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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만 스물 네 살의 앳된 청년 얼굴을 하고 있다. 강산도 두 번이나 변했을 그 긴 세월동안 왜 그는 하나도 변치 않고 청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가 광주 청옥동 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던 1989년 5월 10일, 광주엔 부슬비가 내렸다. 그해 11월 4일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광주는 온통 "이철규의 사인을 규명하라!"는 외침으로 들끓었다.

 

당시 그는 조선대 교지인 <민주조선>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교지에 '미제침략 백년사' '북한의 혁명과 건설' 등을 실었다는 이유로 1계급 특진에 삼백만 원 현상금까지 내건 수배를 받고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그를 뒤쫓고 있던 경찰이었다. 설령 경찰 주장대로 그들이 놓쳤다고 하더라도 '제3의 공안기관'에서 수색활동을 벌인 사실을 의문사 진상규명위는 확인했다.  

 

그런데도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의 주검 앞에서 군사정권은 '실족익사'라고 우겼다. 누구도 정권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주검이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흘러 그의 죽음이 '의문사'로 인정되는 날도 왔다. 또 그는 '민주인사'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뭔가 변한 것 같긴 같은데 왜 우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뭔가 바뀐 건 같은데 왜 그는 변치 않은 청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오는 6일 열리는 '이철규 열사 20주년 추모행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진성(89년 당시 조선대 총학생회장)씨는 그 의문을 이렇게 풀었다.

 

"당시 정국을 보면 군사독재 정권이 정권안정을 획책하기 위해서 간첩단 사건을 준비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었다. 또 조선대는 학원자주화투쟁을 통해 비리로 얼룩진 구 경영진을 몰아내며 정권과 연계된 구 세력들과 각을 세우고 있었다. 바로 이 와중에 이철규 열사는 희생양이 된 것이다. 우리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돌아가는 정국이나 조선대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 1주년을 기념하려던 이들이 불법폭력시위대로 내몰려 200명 넘게 경찰에 연행되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 "지금은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받고 있는 3대 국란의 시대"라고 규정할 만큼 공안정국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조선대는 20년 관선이사체제를 끝내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을 해 학원정상화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보수색채의 인사들로 구성된 관선이사를 다시 조선대에 파견했다.

 

 

장진성 위원장의 한탄처럼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당시와 흡사할 수 있나". 그래서 그는 오는 6일부터 열리는 '이철규 열사 20주년 추모행사'가 "사회민주화와 결코 무관 할 수 없는 추모제"라며 "사회민주화를 더욱 새롭게 변화시켜내지 못한 우리의 반성과 자각을 새롭게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철규 열사 20주년 추모행사'는 6일 정오 망월동 묘역에선 열리는 추모제를 시작으로 저녁 7시부턴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추모 총체극과 추모 다큐멘터리로 이뤄진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장 위원장은 "20주년 행사인 만큼 여러 세대와 다양한 이들이 함께 관심을 갖고 참여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다큐멘터리와 집체극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장 위원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조선대 1.8극장 계단에서 "이곳이 조선대 학원자주화 투쟁의 기념일인 1.8항쟁일을 기념해서 만든 곳인데 학생들이 '5.18은 아는데 1.8은 모르겠어요' 하더라"며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이철규 열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철규 열사 20주년 추모행사'엔 모두 1270명의 각계 인사가 성금을 내며 행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이젠 직장인이 된 대학 동문들이 스텝으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다들 어려울 텐데 이렇게 함께 나서주니까 이게 참된 추모가 아닌가 싶다"고 기뻐했다.

 

어느덧 20주년이 돼버린 한 의문의 죽음이 2009년 한국을 향해 던지는 의문은 무엇일까?

 

 


태그:#이철규, #조선대, #의문사, #공안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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