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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째 한우 농사를 짓던 막내 동생에게 지난해 4월 18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명박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촛불이 아직 타오르기 전부터 밀려온 미국발 쇠고기 쓰나미는 11년 동안 한우와 자기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동생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소값 폭락은 현실이 됐다. 동생은 지난해(2007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송아지 값은 숫송아지는 250만원~270만원 정도였는데 올해(2008년) 200만원~220만원 정도 나가고, 암송아지는 3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80만원 정도 하니까 100만원 이상 떨어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송아지값 폭락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말미암아 사료값(배합사료)은 50%나 올랐다면서 "송아지가 태어나서 1년 동안 먹는 사료값이 140만원인데, 이게 50% 인상되면 어떻게 되겠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송아지값은 요즘 200만원 정도 형성된다. 지난해와 별 다르지 않다. 더 떨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산 쇠고기가 생각보다 소비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촛불이 끼친 영향이다. 아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성을 의심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을 의심하는 것만으로 한우를 지킬 수는 없다. 한우를 지키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 FTA를, 미국축산업체는 결코 쇠고기 수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개방했으면 했지 포기는 그들에게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예상보다 소비가 적은 이유로 안전성 문제를 지적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쇠고기 이력추적제'이다. 쇠고기 이력추적제는 지난 2007년 12월 '소 및 쇠고기 이력추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사육단계에서 단계별로 시행돼 오다가 오는 6월 22일부터는 도축 및 가공, 판매, 유통단계까지 확대 시행된다. 쉽게 말해 소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으로 소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다 알 수 있다.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정착되면 미국산과 호주산 쇠고기를 국내산으로 속여 팔 수 없다. 국내산 육우가 한우로 둔갑하는 일은 거의 사라진다. 이 제도가 노무현 정부에서 법률로 제제정되었지만 촛불이 준 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이력추적제 하나만 제대로 단속하여 정착시켜도 한우는 미국산 쇠고기 파고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정부가 할 몫이고 한우 농사꾼 동생은 정부에만 손길을 내밀 수 없다.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역대 어느 정권도 농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거나 추진한 적이 없다. 정말 농민을 위한 정책을 폈다면 농민을 희생양 삼아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고, 미국과 유럽 연합과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스스로 '쓰나미'를 이겨내야 한다. 한우 농가들은 송아지 값이 떨어지는 것보다 사료값 폭등을 더 어려워한다. 이는 돼지를 키우는 농가도 마찬가지다. 사료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가축의 종류와 사육 목적에 맞는 영양분을 골고루 공급하기 위하여 몇 가지 원료 사료를 알맞게 배합해 만든 배합 사료와 건초나 짚처럼 지방, 단백질, 전분 따위의 함유량이 적고 섬유질이 많은 조사료가 있다.

 

배합사료는 국내 생산이 거의 되지 않아 대부분 수입이다. 곡물 생산량이 3% 줄어들면 곡물가격은 30% 오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배합사료 주성분이 곡물이므로 사료값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한다. 거기에다 환율까지 상승하면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해 사료업체들은 6번에 걸쳐 앞다투어 50% 이상의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농협은 지난 4월 평균 3.2% 사료가격을 내렸지만 50% 오른 것이 비하면 '새발에 피'일뿐이다. 정유업체가 기름값 올리고 내릴 때 가격 차이가 다른 것처럼 사료값도 거기서 거기다. 이래 저래 힘 없는 이들은 힘들다.

 

그럼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배합사료만 먹일 수 없다. 조사료를 먹여야 한다. 조사료는건초나 짚이다. 소가 좋아한다. 섬유질이 많아 육질에도 좋다. 동생은 청보리를 키워 조사료를 직접 생산하는 방법을 택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쌀농사를 짓던 논을 올해부터는 청보리를 심었다. 부모님이 40년 전 산 후 우리집 밥을 책임졌던 논이 이제는 소밥을 위한 땅이 되었다.

 

 

동생이 나락농사가 아니라 청보리 농사를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청보리는 사계절을 심을 수 있다. 사계절 심으면 사료값 30% 정도는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일년 사료값이 3천만원 정도 들어가므로 1천만원을 아낄 수 있다. 

 

동생은 말한다. 지난해 촛불이 참 고마웠다고. 촛불이 없었다면 이 엄청난 파고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를 믿기 전에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동생이 택한 방법은 사료를 스스로 만들면서 가장 좋은 육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이 촛불을 든 이들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이다.

 

동생의 이런 피나는 노력의 결과, 지난 해보다 소가 50마리에서 약 20마리 정도가 늘어 70마리 정도된다. 동생은 미국산 쇠고기 쓰나미를 보면서 절망만하지 않고, 촛불이라는 힘과 함께 자신 스스로 쓰나미를 이기는 방법을 찾아 희망을 보았다. 그 희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촛불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 응모


태그:#촛불,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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