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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반항아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는 학생도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학교 성적에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치고 나는 달라졌다.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영화 <가벼운 잠> 속에서 선생님과 학생 간의 상담 모습.
 영화 <가벼운 잠> 속에서 선생님과 학생 간의 상담 모습.
ⓒ 키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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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내가 기대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1학년이 끝나고 겨울 방학 때 단과 학원과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방학 내내 단과 학원에서 수학, 영어 공부를 매일 2시간씩 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실에 앉아 하루 종일 2학년 공부를 예습했다. 2학년 때는 꼭 성적을 올려서 부모님과 선생님께 떳떳한 아들 혹은 제자이고 싶었다.

하지만 2학년에 올라와서 처음 친 중간고사는 나를 외면하였다. 4개월 동안 단과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에 매진했지만 1학년 때 성적이랑 똑같았다. 갑자기 내가 너무 싫어졌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기대만큼 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난 후 수업 시간에 는 매일 졸고, 야간자율학습 시간 때는 공부를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만 연구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 달 정도 공부에 손을 놓고 지내고 있자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성민아 너 요새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그렇게 착실한 애가 요즘 왜 그렇게 힘이 없니? 수업 시간에 매번 졸던데 무슨 일 있니?"
"선생님 저 학교 공부가 너무 싫어요.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를 제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부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니가 하고 싶은 거라? 니가 하고 싶은 건 공부를 안 해도 할 수 있는 거니?"
"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매번 교실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남이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웃으시면서) 니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럼 니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떻겠니? 학교 공부 이외에 다른 방법을 통해 너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렴."
"네. 앞으로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어깨 피고 힘차게 살게요."

"그래 힘내자! 아 그리고 내 수업시간에 또 졸면 그 때는 벌 줄거야!"

농구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모여서 농구를 하는 고등학교 때 농구를 같이 했던 친구. 이 사진은 대학 3학년때 모여서 농구 하고 찍은 사진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모여서 농구를 하는 고등학교 때 농구를 같이 했던 친구. 이 사진은 대학 3학년때 모여서 농구 하고 찍은 사진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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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중학교 때 열심히 했던 농구를 다시 시작 하는 것이었다. 물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체육 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이랑 농구를 하곤 했다. 하지만 가끔 하는 농구는 재미도 없었고 졸음만 불러왔었다.

농구를 다시 시작하면서 중학교 때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매주 1회 김해 인제대학교에 올라가서 농구를 하기로 약속했다. 각자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있어서 매주 1회 모이겠나 싶었다. 하지만 마땅히 주말이라도 놀 곳이 없었던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매주 인제대에서 농구를 했다.

농구를 하면서 나는 많이 바뀌었다.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농구를 하면서 말 주변이 늘었다. 고등학교 선배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30대 아저씨, 중학생 등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농구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니 내 스스로 내가 잘 하는 게 있다는 게 매우 뿌듯했다. 농구를 통해 위축되었던 나의 자신감이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공부가 안 될 때는 책을 한번 읽어 보렴!"

농구를 통해 위축되었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있는 시간은 여전히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학교 수업은 재미도 없고 나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수업시간 내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성민아 여전히 학교 공부가 잘 안 되니? 공부가 안 되면 책을 한번 읽어보렴."
"저 교과서 외에 책을 본 적이 까마득한데 과연 책을 볼 수 있을 까요?"
"유명한 소설부터 시작해서 니가 관심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골라보렴."

선생님의 조언 이후 나는 하루 종일 교과서 외 책을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이게 아닌데 나는 그 당시 너무나 학교 공부가 싫었기 때문에 다른 책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한 권, 한 권 읽어 갈 때마다 새로운 세상에 사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유명한 소설부터 시작해서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 갔다. 당시 학교 공부에 불만이 있고 구속적인 삶을 강요하는 학교 제도가 싫어서 자연스레 사회비판 서적에 눈이 갔다. 홍세화씨의 <빠리의 택시 운전 기사>, 박노자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례21 등을 읽으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성민아 요세 부쩍 사회 문제와 관련 된 도서를 많이 보는 것 같구나. 재밌니?"
"네. 제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을 알 수 있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사회를 바꾸어 가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겨요."

"(웃으시면서)정말? 허허 너 밥 굶는 직업을 가지려 하는구나."
"네?"

"성민아 토론 대회 한번 안 나가 볼래?"

고등학교 졸업 하고 난 후 같은 반 친구들과 단체 사진.
▲ 졸업식 마치고 단체 사진 고등학교 졸업 하고 난 후 같은 반 친구들과 단체 사진.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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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춘기 시절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로 끝이 났다. 1년 동안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농구와 책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 짓고 3학년에 올라왔다.

하지만 3학년 생활은 쉽지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공부를 1년 내내 매일 쉬지 않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학년 때와 같이 놀고 싶어도 부모님과 선생님의 압박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5월까지 열심히 공부하다 지쳐 있는데 같은 반 친구가 부산에서 열리는 청소년 토론대회에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토론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무슨 토론을 하겠냐고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복도를 지나가시다 이렇게 말씀 하셨다.

"성민아 이번에 부산에서 하는 그 토론 대회 나가냐?"
"지금 고민 중이에요. 제가 지식도 없고 말도 잘 못하는 거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선생님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하는 대회라 재밌을 텐데 한번 나가보자. 너 작년에 책 많이 읽었잖아. 그 정도면 말도 준비해서 하면 잘 할 거야!"
그래요? 그럼 나가는 방향으로 생각해볼께요."

"저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선생님의 권유로 나는 토론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토론대회라 쉽지가 않았다. 결국 예선전에서 탈락하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 본선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본선 토론을 지켜보고 있는데 2학년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본선까지는 못 올라갔구나?"
"네. 아무래도 처음 하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에이 글을 써서 예선 토론 까지 간 것만 해도 어디냐. 수고했다."

토론이 끝나고 선생님과 단 둘이서 토론 장소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요즘은 잘 지내지? 너 2학년 때가 기억나구나. 아직도 미래에 뭐하고 살지 결정 안 했니?"
"선생님 저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진지하게) 정말이야? 사실 내 남편이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거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거 명심해라.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당연하죠."

"이야 우리 반에서 미래에 큰 사람 한 명 나오겠는걸. 상상만 해도 설레네. 꼭 사회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약속해!"
"선생님 두고 보시라니깐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졸업하고 바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는 바람에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선생님께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5년 전에 약속 했던 약속 지키려고 지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고도 마음 변치 않고 사회운동가로 삶을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만간 한 번 찾아 뵐 게요."


태그:#스승의날, #스승,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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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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