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2년을 살아온 정든 집. 떠나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2년을 살아온 정든 집. 떠나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딱새가 집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오래 전 집 앞 우체통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알을 낳고 새끼를 날려 보냈던 녀석들이었는데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와 둥지를 틀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날아갔던 녀석들인지도 모릅니다. 마루 한 구석에 선반을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 제임스 딘의 사진이 새겨진 필통 안에 집 장만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개의 알을 낳아 힘겹게 품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우리 식구가 조만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집 뒷산을 죄 까뭉개고 지나갈 호남고속철 공사가 올 9월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완공을 앞당기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 식구는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쫓겨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녀석들은 둥지를 틀었던 것입니다.

딱새가 마루 선반위에 놓여진 필통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일곱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딱새가 마루 선반위에 놓여진 필통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일곱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녀석들이 오고가는 문짝이 닫혀 알을 제대로 품지 못할까봐 드나들기 쉽게 살그머니 문짝을 열어놓았습니다. 혹여 무심결에 문짝을 닫게 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문틈에 각목을 끼워 놓았습니다. 녀석들은 우리의 배려를 알고 있는 것일까? 슬그머니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둥지에 몸을 바싹 붙이고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딱새 녀석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끄떡없이 알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식구에게 믿음이 생긴 모양입니다.
 딱새 녀석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끄떡없이 알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식구에게 믿음이 생긴 모양입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딱새들은 저리 쉽게도 둥지를 틀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식구는 여태 새로운 둥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보상 한 푼 없이 이삿짐을 꾸려야 하기에 빈집이 딸린 터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땅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땅값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쓸만한 땅은 보통 10만 원이 넘었습니다. 가진 게 별로 없다보니 자연환경이라도 실컷 누리고 살자 주의로 산세 좋고 물 좋은 싼 땅을 찾고 또 찾아 다녔습니다. 빈집이 없으면 세 칸짜리 작은 흙집이라도 지어 살고자 했습니다.

집 옆 개울가에서 함께 놀던 가재며 반딧불이와도 이별입니다.
 집 옆 개울가에서 함께 놀던 가재며 반딧불이와도 이별입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집뒤의 장독대와 앵두
 집뒤의 장독대와 앵두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2년 넘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방천지를 찾아 헤맸습니다. 산세 좋은 마을을 보면 무작정 찾아 들어 갔고 때로는 부동산 중개인들을 통해 물어물어 빈집과 터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내 호칭은 한동안 '사장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장님 좋은 땅이 나왔는데요. 한번 보실래요."

몇몇 부동산 중개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땅값을 평당 1만 원 이상 더 올려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습니다. 어떤 부동산 중개인은 앞으로 되팔기 좋은 땅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투기꾼들처럼 좋은 땅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내 꼬라지가 한심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골 살이 12년 동안 주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매달 20~30만 원씩 남몰래 몇 천 만원의 '거금'을 모아 온 아내와 대판 싸우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돈이 없었으면 그냥 아무 데나 눌러 살믄 그만인디, 그 놈의 돈 때문에 욕심만 커지고 심난해 죽겠네."
"기가 막혀서,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그게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런 소리해!"

사랑방 문고리에 이르기 까지 정이 들었습니다.
 사랑방 문고리에 이르기 까지 정이 들었습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감자 고구마를 구워먹던 사랑방 아궁이가 삼삼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감자 고구마를 구워먹던 사랑방 아궁이가 삼삼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세상천지 널린 게 놀고 있는 땅인데 네 식구 살만한 보금자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아비 된 자로서 자식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터를 찾아다니다가 지쳐 집에 돌아오던 날 큰 아이 인효 녀석이 그랬습니다.

"아, 집 한티 미안하네, 집아 미안하다."

비록 다른 사람의 땅에 얹혀 살아왔지만 녀석들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터전입니다. 그런 정든 터전을 팽개치고 수없이 딴 곳을 끼웃거리고 있는 게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의 보금자리에서 12년을 넘게 살아온 녀석들이기에 그냥 터전이 아닙니다. 제 살붙이나 다름없습니다.

