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란의 과일 가게. 과일가게서 감자, 양파 등 채소도 팔았다.
 이란의 과일 가게. 과일가게서 감자, 양파 등 채소도 팔았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인도에 다녀온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거기서 음식을 너무 잘 먹어서 살이 무려 5킬로그램이 쪄서 돌아왔습니다. 그 살 뺀다고 한국에 와서 고생깨나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인도 음식이 정말 먹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토종 한국인인 게지요.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이 사람에게 인도의 음식들은 너무 느글거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술을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면서 느글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술 마시기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점잖은 사람들과 함께 성지순례 차 인도를 방문했는데 부처님의 성지를 다니면서 술을 마신다는 게 누가 봐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술을 음료수 병에 담아서 몰래몰래 마시느라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셔야 할 정도로 인도 음식이 안 맞았다는 사람의 얘기에 조금 더 공감이 갔습니다. 나도 처음에 이란 음식이 정말 입에 안 맞았습니다. 한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이 환경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나중에는 먹을 만해졌습니다.

그래도 이란 음식을 세 끼 연달아 먹으면 나사 풀린 사람처럼 맥을 못 추게 되고 뭔가 허전했습니다. 맵고 짠 한국 음식을 먹어야 나사가 조여질 것 같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때 한국음식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나는 여행 갈 때 고추장을 작은 튜브로 9개 가져가고, 납작한 사각 통으로 두 개나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고추장에 멸치와 다시마를 찍어먹으면 좋다고 해서 다시마와 멸치도 준비해 갔는데, 이 세 가지만으로 충분히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마와 멸치는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국물내기 용도로 쓰였는데 매우 유용했습니다.

일행 중 어떤 분은 다시마 멸치 버섯 등을 갈아 만든 천연조미료를 튜브 병에 담아 왔는데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져간 다시마와 멸치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데 이 분이 가져온 천연조미료는 부피는 작으면서 국물내기에서는 조금의 손색도 없었으니 더 효과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음식 만들기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마술레에서 묵은 숙소에 딸린 주방을 봤을 때입니다. 주방에는 냄비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세 개나 있고, 프라이팬도 있으며 숟가락까지 구비해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콘도입니다.

모든 게 갖춰진 주방을 보자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져서 바로 슈퍼로 달려갔습니다. 난 원래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란의 식료품점에서는 마치 베테랑 요리사라도 되는 것처럼 음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았습니다. 마늘과 닭을 보면서 백숙을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토마토를 보자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감이 잡혔습니다.

이란에서 묵은 숙소. 이란은 이렇게 주방이 딸린 콘도형 숙소가 많아서 한국음식을 만들어먹기 용이했다.
 이란에서 묵은 숙소. 이란은 이렇게 주방이 딸린 콘도형 숙소가 많아서 한국음식을 만들어먹기 용이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이란에서 만들어먹은 수제비.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였는데 그 어떤 수제비보다 맛있었다.
 이란에서 만들어먹은 수제비.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였는데 그 어떤 수제비보다 맛있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슈퍼에서 먼저 쌀을 샀습니다. 식당에서 사먹은 밥이 오르르 부서지고 불면 날아갈 것처럼 건조한데 이는 밥을 짓는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물을 많이 넣고 밥을 지으면 밥에 찰기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쌀을 넉넉하게 샀습니다. 마슐레에 있는 동안은 한국음식을 매끼 해먹을 생각이었으니까요.

불면 날아갈 것처럼 건조한 밥이 안 맞아서 고생했는데 이를 개선할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또 당장 실천에 옮기는 걸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환경을 자신의 편리에 맞게끔 고칠 두뇌를 가졌으니까요.

슈퍼에서 돌아와 물을 많이 넣고 밥을 지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먹을 만한 밥이 됐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밥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나라 밥에 유사한 밥이 만들어졌습니다.

반찬으로는 고추장으로 버무린 오이 무침, 그리고 감자국을 끓였습니다. 감자국은 감자와 양파에 물을 넣고, 또 국물 맛을 위해 다시마와 멸치까지 넣어 푹 삶고, 거기에 마늘 많이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추장을 조금 풀어서 얼큰하게 했는데 전혀 예상 못한 맛이 나왔습니다. 굉장히 맛있어서 이 요리는 이란에서 해먹은 단골 메뉴가 됐습니다. 간단하면서도 한국음식다웠고, 축축하고 얼큰한 게 먹고 싶을 때 딱 좋았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도 이란에서 해먹은 방법으로 만들어 봤는데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채소의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채소도 맛있지만 이란의 채소와 과일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모양만 보면 과일은 작고 채소도 볼품 없는데 맛은 거의 예술입니다. 그래서 아무 양념 안하고 고추장으로만 간해도 모든 음식이 다 맛있게 됐습니다.

이후에 묵은 숙소도 대체로 마슐레에서처럼 주방이 딸린 콘도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열심히 야채가게나 식료품점을 찾아다니며 장을 봐와 수제비도 끓여먹고, 닭백숙도 하고, 물론 감자찌개와 고추장 오이무침은 단골로 해먹었고, 이렇게 열심히 한국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가장 도움이 됐던 재료가 고추장과 멸치, 다시마입니다. 이 세 가지 양념이 없었다면 한국음식은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여행 갈 때도 다른 건 안 가져가도 이 세 가지는 가장 먼저 챙기게 될 것 같습니다.


태그:#이란, #한국음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