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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라 하더라. 왜인가 했더니 섬의 형태가 꼭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것과 같다 해서 그렇단다. 허. 느낌부터 좋다! 사람의 닮은꼴이라 하지 않은가?! 그것도 일꾼의 모습이란다.

 

이렇게 섬으로의 출항은 나를 더 설레게 했다. 휴가철도 아니건만, 인천항에 모여든 북적대는 인파들은 덕적도를 지나 굴업도로 향하면서 갈수록 줄어든다. 아직은 굴업도를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듯 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듯 싶다. 덕적도에서 1시간여를 달리다보니 짙은 해무(海霧)에 둘러싸여 앞을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곧 신비로운 섬의 형상이 커튼자락 같은 안개를 헤치고 눈앞에 그 장엄함을 드러냈다. 마치 허락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함부로 열어주고 접근시키지 않겠다는 결연함조차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누구든 찾을 수 있지만, 누구나에게 그 진짜를 보여주지는 않는 땅.

 

아! 그 순간 나는 중국의 진나라 때 불로초를 찾으러 떠났다던 서복이 되었다. 미지의 영역. 에덴의 낙원처럼 영생이 허락된 공간만을 찾아 헤맨 그가 만났던 무수한 천연의 장소에서 그는 매 순간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내 비록 불로초까지는 모르겠으나, 이 허락된 땅의 기(氣)만큼은 마음껏 흡수해보리라.

 

이제껏 많은 섬들을 다녀봤지만, '나'의 존재가 이렇게 강렬하게 땅위에 돋아난 기분을 느끼기도 흔치 않던 것 같다. 그야말로 외딴 느낌이요, 지구중심의 돌기가 된 듯했다. 어린왕자에게는 외로운 별에서 장미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 땅의 무엇이 함께였던가?

 

그곳에는 옹기종기 모여 사는 9가구가 있었다. 숫자는 셈에 불과하다더니, 18명만 살아가는 섬이었는데도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넘쳐날 정도여서 그 모습이 참 생기롭기까지 했다. 그리고 셈하기 힘들 만큼 무수한 동․식물들이 함께했다. 당나귀, 닭, 개, 먹구렁이, 매, 흰물떼새...이 외에도 이름 모를 생명들이 짧은 1박2일 동안에도 내가 만났던 친구들이었으며, 해당화, 큰천남성, 모래지치, 이팝나무들은 자유롭게 꽃을 피워 온기를 더했다. 또 태양아래 비단처럼 펼쳐진 금빛모래의 해안가는 해변바람이 싣고 온 모래가 언덕부터 흘러내려, 모래사변만 뚝 떼어 봤을 때는 황량한 사막도 따로 없을 정도.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지혜로운 여우를 만났듯, 섬의 이곳저곳에서 자연과 생명들을 만나며 새삼 고마워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생각해본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남긴 이 말을.  "진실 된 것은 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상대방을 길들이고, 사귀고, 둘만의 역사를 쌓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작은 것이 쌓여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굴업도의 자연 앞에 온전한 마음을 더해 충만해졌던 그 밤은 하늘의 별조차 참 오랜만이었다. 나와 섬이 만나 함께했던 1박2일의 역사는 섬이 내게 열어준 정말 온전한 세상이었다.

 

이튿날,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수평선속에서 굴업도의 태양을 맞았다. 그 태양이 약속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이제 서로를 길들이고 사귀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갈 굴업도와 나와의 인연 속에서...

 

 

 

 

굴업도

굴업도에는 신석기 시대 사람이 산 흔적으로 고덕현씨댁 뒷구릉에 패총과 언덕위 도로변에 패총이 남아있다. 신라시대 나당 교류의 근거지로 나당연합을 위해 당군 13만명이 덕적군도에 머물렀으며 민어 철이 되면 어선 100여척이 몰려들고 파시를 형성하여 목기미와 본 섬 연결부에 작사가 즐비하였다 한다.

 

1919년(기미년) 윤7월에 태풍과 해일로 목기미와 본섬 연결부가 사라지게 되었고 6.25. 중에는 미군 켈로부대 1분대가 주둔하여 목기미에 피난민 마을도 형성되었다. 1914년 12월 22일, 핵폐기장으로 선정되었으나 1995년 10월 7일 굴업도 인근 해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핵폐기장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 2006년부터 CJ그룹이 굴업도의 98.5%를 매입하여 골프장 등으로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려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도민은 9가구의 18명 정도가 되었다.

 

현재 한국녹색회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나서서 굴업도 지키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골프장은 녹색사막이다. 잔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기존의 표토를 모두 걷어낸다. 그리고 골프장 잔디에 알맞는 새로운 흙을 넣고 잔디를 심은 뒤 화학비료를 주고 다른 잡초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제초제를 뿌리고, 골프장잔디에 대한 병충해를 막고 다른 생물이 살지 못하도록 농약을 뿌린다.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는 주변바다로 흘러들어 주변 해양을 오염시킬 것이다.

 

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을 하여 300인승 이상의 쾌속선을 굴업도 항로에 투입시키기 위해서는 6m 이상의 수심확보를 위해 모래톱 준설이 필요할 것이고 항만건설, 요트계류장 건설로 굴업도 해변, 사구 등의 훼손이 야기될 것이며 큰 마을에 들어설 대규모 위락시설은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 굴업도 모래톱의 훼손을 야기할 것이다.

 

개발이 이루어지면 굴업도의 기존식생이 파괴되어 식생의 열매-쥐-구렁이-보호조수(황새, 매, 말똥가리, 황조롱이)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파괴됨은 물론 해양으로 공급되는 양질의 유기물 대신 오염수가 공급되어 갯벌이 파괴되고 검은머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흑두루미의 영양공급원이 사라질 것이다.

 

굴업도는 4개의 100m대 고지와 3개의 80m대 고지로 이루어진 섬이다. 골프 코스 연결을 위해 봉우리의 능선을 25m 정도 깎고 계곡부를 메우면 굴업도의 자연지형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대규모 위락시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설되는 열병합 발전시설은 새로운 오염원이 될 것이며, 골프장의 농약물을 포함한 일년 오수 발생량은 21만7540톤이 될 것이다. - 한국녹색회 굴업도자료 참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사)생명의숲 '산타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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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걷는 여행자 장용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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