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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이다. '우연의 일치'를 말할 때 흔히 사용하지만 청렴과 소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야 할 정치인들이 경계하고 새겨야할 말로도 사용되는 고사성어다. 그런데 오비이락 식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 정치권에서 자주 목격되는 요즘이다. 

 

[#그림 하나] 한승수 총리, 지역신문 편집국장 오찬간담회... 왜?

 

6일 지역신문 편집국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리를 주선한 건 한승수 국무총리다. 이날 낮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 지역 일간신문사 편집국장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실시했다.

 

이날은 언론관계법 개정과 관련한 여론수렴을 위해 부산에서 첫 공청회가 열린 날이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정책 홍보와 지역소통을 위해 지방신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지역신문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1개 지역 일간신문사 편집국장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역신문발전을 위한 정부 부처 광고지원 확대, 지역신문발전법의 상시화 입법, 지역신문 난립 방지를 위한 정부의 설립 규제 및 관리 강화, 지역신문 선정사에 대한 직·간접지원 확대 등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지역경제가 어렵고 군소신문이 많이 생겨나 지역언론이 어렵다고 알고 있다"면서 "정부차원에서도 챙겨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7일자 지역신문의 지면에 묻어난 한 총리의 마무리 발언은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 등 대체로 두루뭉술하다. 그러나 해당 지역신문들은 다음날 사진과 함께 박스기사로 눈에 띄게 처리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안을 들고 나왔을 때 거품을 물고 비난의 소리를 함께 했던 지역신문들이다.

 

[#그림 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울다가 웃다가... '스포트라이트'

 

미국을 방문 중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눈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4일 워싱턴 DC 특파원 만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는 도중 눈물을 쏟은 모습이 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최근 장애아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노래를 하자 이를 관람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최 위원장이 미국, 일본과 방송통신 정책협력을 강화하고 바람직한 미디어산업 발전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해외방문 길에 올랐지만 시기가 절묘하다. 미디어국민발전위원회(이하 미디어위원회)의 지역 릴레이 공청회가 이뤄진 시점이다.

 

<중앙일보>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7일 '미국은 신방 겸영 불허가 원칙?'이란 2면 '뉴스분석'에서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꼽히는 미국 타임 워너사의 캐럴 멜턴 부회장과 최시중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사진과 함께 내보냈다.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는 규제완화가 큰 몫을 했다. 시장이 개방돼 미디어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디어 규제를 풀어 시장접근 기회를 넓히려는 한국의 정책 변화에 경의를 표한다."

 

매체 간 겸영 확대나 미디어 기업의 해외진출은 분명한 시대적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간 국내의 신문·방송 겸영 논란 과정에서 외국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됐던 나라가 미국이다"는 기사는 "최 위원장의 이번 미국행은 이런 점에서 미국 미디어 산업과 정책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 온 신문이다. 최 위원장이 의도를 잘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 그림 셋] "한나라당 멍석 까는 미디어위원회는 해체해라"

 

우려했던 바가 터진 건 바로 이날 6일. 첫 지역 공청회 자리라는 부담이 컸던 것일까. 공청회가 끝난 자리에 가득 메운 비난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미디어위원회가 이날부터 '릴레이 공청회'에 돌입했지만 실패작이라는 평가다.

 

이날 오후 2시 부산시 해운대구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첫 지역 공청회에서 진행을 맡은 여당 추천 위원장이 청중의 질문을 제한하고 일방적으로 종료하면서 파장이 크다.

 

"한나라당 멍석 까는 미디어위원회는 해체해라"며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공청회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김우룡 위원장이 공청회를 진행하다 오후 5시20분께 여당쪽 위원들과 함께 자리를 뜬 게 화근이 됐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공청회는 2시간 20분 동안 진술인들의 토론이 이어졌지만, 청중들의 질문은 1시간 이내에 그쳐 상당수 청중들이 준비했던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됐다.

 

"오늘 못하신 분은 다른 지역에 와서 하면 됩니다?"

 

애써 기다려왔는데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것이 '100일 단일화 작전'의 첫 작품이다. MB정부와 한나라당이 연출, 감독을 맡고 여·야가 선발한 미디어위원회가 주연을 맡았지만 급조됐다.

 

연출과 감독의 주문대로 서둘러 멍석은 깔았지만 관객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시작부터 '실패작'이란 소리가 안팎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진정성 부족한 여론수렴 원천무효"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수렴의 전제조건이 간과돼 '자가당착', '국민기만'의 부메랑'을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다. 일방적으로 종료와 야유가 터져 나온 첫 공청회가 여론 단일화 첫 걸음이다. 지역 공천회가 다음에 광주도 있고 춘천, 대전, 인천 네 번이나 남았기 때문이라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지가 않다.

