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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그는 내가 다니는 대학 학과의 최고선임 교수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실무평가위원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연금학자이기도 하다.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07년,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한 학기 수업의 절반 이상을 연금 이야기로만 채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연금연구에 관심이 많다.

 

최근 국민연금의 행보가 담대해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자마자 김 교수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금융위기로 한동안 웅크렸던 국민연금기금(이하 연기금)이 9개월 만에 해외투자를 재개하겠다고 밝히는 등 점차 투자를 과감하게 할 조짐을 보인다는 소식이었다.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른 결과였다. 

 

지난달 29일 심의·의결된 연기금운용위원회의 중기전략안은 ▲해외투자 재개, ▲신용채·금융채 등으로 투자 다양화, ▲주식투자 비중 2014년까지 30%로 확대, ▲기업 구조조정 펀드에 최대 2조원 투자 등이 핵심이다. 안전자산의 대표격인 미국채 대신 고위험 자산인 신용물 비중을 높이는 점, 지난해 말 12%에 불과했던 주식 비중을 30%까지 확대하는 안 등을 볼 때, 연기금의 운용방침이 안정 기조에서 적극적 투자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많다.

 

"주식투자 확대, 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

 

소식을 듣고는 연금공단의 행보에 대한 김 교수의 의견이 궁금했다. 8일 오후 그의 연구실을 찾아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발표된 연금공단의 연기금 투자방안이 적절한지부터 물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주식이든 해외투자든 채권이든 점차 늘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평소 국민연금의 안정성과 공공성, 적절한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누구보다도 강조해온 김 교수였다. 따라서 고위험 투자 확대를 수반하는 이번 전략안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할 거라고 예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찰나, 그는 마저 말을 이었다. 논리는 간단했다. "그 많은 돈을 쌓아둘 곳이 없다"는 것.

 

그는 "이미 채권의 상당 부분을 연기금이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채권에만 돈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연기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주장은 고위험 자산 투자를 확대하자는 쪽이나, 안정자산 위주로 투자를 한정하자는 쪽이나 연기금 운용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천문학적인 연기금을 쌓아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진 않지만) 고위험을 수반하는 주식투자 등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연기금 규모를 축소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말하는 바람직한 기금운용 방식은 무엇일까? 또한 다들 기금고갈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되레 기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소개한다. 내용이 다소 길다. 그러나 매달 내가 낸 연금이 어떻게 사용되는 게 옳은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기금 너무 많다... 줄이는 것만이 대안"

 

- 경제회복 신호가 나타나면서, 연기금 운용을 다시 투자 위주로 하자는 주장이 많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돈이 너무 많다. 위험분산차원에서 주식도 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 이유는 기금이 너무 많기 때문이므로, (투자 확대를)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 주식투자 비중을 30%까지 늘리겠다고 하는데, 적정한 수준인가.

"30%가 적당한지 40%가 적당한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주식투자가 늘어나게 되면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불안감이 느는 건 맞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다. 돈은 많은데 쓸 곳이 없지 않나. 따라서 기금규모를 줄여야 된다. 근본적 문제는 기금규모가 너무 크다는 거다(2030년 초반이 되면 GDP의 50%가량이 연기금으로 적립된다는 예상치가 있다). 어디다 투자를 하는 게 맞는지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 연기금 운용원칙에는 안정성과 수익성이 모두 강조된다. 무엇이 더 우선적인 사안인가.

"무조건 안전성이다. 연기금이 잘못되면 나라가 쑥대밭이 된다. 돈 좀 더 벌겠다고 위험을 감당하느니, 안전하게 갖고 있는 게 백배 낫다."

 

-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채권을 줄이고 주식을 늘리는 건 위험하지 않나?

"내 말뜻을 정확히 짚어 달라. 채권에 쏟든 주식에 쏟든, 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양쪽 다 투자가 늘 수밖에 없다는 거다. 돈은 계속 쌓이는데 그걸 어디다가 쓰나. 땅에 묻어두나?"

 

- 하지만 비중을 어느 쪽으로 두느냐에 따라 안정성이 왔다 갔다 할 텐데.

"전체 채권 발행량 중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절하면 더 사도 된다. 그러나 현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 채권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더 늘려 채권의 30, 40%를 사자는 건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 천문학적으로 느는 연기금을 채권투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더 살 수 없으니 불가피하게 주식 쪽으로 가는 상황까지 막을 순 없다."

 

"대안 없는 주식투자 반대도 문제"

 

- 일각에서는 고위험을 수반하는 주식투자 비중을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대안 없는 비판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다 채권으로 하잔 얘긴데, 지금도 비중이 커서 부작용이 많은 채권시장은 어쩌자는 건가."

