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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시국선언.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시국선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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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시국선언 해보자."
"뭘 해?"
"요즘 대학 교수들, 각 시민단체들의 시국선언이 한창이잖아. 우리도 시국선언 해보자고."
"야. 동네 아줌마들이 무슨 시국선언이야?"

그렇죠. 그야말로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시국선언을 한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현 시국을 논하며 분노에 비례해 술집 매상을 올려주는 것 말고는 없었으니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 셀 수 없이 늘어선 만장 행렬을 보면서 전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만장 중에는 어떤 단체의 것도 아니고, 기계로 제작된 것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집에서 만들어 나온 것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찌 보면 한 개인이 들고 나온 그 만장은 단체에서 제작한 만장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동네 아줌마·아저씨들의 거사 "우리도 시국선언 한번 해보자"

전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들의 시국선언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평화적 방법임과 동시에 아주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왔어? 종이와 펜은 기본적으로 들고 와야지. 두 주먹만 불끈 쥐고 오면 어떡해?"
"우리 혈서 쓰는 거 아니었어? 난 혈서 쓰는 줄 알았지."

"이 사람이 진짜! 그럼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생각해 봤겠네?"
"그게 말이야. 내가 다 되는데 글이 안 되잖아. 그게 흠이야."

"됐네. 아니 누가 이 사람들을 사회과학적 인간형이라고 추천한 거야? 근거도 없이 말야."
"내 말이. 근데 시국선언문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그런 걸 한 번이라도 해봤어야 알지."

"그냥 편하게 우리의 언어로 해. 우리가 뭐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고, 잘난 사람도 없는데  평상시 쓰는 언어로 하면 되지 않을까?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서 하는 건데 너무 잘해도 그렇잖아? 다른 사람들도 우리 선언문을 보고 용기를 가져야지."
"그러니까 그 평범한 언어로 표현해 보라고요~."

"음. 이거 어때? 365일 휴가 환영. 복지, 연금 모든 건 다 보장. 무조건 쉬면 됨."
"이봐. 당신! 그냥 집에 가서 푹 쉬어라. 우리끼리 하련다."

시국선언을 위해 모이자고 했던 거창한 표현과는 달리 아줌마, 아저씨들은 오랜만에 만난 것 자체가 반갑습니다. 아침부터 일어나 텃밭에 가서 잡초를 뽑았다는 둥, 모처럼 쉬는 날인데 애들 봐야 한다는 둥, 아이들이 엄마가 점심을 안 챙겨줄까봐 걱정한다는 둥. 온갖 신변잡기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한참 피웁니다.  

"근데 시국선언 어떻게 하는 거야?" "그냥 우리 언어로 하지 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 5월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을 향하는 가운데 수많은 시민들이 만장과 노란풍선을 들고 따라가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지난 5월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을 향하는 가운데 수많은 시민들이 만장과 노란풍선을 들고 따라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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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습니다. 과천에 분향소를 차리고 매일 돌아가며 분향소를 지켰던 것이 바로 얼마 전입니다. 이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벌겋게 된 눈으로 밤새 분향소를 지키고 아침이면 출근했다가 다시 분향소로 퇴근했던 그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노무현 전 대통령만 생각하면 명치끝이 아파 말끝을 흐리는 소시민들이지요. 

그때부터 이 아줌마, 아저씨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금의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정말 진지하게 들을 수 있도록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진정 이 나라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현 정부가 귀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시국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시국선언문을 작성하면서 내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가볍게 생각했던가, 반성했습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문 당하고, 의문사로 죽어가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자가 되었던가, 시대의 아픔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주겠다

그렇게 피와 땀으로 얻어진 민주주의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그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만약 그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린 영원히 역사의 죄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비록 우리는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라는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역사의 죄인만큼은 되지 않기 위해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 부끄러운 역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며,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해야만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설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제게 희망의 바람이 됩니다. 절대 그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국 선언문
우리는 얼마 전 소중한 분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잃은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치 보복적 표적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 한분만 잃은 것이 아니라 지난 과거 민주화 역사 속에서 고문당하고, 의문사 당했던 민주 열사들도 같이 잃었습니다. 왜냐면 이명박 정부는 그 민주화를 송두리째 부정해 역사를 다시 20년, 30년 전 독재정권 시대로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광장에 쏟아져 나온 수십 만 시민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 수백만 민중의 절규를 유치하게도 컨테이너 산성 뒤에 숨어서 묵살한 것이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비극이지만 오늘은 집권세력 내부에서마저도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유지할 자신감을 잃어버린 듯이 보입니다. 이른바 '만사형통'이라는 전근대적인 방식만이 정권을 지탱할 유일한 방법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국세청장의 비열한 행동을 고발한 일개 하급공무원에 대해 파면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조치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허약한 정권의 현 주소임은 정말 초라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소신대로 학교 비리에 맞서 싸우면 해임당하고, 학교와 학생의 서열화에 반대해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는 잘리고,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을 피멍이 들도록 때린 교사나 강간과 성추행을 자행한 교사는 버젓이 복직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현 주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너무나 부끄럽게도 "정의와 용기"라는 단어를 가르칠래야 가르칠 수 없도록 만드는 정부입니다.

지금 남북 간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10년간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닦아놓은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적대적인 대결구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원합니다. 그 어떠한 남북 간의 대결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화해와 평화를 기초로 한 대화와 협력만이 현재의 아슬아슬한 긴장 국면을 극복하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6·15 남북공동 선언의 정신을 되살리고 서로 이행해야 합니다. 북한은 한민족을 볼모로 한 더 이상의 무력 실험을 중지하고, 이명박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보장하고 대북 고립정책을 전면 수정해서 대화에 임해야 합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프로젝트는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가릴 수 없는 환경 파괴행위이며 이미 국민적 반대에 의해 좌절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부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혈세 22조를 쏟아 부어 국민에게 되돌아 올 것이라고는 후세로부터의 원망 밖에 없는 4대강 정비 사업을 당장 중지해야 합니다. 혈세는 환경파괴를 위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 시국이 깊은 밤인 것 같지만 밤이 깊은 것은 곧 새벽이 오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헌신으로 일궈낸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허약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만들고 키워온 이 땅의 소중한 민주주의의 역사는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현 정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명박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대국민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광장으로 나와 국민과의 진실한 소통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시민들이...
2009년 6월 16일

서명인 명단(55명)

김순옥, 권영숙, 이동권, 송은희, 박혜원, 전선애, 손승택, 김상현, 성미선, 유영신, 이정희, 이현미, 한정원, 송미영, 홍진숙, 임명훈, 정소희, 손병흠, 윤형근, 윤해경, 차원희, 변경섭, 배재희, 신동미, 한화숙, 조미정, 정광원, 임정진, 우현주, 황순식, 조배원, 정희경, 김복희, 김진석, 이미나, 이치열, 하상수, 김재순, 황인정, 송환의, 우경숙, 김희숙, 지병건, 박인희, 류성주, 허원희, 박경민, 장순길, 김영경, 이동우, 이영아, 최광호, 정연홍, 강병오, 현홍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국선언, #대안학교, #이명박정부, #노무현대통령,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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