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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흔히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국내 최고의 신문'임을 내세워 온 <조선일보>와 맞서 싸우는 정치인들이 있으니 간이 크다는 소릴 들을 법도 하다.

 

해당 언론사와 이들의 관계는 불가근만 있고 불가원은 보이질 않는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그 주인공. 소속 당은 서로 다르지만 한편이 되어 거대 신문사와 맞서 싸우는 모습이 볼 만하다. 법정으로 옮겨 붙은 이들 싸움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종걸·이정희의원 vs <조선일보>, 과연 누가 이길까?

 

<조선일보>는 고 장자연 씨 자살 사건 이후 파문이 확대된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이종걸 의원과 이정희 의원을 형사 고소했다. 이 신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 의원에 각각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걸었다.

 

<조선>은 5월 9일자 2면 '본사, 이종걸·이정희 의원에 각각 10억 손배소'의 기사에서 "조선일보사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조선일보사와 특정임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민주당 이종걸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을 지난달 형사 고소한 데 이어, 8일 두 의원에 대해 각각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기사는 "조선일보사는 소장에서 이종걸 의원에 대해 '본사 임원은 장씨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이 의원은 지난 4월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도 없이 조선일보사 특정임원이 고 장자연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표현해 본사와 본사 특정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또 이정희 의원에 대해서는 "지난달 10일 MBC '100분 토론'에 나와 사회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본사 특정 임원이 장씨 사건에 관련돼 있는 것처럼 수차례 실명을 거론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와 함께 장자연 리스트를 보도했던 KBS와 MBC에 '허위보도로 명예훼손을 했다'며 3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선>은 앞서 악의적으로 사건을 왜곡하고 보도한 언론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답다. 강한 선제공격이 매섭다. 그러나 그 뒤에 불어 닥칠 역공을 미처 예상하지 않은 듯하다. 당장 KBS와 MBC는 19일 "명예훼손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법정에서 맞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적을 언론계 내부에도 만들었다. 이제 협공을 당할 처지다.

  

게다가 이종걸 의원과 이정희 의원은 둘 다 율사출신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란히 졸업한 이들 두 의원은 소속 당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 법대와 사시 합격자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사시 30회 출신인 이종걸 의원이 38회인 이정희 의원보다 선배지만 이번 <조선>과의 싸움에서 선후배가 한편이 됐다. 참으로 볼만한 싸움이 됐다는 정가의 관전평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 불거진 듯하다.

 

이종걸·이정희의원, 법대-사시합격-율사출신-인터넷 강자 '공통점' 

 

또한 두 의원 모두 인터넷 미디어에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6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과 간사를 역임한데 이어 1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과 18대에서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종걸 의원은 관록이 쟁쟁하다. 현재 국회에서 언론과 밀접한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인터넷정책론'이란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이정희 의원 또한 만만치 않다. 평소 왕성한 블로그 활동으로 많은 독자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버 정치논객'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지역구를 가진 이종걸 의원과는 달리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점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정희 의원은 블로그를 통한 활발하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어떤 이슈와도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 의원인 이정희 의원의 블로그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 이후 <조선일보>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이정희 의원의 블로그 활동을 지켜보면 인터넷 정치의 별미를 맛보는 듯하다.

 

'사람과 벗', '세상보기'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운영되는 그의 블로그에 등록된 전체 글만도 580건이 넘는다. 이 중 <다음>의 view(블로거뉴스)에 오른 글은 모두 260건. 그 중 10건은 베스트기사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지난 4월 12일 <다음> 블로거뉴스의 베스트 기사에 오른 '입 다물라는 으름장에 오그라들지 않았을 뿐입니다'란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조선일보가 저와 이종걸 의원,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이사를 고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담담하게 그리고 통렬하게 일갈했다. <조선일보>의 고소와 관련해 "침묵의 카르텔을 깬 국회의원과 언론을 본보기로 삼아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한 그는 침착하면서도 에둘러 표현했다.  

