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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에서 용흥궁과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부평향교 등을 구경하고 48번 국도를 타고 송해면으로 나아가다보면, 옛 군사들이 무예를 익히던 그리고 일본과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을 맺은 연무당옛터와 강화산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강화산성은 강화읍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 산성으로, 몽골의 침입 당시 실권자인 최우가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부터 성-관아 등 시설의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면서 쌓게 되었답니다. 이 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궁을 지었고, 산 이름 또한 송악이라 지었습니다.

 

성은 흙으로 쌓았는데,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입니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으며,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고려 원종 11년(1270년)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골과의 강화조약 조건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됩니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지었는데, 1673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했고, 숙종 3년(1677)년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습니다.

 

4개의 대문과 4개소 암문, 2개소의 수문, 2개소의 성문장청이 있었고, 남문은 안파루, 북문은 진송루, 동문은 망한루, 서문은 첨화루라 합니다. 그 강화내성의 서문과 성곽이 남아있는데 인근 국화리 주민들이 강화읍을 오가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첨화루 아래 아치형 통로 천장에는 흰수염을 자랑하는 호랑이가 두눈을 부릅뜨고 성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외세의 침략을 막아왔던 강화산성의 모습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화산성, #강화읍, #문화재,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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