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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한 사람에게서 전화를 세 번이나 연거푸 받았다. 마지막에 받은 전화는 내 인내를 시험하는 전화였다. 참다 참다 못 참고 짜증 섞인 타박을 하고 나서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가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게 다시 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다.

뭔가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핀잔과 무시는 익숙한 사람의 특권이라기보다 오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날 똑같이 미숙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다 잊었거나 편파적으로 봐준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 번째 전화는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위대한 발견 같기도 했다.

"로그인 했는데 자꾸 로그아웃이 나오네? 그래서 로그아웃 누르니까 카페가 안 열려."

외사촌 형님에게 카페 하나 만들어 드렸더니

집에서 직접 만드는 메주 앞에 선 일흔 셋의 사촌 형님
▲ 메주 집에서 직접 만드는 메주 앞에 선 일흔 셋의 사촌 형님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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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셋이신 외사촌 형님이 이 전화의 주인공이다. 카페를 하나 만들어 드렸는데 그 덕에 이런 전화를 수도 없이 받게 된 것이다. 내가 세 번이나 경남 함양군 형님네 집으로 찾아가서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고 우리 집으로도 외사촌 부부가 먹을거리까지 싸가지고 오셔서 여러 번 교육(?)을 받았는데 이렇다.

메일이나 쪽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고 카페가 만들어져 있는 '다음' 화면을 초기화면으로 설정해 드리면서 로그인을 먼저 하라고 한 것인데 정작 로그인을 하고 보면 그 자리에 '로그아웃'이라는 버튼이 생기니 '로그아웃'하라는 지시인 줄 알고 그걸 눌렀고 그러면 다시 원위치가 되어 메일도 안 보이고 쪽지도 안 보이게 된다는 게 형님의 고민거리였던 것이다.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지적이다. 팔자에도 없는 카페지기가 되어 늘그막에 이 고생을 하는 것은 형님 부부가 집에서 직접 만든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와 집 반찬을 카페를 통해 팔게 되면서다.

어쩌다 컴퓨터의 초기화면 설정이 바뀌었다거나, 화면을 최소 상태로 둔 채 화면 아래쪽을 마우스로 스크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전화를 하신다. 혼자서 별의별 시도를 다 해 보고도 끝내 해결되지 않을 때 내키지 않지만 할 수 없이 거는 전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나는 짜증이 난다.

"면서기를 몇 년 하셨으면서 이것도 못해요?"

집 앞마당에 장독대가 있다. 형수님이 장독대를 돌본다.
▲ 장독대 집 앞마당에 장독대가 있다. 형수님이 장독대를 돌본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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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에게 카페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은 사연이 길다. 기간도 2년이라는 세월을 거쳤다.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집 친가뿐 아니라 외가로도 자주 나들이를 가다보니 몇십 년 만에 외사촌들과 자주 왕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평생을 고향에서 농사만 짓고 살아온 함양군 안의면에 사시는 이 외사촌 형님네가 나름대로 노후 일거리로 장류 음식을 만들어 주변에 팔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맛도 좋을 뿐 아니라 인심도 후한 이 분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판로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일반 가정에서 하듯이 메주에서 간장을 빼내고 된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메주째로 된장을 만드셨다. 그러니 맛이 그만이었다. 우리 콩으로만 만드는 이 분들의 된장은 콩을 삶을 때도 용추계곡 해발 800고지에서 받아 내는 고로쇠 물을 쓰고 메주를 띄울 때도 고로쇠 물로 한다.

집 간장도 만드는데 간장을 만든 메주는 축산농가에 사료로 다 넘긴다. 고추장 역시 태양초로 직접 고추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만든 음식이 유통단계에서 헐값으로 장사꾼에게 넘어가기도 하고 팔리지 않아 저온창고에 쌓여 있기도 했지만 선뜻 나서서 전면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은 내 소심함도 한 몫 했다.

나더러 수수료를 줄 테니 팔아달라고 해도 거절하고 내 카페나 누리집에서 소개만 하는 데 그쳤다. 직접 외사촌 형님네로 연락이 가고 입금이 되게 하여 나는 전혀 금전적인 개입을 안 한 것이다. 돈 때문에 사촌간에 의 상할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내가 판매를 도맡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을 안했고 카페를 만들어 드리는 것도 괜한 환상을 심어 드렸다가 낭패를 볼까 걱정되기도 했던 것이다. 컴퓨터도 사야 하고 인터넷 선도 연결해야 하는데 그렇게 드는 비용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2년을 그렇게 지냈는데 지난달에 컴퓨터도 사고 카페도 만들게 되었다. 2년여 동안 서로가 그만큼 믿음이 두텁게 생겨난 셈이다. 컴퓨터 자판을 처음 만지는 형님은 아무리 기본자리를 가르쳐 드리고 타자연습 프로그램으로 연습을 시켜도 독수리타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우스의 클릭과 더블클릭, 드래그, 범위설정, 팝메뉴의 오른쪽버턴을 따로 설명해도 늘 서툴렀다. 자판과 마우스가 화면을 통제하는 원리를 더 궁금해 했다.  

"지방공무원으로 면서기를 몇 년 하셨으면서 이것도 못해요?"

내가 막 야단을 치면 형님은 어색하게 씩 웃으면서 자기가 정년퇴임할 때까지 면 사무소에 컴퓨터가 없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셨다. 카페 이름도 나는 된장이나 고추장을 내걸자고 했지만 온라인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함양군의 명물이자 그 동네 자랑거리인 '물방아골'이라는 공원 이름을 고수했다.

일흔 셋의 노인, '넷마인드'가 생기다

동네에 있는 <연암물레방아공원>의 초 대형 물레방아
▲ 물레방아 동네에 있는 <연암물레방아공원>의 초 대형 물레방아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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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만들고 그곳에서 팔 장류들을 하나씩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올리고 보니 웹뱅킹이 필요해졌다. 언제 시오리나 되는 안의면 소재지 농협까지 가서 입금 확인을 하겠는가? 나는 형님을 모시고 농협에 가서 웹뱅킹 신청을 하고 보안카드도 발급받아 집 컴퓨터에 공인인증서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그 사용법도 가르쳐드렸다.

내가 카페에서 제일 먼저 주문신청을 했다. 답변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다. 잘 하셨다. 첫 구매자의 글이 카페에 올라오던 날. 그걸 발견한 나는 형님의 답글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전화를 해 봤더니 전화로 다 통화하고 택배도 보냈다면서 잘하지 않았냐면서 은근히 으스대는 걸 나는 또 야단을 쳤다. 그래도 어서 답글을 올리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세 번씩이나 전화를 하게 된 것도 혼자서 답글을 쓰면서 생긴 일이다.

방금 전화가 또 왔다. 딸네미랑 전화를 했다면서 카페 타이틀을 바꾸자고 한다. '물방아골 고로쇠 된장집'으로 바꾸어 달랜다. 바로 이것이다 싶다. 우리 형님이 이제야 '넷 마인드'가 생기기 시작한 걸까?

앞으로도 전화는 계속 올 것이다. 초보자의 시선에 걸리는 인터넷 사이트의 구석진 불편함들이 하나씩 발굴 되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카페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www.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된장, #고추장, #고로쇠, #물레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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