 

- 투자비율의 적정선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건 누구도 장담 못한다."

 

- 주식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주요 논거가 '연못 속 고래'론이다. 연기금 규모가 너무 커 안정적 투자만으로는 기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인데, 이에 동의한다는 건가?

"내 주장은 연못에 고래 한 마리 살면 다 쑥대밭이 되니까, 고래를 돌고래 정도로 줄이자는 거다. 현재의 연기금 규모를 축소시켜야 된다는 말이다."

 

-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줄여야 한다는 말인지.

"현재 규모 240조 정도면 GDP의 24% 정도가 된다. 앞으로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다. GDP의 30%는 넘지 않게 기금규모를 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 그렇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뭔가?

"간단하다. 돈을 써야 한다. 천문학적으로 쌓여있는 기금을 기초연금으로 쓰자는 거다."

 

- 지금 실시하고 있는 걸로 따지면, 기초노령연금으로 쓰자는 건가?

"그렇다. 기초노령연금은 그야말로 용돈도 안 되는 규모다. 현재 국민연금으로 1년에 22조쯤 걷힌다. 그중에서 7~8조만 기초연금 재원으로 써도, 14조는 기금으로 축적된다. 7~8조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기초연금으로 깔면 된다. 연기금의 특성을 봐도 옳다. 공적연금은 세대 간 부양이라는 연대적 특성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데 자꾸 내가 낸 돈 내가 받아간다는 사보험 논리로 바라보니, 펀드처럼 수익률 높이자는 말밖에 안 나오는 거다." 

 

"기금고갈 주장은 본질 호도하는 것... 쌓인 연기금 기초연금 재정으로 써야"

 

- 기초노령연금을 점진적으로 기초연금으로 전환하자는 말인가?

"그렇다. 기초노령연금의 액수를 높이고(현재 최고 8만8천 원), 범위를 80~90%까지 확대하면(현재 70%) 기초연금이 되는 거다. 돈이 어디서 나냐 그러는데 연기금 쓰면 된다."

 

- 기금고갈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다소 무모해 보이는 주장이다.

"외국에서 기금고갈 돼 연금 안주는 거 봤나. 다 걷어서 준다. 핵심은 연금으로 지급되는 재원 총량(보험료와 조세를 합한 지출액)이 사회가 부담 가능한 수준인지 여부다. 즉, 연금액의 총 비용이 GDP의 몇%를 차지하느냐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 규모로 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GDP의 10%를 안 넘는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나라들은 이미 GDP의 9~10%를 연금으로 쓴다. 수십 년 뒤 한국경제가 몇 년 전 유럽이 부담했던 연금규모를 감당하지 못할까. 기금고갈을 강조하는 건 본질을 흐리는 거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기금고갈을 전제로 설계됐다. 노인부양에 소요되는 재원총량을 사회 전체가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본질이다. 오히려 안 쓰기 때문에 노인 빈곤율이 높아서 문제다."

 

-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격적 투자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렇다고 고갈 안나나? 운 좋으면 2~3년 늦춰지겠지. 거꾸로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나?"

 

- 다시 묻겠다. 현 시점에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판단 하에 투자를 늘리는 게 옳은가?

"경제상황이랑 상관없다고 하지 않나. 돈은 매년 22조씩 들어온다. 현금 가지고 있을 순 없으니 써야 한다. 비중이 문제다. 지금처럼 9:1 할건지, 8:2, 7:3 할건지."

 

- 주식투자 30% 확대, 이 방향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인가?

"수치는 의미가 없다. 질문자는 저쪽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수익률 향상을 위한 펀드를 가정하고, 잘못운용해서 망하면 어떻게 해, 이 관점에서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내 입장은 연기금은 펀드가 아니라는 거다. 수익률 개념을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완전히 다른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거다. 더 큰 문제를 보자. 채권이든 주식이든 우량채권·우량주식을 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돈 걷어서 대기업 돈 대주는 형국이 된다. 이게 진짜 문제다."

 

- 수익률 관점에서는 우량주인 대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다. 수익률 관점에서 보게 되면 그런 얘기밖에 할 수 없다. 나처럼 그게 아니라고 하면, 왜 굳이 대자본에 투자하나, 리스크가 좀 따르더라도 중소기업이나 유망한데 투자 하는 게 낫다, 이렇게 되는 거다."

 

"연기금을 펀드식 수익률 관점으로 보지 말자!"

 

- 그러면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연기금 운용방안은 무엇인가?

