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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은 어린이날, 나이 서른아홉에 아직 골드미스터(?)인 기자에겐 그냥 쉬는 날이란 것 외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지난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던 터라 휴일인 오늘 평소 산책코스로 가끔 이용하는 과천 서울랜드 동물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오후 4시를 넘긴 시각인데도 경마장역부터 주차장인 상황이었다. 그렇지! 오늘 어린이날이었지? 총각인 탓에 매년 깜박깜박 이런 실수를 하곤 한다.

 

어린이날엔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어린이들 많이 찾는 곳! 그래서 미련두지 않고 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에다 온전히 차를 대놓고선 그래도 휴일인데 아쉬워서 생각해 낸 곳이 바로 삼청동길. 삼청동길은 수제비 먹으러 두어번 간적이 있지만 근래 들어 디카족들의 명소가 된 이후로 오히려 잘 찾지 않던 곳이다. 남들 많이 가는 곳이라면 일부러 잘 안 가는 특이한 성격 탓에. 그런 삼청동길을 그것도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에 똑딱이 카메라 하나 들고서 찾아 나섰다.

 

언젠가 한번 가본 기억이 있어 종로경찰서 앞에서 버스를 내려 감고당길로 향했다. 이 감고당길을 몇분 걸으면 시네코드선재가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정독도서관 방향, 직진하거나 좌회전 하면 삼청동길로 갈 수 있는데 이 감고당길을 걷던 중 특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대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한쪽 팔엔 링게르를 꽂고서 지나가는 행인들 중 단어 두개를 말해 주는 사람에게 즉석에서 시를 써 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

 

오늘은 그냥 쉬러 나온 것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못 본 체 하랴? 구경꾼들 사이에 껴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똑딱이 카메라란 게 오히려 이럴 때 참 요긴하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 인터뷰를 할 경우에 참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장점이 그것이다.

 

▲ 내게 두단어만 준다면 당신을 위해 시를 만들겠소. 종로경찰서 부근에서 삼청동길 방면으로 나 있는 감고당길. 한 학생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두 단어만 말하면 즉석에서 시를 써 주는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를 하고 있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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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학생이라고만 밝힌 이 젊은 여성은 전공이라든지 다른 것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거리에서 즉흥시를 써 주면서 자신이 사는 방 월세도 벌고 하는 일종의 '거리 예술가'였다. 에든버러나 아비뇽 등의 세계적인 퍼포먼스 페스티벌을 종종 다니면서 온갖 종류의 거리예술가들을 만나지만 이런 경우는 참 특이하다. 팔에 꽂고 있는 링게르 역시 '예술적인 부족함, 또는 갈증 등을 채워야 한다'라고 하는 식의 일종의 개념예술이었던 것이다.

 

기자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두 명의 여대생 일행이 그에게 시를 부탁했다. 악기를 분다거나 노래를 하거나 또는 초상을 그려주는 등 다른 거리 예술가들도 많이 보아왔지만 아이디어랄까 발상 자체가 참 신선했고 또 즉흥시란 행위 자체가 주문자의 능동적 행위랄 수 있는 '두 단어'의 발제어 제시가 있어 상호 간 교감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예술적 행위란 느낌이 들었다.

 

 

덕성여중고 앞을 지나 화개길 앞 사거리에 이르니 좌측으로 선재미술관이 있었는데 이 앞에서 한 20대 청년이 '똥파리' 전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요즘 '워낭소리'와 '낯술'에 이어 또 한편의 잘 나간다는 바로 그 영화 <똥파리>. 한번 보긴 해야 할텐데 싶으면서도 일단 오늘은 볼 상황이 아니어서 삼청동길을 향한 앞으로 바로 직진, 화개길에 접어들었다.

 

화개길은 삼청동길과 바로 인접한 자그마한 골목길이지만 삼청동길이 인기를 끌면서 상당히 멋스러운 길이 되어버린 곳.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즐비하다. 화개길 초입의 한 카페를 지나치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한쌍의 연인들을 보며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또 이렇게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도 참 소중하다. 연인과 함께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배려'가 있는 것이고 그만큼 스스로가 속박이 되므로.