 

이날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첫 지역 공청회의 원천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강창덕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결과적으로 오늘 참으로 참담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공청회라는게 뭡니까. 귀를 열고 지역 주민들의 건의를 청취하겠다는 것이 공청회 목적"이라며 "오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주최 공청회는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호진 언론공공성연대부산연대 공동대표는 "방청석에서 그렇게 질문하겠다는데도 귀를 닫고 일어서는 공동위원장을 보면서 혹시나 방청하고 있는 시민들을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며 "앞으로 이런 식으로 언론관계법도 처리할 것 같은 것이 불길하다"고 밝혔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언론법이 통과될 경우 지역언론이 고사될 것"이라며 "미디어위원회가 지역여론을 수렴해 현 법안을 폐기해줄 것"을 이구동성으로 촉구한 이들이다. 그런데 실망만 잔뜩 안겨줬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4월 임시국회가 끝나면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외국 방문길에 올랐다. 18대 국회의 사실상 첫 '방학'으로 불리는 5월을 맞아 국회 각 상임위와 여야 지도부, 개별 의원 등 전방위로 '외국행'이 이뤄지는 양상이다. 기댈 곳이 전혀 없는 걸까.

 

큰 소리 치던 야당 의원들 다 어디 갔나?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

 

6월 국회에서 언론법이 한나라당 안대로 통과될 것을 미리 짐작한 것일까. 큰 소리 치던 야당 의원들의 말끝이 초기와는 다르게 흐릿하다. 4월 국회가 끝나자마자 외유성 해외출장을 줄줄이 나서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또 다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을 공산이 크다.

 

미디어위원회가 출범하고 50일간 드러낸 정치권의 복심을 복기해 보면 진정성의 깊이와 두께를 알 수 있다. 여야가 국회에서 방송법과 신문법·IPTV법·정보통신망법 등 4개 법안을 사회적 논의기구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뒤 6월 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2월.

 

그 후 3월 6일 출범한 미디어위원회는 그동안 전체회의 8회, 주제별 공청회 1회를 열고 100일 활동 시한 중 절반이 지났다. 그러나 신방겸영허용 여부 등 핵심 의제의 합의는커녕 회의 공개 여부·공청회 횟수 등 회의 운영 방식에도 이견을 빚을 정도로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여야 위원들은 이달 중 여론 다양성 지표 조사·국민 여론 조사를 해 최종 합의안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뚜렷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미디어위원회가 국민 여론수렴을 했다고 치자. 단일안을 낼 수 있을까? '1백일 작전'이 '숨 고르기'라는 것쯤은 상식적인 수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양쪽이 절충점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결국 시간만 허비한 셈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입법화 하는데 면죄부를 주는 징검다리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 정치적 수사와 술수에서 미디어위원회가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여론독과점과 관련한 시장조사 하나라도 자료를 만드는 것이 중요"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예리하게 짚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미디어위 중간평가 토론회에서다. 그는 "학자들이 여론독과점과 관련해 시장 조사 연구를 하기 난해한 것은 시장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 것인가부터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디어위원회는 남은 활동 기간 동안 미디어법이 어떻게 돼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여론독과점과 관련한 시장 조사를 해 하나라도 실질적인 자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언론학자 200여 명으로 구성된 미디어공공성포럼이 미디어위원회의 중간평가와 앞으로 활동 방향에 대한 제언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채수현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도 "미디어위원회에서 강혜란 위원이(쟁점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며 "객관적 자료가 없으면 미디어시장에 대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미디어위원회의 활동 기한을 명시하지 말고 실무적인 연구를 진행할 인력을 상임으로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스템은 '실패작', 또는 쉬어가는 정도의 '숨 고르기'용이라는 지적이 옳다. 성공적인 결과를 낼 만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미디어위원회는 존속 시한의 절반이 훌쩍 지났지만 공청회를 한 번 열었을 뿐이다. 학자와 언론인 출신, 시민단체 관계자 등 전문적 식견을 두루 갖춘 인사들이 추천을 받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위원회다. 그런 위원회가 더는 국민적 무관심과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미디어위원회가 그렇지 않아도 거대 여당의 언론악법 밀어붙이기와 야당의 투쟁의지 부족이 빚어낸 기형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나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는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속도로 이뤄졌다.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은 정부 입법안이 발의된 후 28일 만에 상임위 통과라는 기록을 세웠고 본회의는 재적 의원 218명 중 찬성 171명, 반대 26명, 기권 21명으로 의결했다.

 

이번 국회 통과로 뉴스통신진흥법이 한시법에서 일반법으로 전환되고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지위와 지원을 영구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국가기간통신사다운 공정성, 객관성을 보장할 장치의 미흡 등이 지적되었지만 여야는 언론악법 공청회 전날 본회의에 상정, 통과시켰다.

 

따라서 미디어위원회는 6월 국회 표결처리를 앞두고 생산적인 결론을 국민 앞에 제시해서 여야 의원들이 합리적인 표결을 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중차대한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현 상태로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운영은 절대 안 된다. 더 이상 국민들 앞에서 뻔히 보이는 쇼를 하지 말라.


태그:#언론법,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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