콘텐츠 동등접근권 강화, 신문과 대기업의 보도콘텐츠 49%까지 출자 허용 등을 담고 있다. IPTV법은 지난 2008년 1월에 제정되었다. 불과 1년 만에 새로 방송영역에 진입한 통신자본에 대한 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하려는 것이다.

 

MB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신문법안은 '신문영업자유법', 방송법안은 '조중동방송진출지원법'에 가깝다. 정보통신망법안은 '정보통신망봉쇄법', IPTV법은 '유료방송시장말살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개정을 추진하며 지난해에 처음 내세웠던 근거는 산업 성장, 일자리 창출, 글로벌미디어 기업 육성 등이었다. 하나같이 실현가능성이 없는 주장들이다. 예를 들자면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 영역의 겸영과 적대적 M&A를 가능하게 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실제 이유는 조중동과 같은 '부유한' 신문사와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및 보도방송 진출 허용, 정권의 인터넷 공간 감시 제도화로 압축된다.

 

모든 미디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법  

 

첫째 신문과 방송 겸영 허용 주장의 허구성이다. 한나라당은 OECD 운운하며 신방겸영 '대세론'을 편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신방 겸영을 금지하고 있는 영역은 MBC와 같은 지상파 방송과 YTN같은 보도채널, 아직 허가된 적이 없는 종합편성채널(종편PP)뿐이다. 모두 보도기능을 수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역의 겸영이 신문의 경영위기 타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과 보도채널의 광고매출액을 다 합해야 대체로 2조원 내외다. 이 시장에 신문사업자가 진입해서 기존의 사업자와 경쟁을 한다는 것은 보다 빨리 망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정부가 신문미디어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어느 경우에도 황금알을 '먹는' 방송보도영역에 신문사의 진출을 막아야한다. 

 

또한 한나라당은 스스로 제출했던 헌법소원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6년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는 신문법에 대한 위헌여부 판결에서 현행 겸영규제를 합당하다고 보았다. '일간신문과 지상파방송 간의 겸영금지가 언론의 다양성 보장과 아무런 실질적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할 정도로 미디어 매체나 정보매체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겸영규제 정책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신방겸영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가 MBC를 겸영해도 여론다양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한나라당의 모든 미디어법안은 결국 '여론독과점법'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개정안을 모아놓고 보면 법이 통과될 경우 전국의 모든 신문,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SO, 위성방송, IPTV 등 모든 주요 미디어의 겸영이 가능해진다. '미디어악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이 유력 신문사와 손을 잡는다면 국내 여론미디어를 전적으로 소유, 운영할 수 있다. 대기업에 대한 겸영규제 완화 미디어시장 전체에 대한 '재벌 및 족벌'의 지배를 의미한다. 지상파 및 보도방송에 대한 겸영규제는 이러한 미디어 독과점 '도미노'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셋째, 한나라당은 지난 4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3진아웃제' 등을 도입했다. 포털운영자는 이용자의 게시물을 차단하거나 심지어 계정을 정지시킬 수 있다. 심지어 문광부장관은 포털 사이트 자체를 폐쇄시킬 수도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표현을 빌자면 어떤 도로에서 한 사람이 3회 이상 신호 등을 위반할 경우 그 도로 통행을 금지시키는 것과 같은 법안이다. 심지어 장관은 그 도로를 막아버릴 수도 있다. 저작권법과 정보통신망법을 통해 이중으로 네티즌과 인터넷사업자를 압박하고자 한다. 그럴 경우 참여와 공유를 전제로 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인터넷은 '사이버 황무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한나라당 미디어법안과 관련하여 이미 십여 곳 이상의 언론사 등에서 일반시민과 전문가집단 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대체로 65%이상의 국민, 현업언론인, 전문가 등이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조중동방송의 출현이나 '삼성언론공화국'에 의한 여론시장 독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미디어정책에 있어 핵심은 다양성의 보장이다. 다양성의 출발은 미디어의 종다양성이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안은 다른 모든 내용을 떠나 신문,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지역미디어, 군소미디어,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동물농장'에 살 것인가?

 

한나라당 미디어악법이 통과된 미래의 어느 날의 상정해 보자. 우리 중 누군가가 부당하게 해고 되었거나 정치권력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하자.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바로 삭제된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포털에서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의하다가 자칫 검찰에 찍히기라도 하면 지난 7개월치 이메일이 공개될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라도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연락하여 집회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장은 우리의 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에 따라 기자회견이나 1인시위도 '불법'이 될 수 있다. 언론사에 호소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군소신문은 거의 망해가고 MBC에서도 'MB어천가'만 나오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나라당 미디어악법의 국회통과는 한국민주주의 '대재앙'의 서곡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미디어 악법을 저지할 것인가, 아니면 '동물농장'에서 살아갈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최영묵 기자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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