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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된 '적토마' 등록증
 13년된 '적토마' 등록증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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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함께 했었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생물과 이별만 서운한 게 아닌가 보다.

이 차를 '적토마'라 불렀었다.

'자동차 등록번호, ○○××○××××. 차종, 소형 승용. 용도, 자가용. 차명, 아벨라(1996년식). 운전하는 동안 거주지 이전 2차례. 자동차 정기검사 5차례.'

13년간 탔던 차를 폐차하려 하니 밀려드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자동차 보험료 50여만 원, 자동차세 30여만 원, 연료비 300여만 원 등 연간 유지비 총 400여만 원. 물론 중ㆍ대형 차 유지비에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다.

찌그러진 차를 보며 "언제 사고 났어?" 물었었지

"여보, 폐차하려니 영 서운하네!"
"그러게요? 무생물이지만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당신 발'이었잖아요. 필요할 때 내 몸처럼 늘 쉽게 이용하던 발. 하루 이틀도 아니고, 13년 동안 얼마나 정들었겠어요."

아내도 진지한 표정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아내가 고맙다. 신혼여행 때, 이 차를 타고 단양 팔경을 거쳐 설악산, 동해, 경상도를 돌았었다. 결혼 12년째니 이보다 오래됐다.

'적토마'와 고삐를 잡은 벗. 오토바이가 찌그러트린 흔적(가운데)
 '적토마'와 고삐를 잡은 벗. 오토바이가 찌그러트린 흔적(가운데)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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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사고는 총 세 차례. 1999년, 새벽녘 집 앞에 주차된 차를 며칠 주기로 오토바이가 연거푸 부딪치고 줄행랑을 친 사고다. 한 번은 20여만 원 들여 고쳤으나, 두 번째는 속이 아려 그대로 타고 다녔다.

2000년, 세 번째 사고가 있었다. 신호가 바뀌려는 순간 지날 줄 알았던 택시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꽁무니를 받았었다. 경미한 사고라 3만원으로 합의 봤었다.

지인들은 내 차를 보면 "언제 사고 났어?" 물었다. 그러면 "어지간히 물어요"라고 했다. 그러다 차츰 "아직 안 고쳤어? 대단하네"하고 웃었다.

벗과 폐차 전 '종승식'... "적토마, 잘 가!"

폐차에 필요한 서류는 자동차등록증, 주민등록증, 과태료 완납 3가지. 확인해보니 꼬박꼬박 낸 줄 알았던 과태료가 20만원 남아 있었다. 자치단체와 경찰청에 송금하니 절차는 마무리. 폐차 후 1개월 이내에 폐차인수증명서와 자동차등록증을 첨부하여 말소신청하면 끝.

벗과 종승식으로 달린 외곽 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벗과 종승식으로 달린 외곽 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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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벗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라이브 하려는가?"
"응, 시간 괜찮네."

도심 도로에는 얕은 안개가 깔려 있었지만 차량은 넘쳐났다. 도심 외곽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도로는 한산했다.

"무슨 일 있는가?"
"무슨 일은. 이 차 내일 폐차하려고. 차를 사면 '시승식'을 하잖은가. 그래서 폐차하기 전에 '종승식' 하려고."

"경제가 어려워선가 예전에는 3~4년 만에 차를 바꾸더니, 요즘엔 5~6년씩 타데. 오래 타는 사람은 10년씩 타고. 그나저나 오래 탔네. 기분 '쎄~' 하겠네?"
"고마우이. 종승식 소감이나 생각해 두게나."

벗은 드라이브를 마치고 "적토마, 잘 가!"란 한 마디를 남겼다.

'찌그러진 소형차' 괄시도 받았었지... '안녕, 적토마!'

1998년 자동차보험료와 2006년 자동차세 영수증(가운데).
 1998년 자동차보험료와 2006년 자동차세 영수증(가운데).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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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을 정리했다. 연료를 주입했던 카드 영수증, 주유소에서 받은 화장지와 쿠폰, 동전, 책, 우산, 카세트테이프, 아이들 장난감, 명함, 일회용 카메라, 락카, 아내가 짰던 시트커버 등 많은 잡동사니가 쏟아졌다. 오랜 세월 많은 일상과 만나는 기분.

영수증도 2개가 나왔다. 1998년 냈던 자동차 보험료 29만9760원. 2006년 일반 세금 5만5560원과 지방교육세 1만6660원을 합쳐 7만2220원이라 적혀 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세월이 고스란히 영수증으로 남은 듯하다.

폐차는 남들처럼 번듯한 차로 바꾸려는 게 아니다. 수명이 다해서다. 또 이참에 친환경ㆍ생태적으로 살아보기 위함이다. 많은 불편이 닥칠 것이다. 이를 감내해야 한다. 다시 각오를 다진다. 

이제 남은 건 가족과 마지막 야간 종승식. '찌그러진 소형차'라고 괄시도 많이 받았었지. 그러나 적어도 내겐 '황제의 차'였다. 아내와 연애시절이며, 아이들 놀이방 오가던 나날들, 친가와 처가를 다니던 과거들을 추억으로 새겨야 한다. 그에게 작별을 고한다.

'안녕, 적토마!'

덧붙이는 글 | ‘불황이 00에 미치는 영향’ 공모글



태그:#폐차, #소형자동차, #차량유지비,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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