커갈수록 낮아지는 문틀에 집 천장,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흙 마당에서 장화를 싣고 뛰어 놀았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고, 넘어지고 자빠지게 했던 돌부리들마저 정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감자 고구마 구워먹던 아궁이며 아침 산책길, 녀석들의 팔목 힘이 부쩍 생긴 것을 가늠해 주었던 뽕나무 가지며 올망졸망 몰려다니는 버들치에 반딧불이 날아오르는 개울, 집 안 팍 구석구석 그 모든 것이 녀석들과 한 몸으로 놓여져 있던 것들입니다. 정든 모든 것들에게 배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손놓고 떠나야 할 모든 것이 안타깝지만 특히 안타까운 것은 묵정밭을 빌려 4년에 걸쳐 농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일궈 논 산비탈 밭입니다.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톨 주지 않은 밭입니다. 경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밭입니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꿈틀거리는 그 밭에 철로가 깔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보상 한 푼 없이 떠나야 할 우리 식구들이 안타까워 그 산비탈 밭에 무궁화나무를 심어 보라 합니다. 무궁화나무에 큰 보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게 배짱뿐인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돈 몇 백 만원 챙기겠다고 어떻게 양심을 팔수 있겠습니까. 무궁화나무를 심는 순간 개발 지상주의자들과 한통속이 될 것입니다. 내 가슴 속에 자본의 노예라는 낙인이 찍히게 될 것입니다. 그 낙인은 평생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계룡산을 앞에 두고 걸었던 산책길, 눈에 밟히는 것이 어디 한두가지겠습니까
 계룡산을 앞에 두고 걸었던 산책길, 눈에 밟히는 것이 어디 한두가지겠습니까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어떤 이는 평생 살 터전을 마련하고자 다리품을 팔고 있는 내게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아무리 큰 재산을 가졌다한들 배우자가 사랑스럽지 못하면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듯이 평생 살아야 할 집 자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수천, 수만 평의 땅을 가진들 삶터가 편안치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처럼 '도 튼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 같이 진즉에 불쌍한 중생은 삶터가 편안치 못하면 마음자리도 편치 못합니다. 앉은 자리가 편하면 사방 모든 것이 저절로 품안으로 들어오고 그 힘으로 욕심을 덜어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시골생활 12년 동안 터득한 게 있다면 앉은 자리가 편할 때 비로소 나 아닌 누군가와 더불어 뭔가를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평생 살 터전을 찾지 못했지만 걱정은 없습니다. 하물며 두 날개로 떠도는 새들도 땅을 기는 개미도 네 다리로 뛰고 걷는 산짐승들도 저마다 제 터가 있기 마련인데 평생 뼈를 묻을 터전인들 사방천지에서 찾질 못하겠습니까.

오늘도 수컷 딱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날아다 주고 암컷 딱새는 부지런히 알을 품고 있습니다. 녀석들의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 나올 무렵이면 우리 터전 또한  찾지 않겠습니까. 평생 정착하게 될 터전이든 잠시 거쳐가야 할 터전이든 간에 새로운 터전에서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그 생활이 무엇이건 두루두루 행복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받아들여야 겠지요.

개발지상주의에 쫓겨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묻고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딘가에 있겠지요.
 개발지상주의에 쫓겨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묻고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딘가에 있겠지요.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쫓기듯
살집 둘러보고 돌아온 자식 놈
"집아 미안해"
정든 집 뒤로하고 떠나니 마느니
하여 미안한 모양이다.
서너 살부터 정붙인 집
마당의 흙 한 줌
낙서처럼 그려온 삐툴빼툴 벽화
등허리 붙여 두런두런 얘기 나눴던 방바닥
여전히 진행 중인 키 재기 벽
미안한 마음 내놓을 곳
어디 집뿐이랴
10여 년 세월 동안
검은 수염 허옇도록
얼마나 많은 것들과 사랑을 나눴던가.

아파트 짐 빼낼 때는 벽만 남겼지만
시골 마을 구석구석
손길 눈길 닿는 만큼
마음자리 새겨져 있기 마련
두 손 부르트도록
어루만졌던 산비탈 밭이며
새 생명 키우던 둠벙이며 개울
버들치 다슬기 가재
꼼지락거리는 온갖 인연들
밤하늘 반딧불이
산길 걷다 놀래 킨
눈망울 초롱초롱한 고라니들이며
사시사철 온몸 감싸주었던 숲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
영주네 가족들
손모내기 보탰던
거시기네 외삼촌을 비롯한 고마운 일손들  
마을 앞 듬직한 정자나무
밤새 손꼽아도 다 못할 인연들이여.

손길, 마음 닿았던
모든 것들 고스란히 놔두고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이라지만
집착일까
애착일까
사랑일까.

정 붙이 깔아뭉개고
세상의 개발은 그렇게 시작된다
반듯한 철로 깔고
똑바른 건물 층층이 올려
마음자리 없이 도 튼 사람들처럼
집착도 애착도 없이
좀더 평수 너른 곳으로
짐 싸고 떠나면 그만인
아픔 없는 사랑 나눈다
무엇 때문일까
떠나도 슬프지 않고
떠나도 아프지 않는
무엇이 그토록 아픔 없는 사랑을 나누게 했던가
아픔 없는 사랑 버리고
온갖 정 붙여 살아왔건만
그 조차 내놓으라 하니
아픔으로 남겨질
모든 것들에게 미안하다
그런 우리에게
딱새가 날아들어
일곱개의 알을 품어 주고 있었다.


태그:#집, #딱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