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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학부모께서 이렇게 오실 필요가 없어요."
아빠 "학부모 입장이 된다면..."
유인촌 장관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아빠 "세뇌가 아니고... 제가 몇 살입니까?"
유인촌 장관 "세뇌가 되신 거지."

싸이월드, 네이버 메인에 아빠가 시위하시는 동영상이 첨부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네이버에서는 1위 기사까지 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저 때문에 아빠가 신문기사에 오르신 건데, 솔직히 이런 일로 기사에 거론되시게 하고픈 맘은 전혀 없었습니다. 고작 그런 소리나 들으시라고 고생해서 들어온 학교가 아닌데.

"학부모를 누가 이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서사창작과? 그게 잘못된 과거든" 6월 3일, 한예종 문제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부모에게 막말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유인촌 장관.
 "학부모를 누가 이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서사창작과? 그게 잘못된 과거든" 6월 3일, 한예종 문제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부모에게 막말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유인촌 장관.
ⓒ 한예종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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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되셨네" 막말 들은 그분, 제 아빠입니다

저는 1남 2녀 집안의 장녀입니다. 제가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진학하려 한다고 얘기했을 때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님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뭘 알아, 나는 내 길을 가겠어!"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부모님은 말없이 찬성해 주셨습니다. '네 앞 길은 네가 스스로 정해라'가 가풍인 탓도 있겠지만, 아빠는 내심 당신이 꿈꿨던 길을 가려는 딸의 모습을 대견해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걱정이 없으셨던 건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예술가는 배가 고픈 법이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쉬이 하기 어렵지요. 그런 걱정을 하셨다는 건 후에, 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부족하지 않은 성적에도 수시 원서는커녕 정시 원서 한 부 제출하지 않고 한예종만을 고집하는 딸을 만류하시지 않던 부모님이셨습니다.

재수를 결심했을 때도 그 고집을 나무라지 않으셨던 부모님이셨습니다. 제가 선택한 학교니 믿어 주신 것도 있지만, 부모님이 알아 보시기에도 퍽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영화동아리에서 다큐멘터리 찍고 혼자 공부해가면서 들어간 학교였습니다. 마음 편했던 1년이었을 리가 없지요. 자식이 다니는 과가 없어진다고 하면 걱정하지 않으실 부모님이 없겠지만 힘들게 들어간 학교라는 걸 알고 계셨던 제 부모님의 속은 오죽 하셨을까요.



재수해서 힘들게 입학한 과, 부모님은 알아주셨지요

저는 집에서 속 얘기 한번 하는 일 없는, 살갑지 않은 딸입니다. 학교에 관한 얘기도, 선배들과 성명서 만들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돼 집에 전화를 하면서 슬쩍 말한 것이 다였습니다. 부모님은 아침에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오자마자 잠들기 바쁜 딸에게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해 인터넷 기사로 학교 상황을 아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물론 '우리 과가 없어지게 생겼네', '학교가 해체되게 생겼네' 하는 우는 소리를 부모님께 하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한예종 사태'에 대해 알고 계신 거라고는 인터넷의 '문화부 감사' 기사에 나온 내용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제 선배의 어머님이 1인 시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입생인 저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아빠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그러마"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빠가 3일, 1인 시위를 하게 되신 겁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당사자인 저는 그날까지도 1인 시위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힘든 일임은 모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철없는 딸이라지만 저 때문에 부모님께 그런 짐을 지우고 맘이 편할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수업이 끝나고 과실에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선배가 과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말했습니다.

"우리 학부형께 장관님이 막말을 하셨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선배의 어머님께서 1인 시위 하시던 영상을 보고 그래도 학부형께는 심한 말을 하지 않으시는 듯해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사람들 오가는 길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인데 안면도 없는 장관에게 "세뇌당했다"는 소리까지 듣다니요.

놀란 마음에 "그 뒤는 제가 이어서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하고 부랴부랴 광화문으로 나섰습니다. 1인 시위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전에도 보았다며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 선배라고 하며 힘들어 보인다고 음료를 전해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홀로 서 있는 시간이 무섭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누가 위협을 하는 것도 협박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저는 소수였고, 약자였으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그 자리에 섰던 건 가만히 앉아서 처분을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저 스스로 예술가라 부르기엔 부끄럽지만 이대로 잘못된 것에 순응한다면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의지와 의견을 알리기 위해 그 자리에 섰습니다.

한 한예종 학생이 '애도 퍼포먼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 한예종 학생이 '애도 퍼포먼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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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위해 1인 시위 나섰다가... "툭툭 치며 반말, 불쾌하더라"

아빠가 시위하시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알았음에도 보지 않았습니다. 좋은 얘기를 듣지 못하셨다는 것을 이미 주위에서 들었기 때문에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뒤 인터넷에 메인으로 뜬 기사를 보았고 그렇게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시위 당일, 아빠는 담담하게 장관님께 들은 얘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생각하셨는지 "세뇌되신 거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물어 보았을 때에야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학부모를 대하던 태도나, 툭툭 치며 반말을 한 것에 대해 적잖이 마음이 상했다고 하셨습니다. "학부모에게 세뇌되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며 굉장히 불쾌해 하셨고 그런 것들은 잘못된 행동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식된 도리로서 화나는 마음 한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아빠가 받으신 모욕을 어떻게 해야 씻겨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빠는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서셨을까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서? 그런 점도 없지 않겠습니다만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이셨습니다. 딸이 그렇게나 염원하던 학교에 들어간지 고작 3개월, 하루아침에 학과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런 부당한 처사를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전혀 작은 일이 아닙니다만) 피켓을 들고 문광부 앞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한 것이었을 텐데요. 어떻게 장관님은 그것을 두고 "세뇌된 것"이라고 감히 말씀하실 수 있는 건지요.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텐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장관님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소리를 들은 부모나 그 자식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으셨던 걸까요.

진짜 세뇌는 장관님이 우리에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인촌 장관님은 저희에게 "너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과가 없어지는 일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사창작과는 잘못된 과다, 만들어서는 안 되는 과였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잘못된 과인가요? 굳이 이 자리를 빌려 서사창작과에 대한 장관님의 야박한 평가에 조목조목 반론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누구라도 관심과 눈이 있다면 모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장관님, 세뇌라 함은 무엇입니까. 장관님은 저희를 향해 끊임없이 서사창작과는 잘못된 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학교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과를 없애지는 않겠다, 그러나 너희는 잘못된 과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사창작과를 잘못된 과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말씀은 장관님과 문광부만 하고 있습니다. 세뇌란 무엇입니까. 자식이 걱정되어 만사를 제쳐두고 나오는 부모의 마음이 세뇌된 것인가요? 장관님이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야말로 세뇌가 아닌지요? 잘못되지 않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수백 번을 말한다고 그것이 잘못되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머리가 있는 어엿한 성인입니다.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에 혹해 '너희는 잘못된 과다'라는 말을 넘길 정도로 어리지 않습니다. 이름만 남았다 해서 그것으로 정말 저희의 정당한 권리, 교육권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장관님, 저희는 장관님의 말씀에 세뇌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혜음 기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학생입니다.



태그:#한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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