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돈거래를 스스로 고백하였다. 혹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맹비판을 퍼붓는다. 반면 일부 열혈 지지자들은 사안의 중대성을 애써 무시하며 감싸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2년 대선이 있기 전부터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해온 입장에서 당혹감과 실망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복잡하다.

나는 왜 노무현을 지지했나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나는 무엇을 위해 그를 지지하였던가?

다시 처음부터 복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정치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부정부패, 정경유착, 권력남용, 줄서기와 패거리 정치가 정치혐오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정치발전의 장애물은 지역주의와 그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지역구도였다. 우선 지역구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노무현의 상징성에 매료되어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역구도에 의한 정치는 그 동안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해하는 요소였다. 선거의 승패가 지역구도에 의하여 갈리는 때문에 정치인들이 옳은 정치로 국민에게 봉사할 이유도, 그럴 조건도 형성될 수 없었다.

지역정서에 영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돼 버리는 것이다. 지역구도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걸러내지 못한다. 정경유착도 권력남용도 줄서기도 역시 막을 수 없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구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당당히 섰던 노무현은 매력있는 정치인이었다. 물론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권력남용과 패거리 정치와도 비교적 거리가 먼 정치인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기존의 정치틀을 완전히 뛰어넘는 청정한 존재였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도 이미 기성정치인이어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걸었던 희망의 요체는 지역구도의 정치를 극복하려는 염원이었을 뿐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엇갈린다. 기득권층의 평가는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조건적 평가절하 수준이었다. 합리적 논리를 결여한 비판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반면 진보진영의 평가는 비교적 논리를 갖추긴 하였으나 무척 냉혹했다.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무차별 비판이 수구세력의 정치적 이익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귀담아 들어볼 가치는 있는 비판일 것이다. 한미FTA의 무리한 추진같은 것이 나름의 논리를 충분히 갖춘 비판의 예가 될 것이다.

지지층의 평가는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부풀려진 측면도 없지는 않다. 깨끗한 정치를 했다는 평가는 벌써 상당히 가감을 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물론 비교적 객관적 사실에 가까운 치적도 없지 않다. 검찰이나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 사유화를 중단한 것은 쉬운 일도 아니며 매우 가치있는 일이었다.

부작용도 많았고 부분적으로 좌절된 측면도 있으나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한 일도 시대적 필요성이 절박한 것이었다. 과거의 정권들과 달리 패거리 정치를 추구하지 않았던 점도 충분히 평가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정책을 즉흥적이고 자의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충분한 내부토론과 시스템적 검증을 시도한 것도 옳은 일이었다. 퇴임 후 낙향하여 지방에 정착한 것도 의미있는 선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수구세력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보수신문의 공세와 한나라당의 협공에 무릎을 꿇고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또 내부의 결속력이 미약해 일찍부터 집권여당이 사분오열한 것도 리더십의 부재를 탓할만한 일이다. 그 동안 추진하던 정책들이 정권교체로 인하여 모두 물거품이 되고 있는 것은 참여정부의 최대실책이라 하겠다.

잘못은 잘못일 뿐이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5시간여 동안 조사를 받은 후 지난 2008년 12월 10일 저녁 귀가하기 위해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 귀가하는 박연차 회장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5시간여 동안 조사를 받은 후 지난 2008년 12월 10일 저녁 귀가하기 위해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현태

관련사진보기


그러다가 부적절한 돈거래까지 터지고 말았다. 과거 정권들의 대규모 부정부패에 비교하면 약소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빚에 시달려 후원기업인에게 부적절한 돈을 받았다니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증거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은 잘못일 뿐이다. 그 사안의 질적 내용에 따라 합당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 돈을 받은 여권인사들과의 형평을 논할 사안은 아니다. 누군가 교통질서를 위반하고 나서 다른 모든 위반자를 적발하고 난 후에 자신도 처벌을 받겠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지금 검찰이나 정권이 편파적인지 아닌지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잘못의 당사자나 지지자들이 편파성을 주장하기에는 매우 궁색한 일이다.

아직 수사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점이 있는지, 어떤 사정이 있어서 왜 그런 돈을 받아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법에 따라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질 시점이면 이미 국민에게 널리 내용이 알려질 수 있을 것이며, 국민의 정치적 판단도 이루어질 것이다. 불필요하게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절망감이다. 본래 헐뜯기만 하던 세력의 비판은 그리 아플 것도 없다. 잘못이 없을 때도 비난만하던 사람들에게 객관적 평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가 정치적으로 추구하던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 자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사람들의 평가 또한 공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다수의 의견이다.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은 매우 당혹스럽고 난처하다. 그러나 사안이 중대할수록 신중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추구하던 가치마저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아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그 자체로 적절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다만 잘못이 있다면 자연인 노무현이 감당할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뉴스는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돈을 받은 일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사안의 폭발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 비중있는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침소봉대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아직 밝혀지지 않고 의혹에 머물러 있는 사안조차 모두 사실인 것처럼 과장해서 보도하는 일도 있다. 또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그대로 받아쓰기하는 보도들을 접하면 서글프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지는 말자 

사안은 분명하다.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은 검찰의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적절히 책임지우면 될 일이다. 역대정권들이 모두 부패하였으니 그나마 덜한 이번 일을 덮자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밝혀졌으니 무능할 뿐 아니라 부패하기까지 했던 세력이라 매도하는 태도이다.

아직 얼마나 받았고,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가치마저 모두 잘못된 것일까?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것도,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것도, 사회복지의 확대정책도, 권력기관의 독립성 확보도 모두 잘못된 것일까? 분명 자연인의 잘못과 그가 추구하던 가치는 분리할 수 있다. 잘못은 잘못대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가치는 가치대로 각기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마구 섞어서 깡그리 부정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순한 일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그 자체로 추종한 것이 아니다. 그가 추구하던 가치를 공유하고 그것에 대하여 지지를 보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별로 좋지 않은 자연인이라 평가한 일도 없다. 다만 자연인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치는 공유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한 자연인의 성공은 뭐 그리 나눌 수 있는 것도 없는 법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훨씬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조차 그렇게 부적절한 돈거래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일까?  또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하고자 할 집권세력의 의도대로 대부분의 언론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사실관계를 보도하고 조심스럽게 논평하는 언론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하자.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추구하던 것이라도 옳거나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평가했으면 좋겠다. 혼동하고 섞어서 모두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말자. 그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지역구도는 극복돼야 한다. 그가 실망스럽더라도 국토의 균형발전은 필요한 일이다. 그가 나쁜 사람임이 밝혀지더라도 국정은 충분한 토론과 시스템적 접근방법으로 가야한다. 그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 하더라도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가치와 그것을 상징하는 자연인의 잘못을 혼동하지는 말자. 그를 지지하였고, 그에게 실망도 하였으나, 그가 내세웠던 가치를 나는 여전히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이 상징하던 바로 그 가치지향을 나는 아직도 지지한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글을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노무현, #지역구도, #부적절한 돈거래, #균형발전, #권력기관의 독립성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