"기금운용과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은 지금처럼 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신 채권에 들어가는 비중을 줄이고 주식도 20% 정도 선에서 조정하고, 나머지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 혹은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쪽, 즉 주택투자라든지 보육시설투자라든지 이런 쪽에 써야 한다. 주식투자 또한 사회투자개념을 가지고 해야 한다. 비도덕적 기업에는 투자 안하고, 못된 행동 하는 기업에는 의결권 행사 때 가서 제지하고, 이런 게 다 일종의 사회책임투자다." 

 

- 그게 지금 잘 안 되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다. 연기금 운용위 산하에 주식의결권 행사위원회가 있다. 예를 들어 모 대기업이 탈세했다고 치자. 그러면 주식의결권 위원회에서 주총 가서 '왜 탈세해, 주식 다 뺀다'고 해야 일종의 사회책임투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돈은 써야 되는데, 수익 높은 자산에 투자해야하니 대기업 주식만을 선택하게 된다. 중소기업은 외면하게 된다. 이게 딜레마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금규모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하는 비판들은 초점이 없는 비판이다."

 

- 최종적으로 보면 지금의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완전하게 전환하자는 건가?

"기금을 없애자는 건 아니다. 쌓아둘 필요성은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투자 자본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이 쌓아뒀다. 투자에 대한 정확한 자료도 없다. 대부분 시장주의자들이 하는 얘긴데, 논리는 뻔하다. 연기금을 펀드로 보고 어떻게 수익률을 최대화 시킬 것인가, 그거 하나다. 나는 연기금을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거다.

 

본질적인 문제는 국민연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나온다. 가입자들한테 돌려주기 위해 최대한 수익을 높이는 거라고 보는 쪽은 연기금을 일종의 펀드로 본다. 수익률 최대로 높여서 나중에 돌려주자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금고갈이 안나나? 그렇지 않다. 30~40년을 보면, 시장 평균 수익률하고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용을 써도 큰 차이가 없다. 안전하게 운영하는 게 수익률 좀 손해 보더라도 훨씬 낫다.

 

연기금을 일종의 사회투자자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해답이 나온다. 당장 수익률 좀 손해 보더라도 사회의 생산성이 있는 부분에 과감하게 투자하자는 거다. 그쪽 경제가 잘 돌아가게 되면 나중에 세금 베이스가 넓어지게 된다. 연금 줄 수 있는 기반도 커진다. 즉, 경제잠재력을 키우는 사회투자자본 관점에서 연기금을 쓰는 게 옳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연기금을 줄이지 않고, 사회책임투자를 대폭 확대하면 되지 않나?

"사회책임투자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나,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예컨대 240조 중 100조 200조를 사회투자로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회투자는 연기금 사용의 일부지, 전부가 될 순 없다. 기금을 줄이지 않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민간 금융전문가로 기금운용위 채운다? 사회적 합의구조 깨는 것"

 

- 정부의 연기금운용위원회 개정안도 논란거리다. (기금운용을 독립적으로 담당하는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 핵심은 운용위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민간 금융전문가 7명으로 꾸린다는 거다. 기존의 운용위 20명 중 10명을 가입자 대표로 채운 방식과 차이가 크다. 바람직한가?  

"기금이 일개 펀드처럼 운용될게 뻔하다. 수익률 위주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데, 리스크가 너무 크다. 공적재원인 연기금의 성격과도 배치된다.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지금처럼 가입자 대표를 운용위에 포함함으로써, 사회적 합의구조로 운영하는 게 옳다."

 

- 기금운용의 정치적 목적성을 배제하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주장인데.

"시장에 맡기면 합리적으로 운용되나?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자. 시장도 리스크가 많은 건 마찬가지다. 여러 리스크를 같이 고려하는 지배구조가 필요하다. 즉, 시장에서 온 사람도 필요하고 정부에서 온 사람도 필요하고 사회단체 사람도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기금운용을 하는 게 제일 낫다. 그럴 경우, 기금운용이 잘못되면 모두가 책임을 질수 있지만, 수익성 위주로 했다가 잘못되면 그걸 누가 다 책임지나."

 

- 현재의 구조로 놔두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는 건가?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되 형식적으로만 대표성을 갖고 있는, 즉 말은 민간단체지만 실제로는 정부쪽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빼고, 실질적으로 주요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들을 운용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운용위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기구가 필요하다. 지금은 그게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다. 여기를 준 상설화된 기관으로 만들어, 기금운용위원들에게 전문적인 지원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태그:#김연명, #국민연금, #연기금, #국민연금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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