 

 

 

마침내 삼청동길에 이르렀을 때에는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각이 이미 7시를 넘었으니 해가 길다 해도 이미 너무 늦은 시각. 특히나 똑딱이 카메라로는 굉장히 불리한 여건이다. 기본적인 렌즈의 밝기가 그렇고 또 수동조절 기능도 없기 때문에 모드 조정만으로는 상당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도 늦었고 사진을 찍기도 어려우니 그냥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이왕 온 김에 사진으로만 보고 한번도 못 가본 북촌 한옥마을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이 근처라고 하던데? 총리공관 앞을 거쳐 삼청동 수제비집을 지나치니 우측으로 차가 다니는 넓은 오르막길이 있었다. 가회로라고 한다. 약간 올라가다 보니 부엉이박물관이 보인다. 특이해서 한번 가보렸더니 하필이면 오늘이 쉬는날이었다. 꽃과 부엉이 테마로 꾸민 카페식 박물관이라니 어찌 생겼을지 참 궁금하기만 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대사관을 지나치니 언덕 막바지쯤에 감사원이 보인다. 감사원을 지나쳐 언덕고개길을 돌아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북촌 한옥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돌아와 지도를 보니 사실은 베트남 대사관 바로 옆에도 통하는 길이 있었지만 차량출입을 금하는 표지판만을 보고서 좀 더 돌아온 것이었다. (또한 그 전에도 화개길에서 삼청동길을 거치지 않고 장신구박물관 앞에서 바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미 깜깜한 밤이 되어버렸지만 이 북촌 한옥마을의 낮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미 숱하게 보아왔고 또 전부 다 그 사진이 그 사진이었다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밤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냥 똑딱이 디카. 과연 이 카메라로 한장 건질 수 있을까? 북촌 한옥마을은 김기덕감독의 영화 <빈집>에서도 나왔고 또 최근에는 같은 감독의 영화 <비몽>에서도 주로 밤 장면이 여러번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비몽>에서 보았던 밤 분위기도 참 좋던데 실제로는 또 어떨까?

 

 
결론만 말하자면 밤의 한옥거리 역시 참 분위기 있어 보였다. 다만 똑딱이 디카를 야경모드로 놓고 꽤 열심히 찍노라고 찍어댔지만 '손각대'를 어렵사리 고정해 사실적으로 나온 사진보다는 오히려 약간은 몽환적으로 나온 것이 더 좋아 보였다. 자동 플래시를 터트린 것은 당연히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똑딱이로도 일반인들이 비교적 만족할 만한 정도의 사진은 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수전증만 없고 호흡만 잘 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쳐 안국역, 더 지나쳐 인사동 입구 광장에 다다르니 또 어느 이름모를 거리의 예술가가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말이 아닌 공휴일 저녁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저녁 늦게까지 북적거렸고 연인들도 많이 보였다.

 

이것으로 골드미스터인(?) 기자의 어린이날 저녁 똑딱이 디카를 들고 한 산책의 일정은 끝이 났다. 종로 2가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비록 똑딱이 디카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

 

며칠 전 이 카메라로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조사 후 버스를 타고 청사를 나서는 장면, 노사모 회원들이 노란풍선을 흔드는 장면을 담은 1분짜리 영상과 사진은 이미 다음 블로그뉴스의 특종으로 상당한 인기를 끈 바 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가서는 이 똑딱이 카메라로 총감독 인터뷰와 주영 한국영사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또 아래 사진과 같이 날씨만 화창하면 DSLR 못지 않은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무거운 DSLR 대신에 언제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상당하다. 게다가 동영상까지 된다. 이 자그만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언제라도 예상치 못했던 순간의 특종을 찍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똑딱이라고 절대로 무시하지 마라. 늘 휴대하고 다니면 언젠가는 참 고마와할 사건이 터질테니.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뉴스로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북촌 한옥마을, #감고당길, #화개길, #똑딱이 디카, #똑딱이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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