 

"저는 명예훼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국민 각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역시 저에게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입 다물라는 으름장에 오그라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정희,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    

 

두 가지만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첫째, 이종걸 의원의 질의는 명백히 면책특권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과 둘째, 이렇게 모두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무책임한 경찰의 태도를 짚지 않을 수 없다"며 "성상납의 추악한 관행, 성매매처벌법 위반혐의에 대해 경찰은 당연히 수사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지부진하다. 그 이유를 지적한 의원들은 다시 조선일보로부터 고소당했다. 경찰이 살아있는 권력 아래 엎드리지 않고 제대로 수사했으면 이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변한다.

 

베스트에 오른 이 글은 무려 1049건의 추천 수를 기록했다. 그 뒤 5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블랙코미디를 보다'는 글이 많은 추천(477건)을 받아 <다음>에서 역시 베스트에 올라 눈길을 끈다.

 

"밤 12시가 되어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 봉숭아학당 문이 닫혔습니다. 본회의에 올라왔다가 처리 못한 법안이 20건도 넘게 남았습니다. 12시 30분에 브리핑했는데, '한나라당의 자중지란으로 벌어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더군요. 참. 한나라당, 협상한 것으로도 양보 못하고 강경하게 원안대로만 가야한다고 하니, 이것이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0:5로 패한 다음 날 나온 태도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 이래서야 국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타깝습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연출됐다"며 "다시 생각해도 계속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고 표현한 대목이 흥미롭다. 6월 국회를 앞둔 5월 19일에도 그는 '힘없는 여성에게 성접대를 강요하는 권력층!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란 제목의 글과 함께 '고 장자연에 대한 성상납강요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가 발의하게 될 이른바 '장자연특검법'이다.

 

그는 "지난 4월 24일 탤런트 고 장자연(29)씨의 성상납 강요 의혹 등에 대한 경찰 중간 수사 발표로 장자연 사건 조사가 그동안 우려했던 대로 제대로된 진실 규명을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혹 속에 막을 내렸다"며 "경찰은 41명의 전담수사팀을 투입해 40일이 넘도록 수사했지만 성상납 강요 의혹은 오간 데 없고 몇몇 인사들의 술시중 강요 혐의 등이 일부 드러났을 뿐"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고 장자연 사건해결을 위한 특별검사제를 도입을 청원한다. 특검제 도입으로 다시는 신인 연예인들과 같이 사회적 약자가 성상납 등의 가해자 혐의를 받고 있는 유력언론사 고위 임원을 비롯한 정치계, 재계, 연예계 등 사회 권력층이 검찰의 비호를 받는 속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며 특검법 필요성을 설명했다.

 

변수 많은 <조선일보>와 두 정치인 싸움...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이미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특정인을 거명하거나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고 하여 그 대상과 상황을 불문하고 7인의 인사를 무차별적으로 고소했다"며 "또한 국민들의 알권리에 부응하여 면책범위에서 발언한 국회의원은 물론 타 언론사까지 협박과 보복의 대상으로 삼아 수십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재갈을 물리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두 정치인과의 다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국민적 의혹과 요구를 대표해 청원한 특별검사임명에 대한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두 가지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정활동 일거수일투족을 블로그에 매일 공개하는 이정희 의원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의 반향이 다양하다. '꼼꼼하고 당차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조선>과 일전을 벌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방송출연 이후 댓글이 많아졌다.

 

"노무현 이후에 노무현을 뛰어넘는 정치인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날카로운 안목, 뛰어난 언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돋보인다."

"노동자, 농민과 서민의 그늘진 곳을 지켜주는 촛불이 되어 줄 것을 기원..."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입장을 아우르는 좀 더 큰 정당이 되었으면..."

 

그의 블로그 활동을 지켜보면 바야흐로 사이버정치 시대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 인터넷 기술의 영향이 정치분야까지 파고들었다. 정치인의 소통채널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블로그정치 시대'다.  

 

기성 언론인 못지않게 탁월한 글과 사진 솜씨, 순발력 있는 감각으로 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한 국회의원 블로거들이 인터넷신문과 포털사이트를 넘나들며 정책이슈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공론장에서 토론하고 평가받고 있다. 주목받을 만하다.

 

굳이 흠을 잡자면, 이정희 의원 블로그 홈페이지 타이틀은 다른 블로그에 비해 너무 크고 둔탁하다는 느낌을 준다. 후원안내 금융기관 계좌번호 또한 활자가 너무 커 보인다. 옥의 티를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태그:#조선일보, #이정희,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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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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