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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5월 13일. 그러니까 내가 명퇴를 하고 하향한 지가 벌써 만 세 해가 지나고도 세 달이나 지났다. 그 동안 우리집 담 속에서 자라던 야생차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내가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찻잎. 서른 해 남짓 교직에 있으면서 연만하시어 아흔이 다 돼 가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고, 내가 태어났던 고향땅에 집을 짓기 시작하며 고민 아닌 고민을 한 것이 바로 울타리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돌담을 쌓을까? 사철나무를 심어 생울타리를 만들까? 아니면 대나무를 잘라 엮어서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까? 온갖 궁리를 다 해보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내 아내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차나무를 심어 생울타리를 만들면 어때요?"
 
그래서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 물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보성의 차나무가 제1호. 그래서 보성에 어느 묘목상에 차나무 값까지 거의 흥정이 다 되어갈 무렵 우연히 내 지인의 조언을 듣게 되었다. 개량차는 세근이어서 가뭄을 타고 가뭄을 타니 물을 주어야 하고 물을 주니 비료도 필요하고 그러니 차가 병충해에 저항력이 약해서 농약을 뿌려야 한단다. 그렇다면 차를 기를 이유가 전혀 없는 게 아닌가!
 
그 대안이 야생차란다. 야생차는 심근성이어서 가뭄을 덜타고 병충해에도 강해 농약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옳거니! 그러고서는 순천에 내 벗을 통해 선암사까지 가서 야생차 씨앗을, 20키로를 구해와서 다섯해 전 동짓달에 돌담 사이 흙에 심었다. 그랬더니 발아율이 95%는 되나 보다. 이듬해가 되니 싹들이 여기저기서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 해를 길러도 별로 자라지를 않는다. 알고 봤더니 비료기가 없어서란다. 그래서 아직도 울타리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함량 미달이다. 차나무 북방 한계가 장성까지라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북풍한설이 몰아쳐 직접 부딪치는 곳의 차는 얼어죽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어서 자라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별무소득이었다. 그래서 금년에는 궁리 끝에 자란 차나무를 20센치미터 높이로 다 잘라서 아래서부터 곁가지를 내 우거지게 하며 키를 키워나가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그래서 잘라낸 차나무.
 
그 차나무를 버리려다 문득 생각이 번쩍. 저기에 붙어 있는 찻잎을 따면 그게 바로 차가 아닐까였다. 3시간여를 참고 찻잎을 따 모은 것이 겨우 요거다. 끝에 보드라운 두 잎만을 따서 모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거를 약식으로나마 덖기로 했다.
 

 우선은 요리용 프라이팬을 이용하기로 했다. 약한 불로 10여 분을 볶아서는 무명 장갑을 끼고서 부빈다. 그러면서 찻잎에 상처를 만드는 것이다. 상처가 많을수록 나중에 차향이 잘 우러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린다. 반복 작업을 두 번 하고 나니 제법 차 모양으로 변해 간다.
 

실제로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몇 해 전에 눈으로만 보고 배워 두었던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덖는다. 마음 속으로 제발 곁에라도 가 달라면서 말이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차향이 코를 째르니 아울러 기대감도 커져만 간다. 네 번을 덖고 나니 이제 제법 차티가 난다.
 
내가 덖으면서도 신기하다. 첫번째는 톡톡 튀던 소리가 이제는 잦아든다. 찻잎 특유의 녹색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간다. 그래도 찻잎에서는 촉감으로 습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더 덖으라는 얘기다.
 

식어서 꼬독꼬독해 가는 찻잎을 다시 불 위에 올려 놓고 목장갑 낀 손으로 뒤적여 말리면서, 문질러 상처를 내고 그렇게 반복을 한다. 가끔은 맨 손으로 만져 보며 습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아직은 촉촉한 기운이 남아 있어 손에 감촉이 온다.
 

이제는 웬만큼 덖어졌나 보다. 만지면 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다. 이게 차구나 싶다. 그것도 내가 길러서 내가 따서 내가 덖은 야생차. 곧 작설차가 아닌가! 다 덖어서 완성품을 만들어 놓고 보니 대견하고 흐뭇하다.
 
 
이제는 이 차를 음미할 차례인 것을!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연 차 맛이 나기는 날까? 아니면 풋냄새만 풍기고 말까?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으로 물을 정성들여, 끓이고 식히고 끓이고 식히고 끓이기를 반복한다. 그래야 차맛이 난다고 했으니… 제대로 하려면 새벽의 샘물을 길어다 해야한다는데… 그럴 수는 도저히 없고 보니(지하수와 수도물밖에 없으니 말이다) 끓이기라도 정성을 들여 보기로 했다.
 
끓여 놓고 보니 차 색깔은 그럴 듯하다.
 
킁 킁 킁 향기를 맡아 보니 향기느 그럴 듯한 정도가 아니고 그야말로 최상이다. 여기까지는 성공한 셈이다. 이제 맛을 봐야 할 텐데, 조금은 두렵다. 물 온도 80도, 우려내는 시간 정확히 3분을 재었으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마도 맛도 그만이리라.
 
찻잔을 들어 가만히 코끝에 가져가 향을 맡아 본다. 차향이 코 속으로 살살 스며 들어온다. 이 상쾌한 기분을 깨뜨릴까 봐 마시기가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서 맛을 보라고 재촉을 한다. 가만히 찻잔에 입술을 가져간다. 마시지는 못하고 혀로 가만히 맛을 본다.
 
아! 그 맛이라니!
 
한 모금 입 속에 머금고는 음미한다. 감히 목으로 넘기기가 저어하다. 천상의 맛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드디어 차나무 재배에 입문과 동시에 대성공. 이제부터는 일년 내내 이 차맛에 젖어 사는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누구에게 감사를 해얄까?
 
감사합니다. 하늘도, 땅도, 내 벗도, 내 아내도.
 
나만 이 감미를 독점할 것인가! 이 집에 오시는 모든 이에게 드려야겠다. 이 천상의 맛을!
 

 


태그:#작설차, #야생차, #차향, #찻잎, #덖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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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와 시와 문학과 야생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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