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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앙
▲ 인상여강 리지앙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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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앙 고성의 본거지 '쑤허구전'

1월 17일. 이리저리 먹어 보아도 '미시엔'(米線)만큼 값싸고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서, 여전히 이날 아침 식사도 리지앙 고성 입구에 있는 세 평짜리 국수집을 찾았다. 그래도 몇 번 왔다고 단골처럼 반겨주는 아주머니의 미소가 따뜻하다. 하기야 작은 식당에 십여 명의 단체손님이 자주 들러주니 반가울 만도 하겠다.

녹차 우린 물에 삶은 달걀로 후식 삼아 먹고 나서 '쑤허구전'(束河古鎭)으로 향했다. 차마고도의 마방들이 머무르던 고성 지역으로 리지앙(麗江)에서는 약 10㎞ 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이곳은 차마고도의 상단들이 거치는 세관 겸 검문소와 같은 곳으로, 사실상 리지앙 고성 지역의 본거지라고 한다.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뒤에 대부분의 건물과 돌을 깔아놓은 옛길들을 잃었지만 상업적으로 꾸며진 리지앙 고성보다 고풍스러운 마방의 옛 자취를 느끼게 하는 고도라 하겠다.

쑤허구전
▲ 빨래터 쑤허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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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 가까이 들어선 아담한 찻집들이 지친 여행자들의 걸음을 잠시 쉬게 할 만하다. 마치 인사동 뒷골목의 작은 찻집들을 머리에 떠올린다. 어느 한산한 찻집에 들어가 의자 깊숙이 몸을 뉘니 창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자글자글 다정하다. 아예 이곳에 머물러 이렇게 여행자들과 노닥거리며 한세월 지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충동은 잠시이고, 현실은 길고 가깝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다시 길로 나선다. 차마고도 마방길이라는 표지를 따라 좁은 골목 으로 들어서 왕씨(王氏) 마방 고옥을 들러 보았다. 190년이나 되었다는 집의 벽에는 차마고도의 옛 풍경과 마방들의 흑백사진이 붙어 있다. 이층 구석에는 귀중한 사진들이 미처 정리도 못한 채 처박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관리인은 사진을 일체 찍지 못하게 했다.

묘족
▲ 전통복식 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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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 마방을 나서서, 룽탄(龍潭)이라는 연못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못 가장이에 휴지통이나 안내판들이 동파문자로 적혀 있는 것이 재미있다. 한눈에도 지나치게 맑고 차가워 보이는 연못 속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의외로 송어나 잉어가 많이 살고 있었다.

묘족 전통의상을 빌려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곳도 있었다. 우리네 색동저고리보다 훨씬 화려하고 장식물이 현란하다. 특히 은으로 만든 머리 장식들은 거의 우리네 각시들이 쓰는 화관을 연상시키는데, 그보다 크고 화려하다. 여자 여행자 한 분이 옷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의외로 낯설지 않다. 실크로드학이라 불릴 정도로 동서 문명의 비교학문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지만, 막상 그보다 앞섰다는 차마고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교류는 어느 정도일지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일었다.

차마고도
▲ 마방 차마고도
ⓒ 운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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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씨마방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행여 사진을 찍을까봐 이층까지 따라온 관리인은 차 이야기가 나오자 신바람이 나서 차를 꺼내놓는다. 안내인이 차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차에 대한 실망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보이차에 삶은 국수라기에, 그래도 옛 마방집에서 내어 놓는 국수라니 별미 삼아 먹어 보자고 그 집의 '보이차면'이란 것을 시켰다.

그것은 이번 여행 중에 만난 최악의 음식이었다. 이리 밝혀 놓는 것은 다음의 여행자들을 위한 친절한 조언을 위해서다(물론 식성이 다른 분도 많겠지만).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 건진 것이 틀림없어 뵈는 국수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그냥 대접에 담아 왔다 생각하면 된다. 밍밍하고 늑늑하고 흐물흐물한 맛이다. 순도 높은 무미의 경지이다. 아, 마방 사람들은 이것을 먹으며 차마고도 험한 길을 오갔단 말인가.

난 마방 사람이 아닌 탓이라서, 소금과 엔차이(鹽菜)를 달래서 넣어 보았지만 밍밍한 맛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7위안이나 내고 겪는 고통으로는 최고였다. 별난 식성의 여행자가 아니라면 왕씨 마방의 '보이차면'은 피하기 바란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호기심에라도 꼭 드실 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오백원을 준다니까 그것을 내 것까지 더 먹으려던 동행도 있긴 했다. 나는 이 맛없는 국수를 먹은 충격에 그동안 여행기록을 적어 놓은 수첩도 흘린 채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오기 급급했다.

운남의 다른 음식들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베트남 음식에 비해 향채의 농도도 심하지 않았다. 향채에 익숙지 않아 식당에 들어서서는 "쁘야오 시향차이(不要香菜: 향채 넣지 말아주세요)"를 외우고 다녔는데 안내자의 말로는, 향채는 값이 비싸, 많이 넣어 달라고 해도 잘 안 넣는다고 했다. 대체로 미센(米線:쌀국수)이나 지단챠오판(鷄蛋炒飯; 계란볶음밥)이 입에 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날 먹은 보이차면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중국만이 연출할 수 있는 '인상여강'(印象麗江)

인상여강
▲ 공연 인상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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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허구전'(束河古鎭)을 나서서 위롱쉐샨(玉龍雪山)으로 향한다. '인상여강'(印象麗江)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190위안 관람료만 내면 되었는데, 이제는 고성 보호비와 국립공원 입장료까지 얹어 모두 310위안을 내야 한다는 말에 관람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금액의 부담을 넘어 지나친 상술의 횡포가 너무 심해 기분이 상했다. 행여 우리네 사찰 앞에서 국립공원비와 문화재 관람료를 한몫으로 부과하는 데서 착안한 상술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직선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한 시간쯤 달려가니 멀리서 바라보던 위롱쉐샨(玉龍雪山)의 장중한 풍경이 성큼성큼 눈앞으로 다가온다. 설산으로 가까이 다가설수록 해발이 높아지는데, 해발 3100미터 지점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인상여강'(印象麗江)이 펼쳐진다. 이번 여행의 최고 고점이다. 밖에서는 훔쳐 볼 수 없게 설치된 야외공연장은 웅장한 설산을 배경으로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다.

인상여강
▲ 공연 인상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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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印象麗江) 공연은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하여 약 1시간 정도 공연되는데, 관객석을 향한 햇빛의 각도 등을 감안한 시간 설정으로 뵌다. 짙은 진홍빛의 토벽을 연상시키는 원형무대는 얼어붙은 위롱쉐샨(玉龍雪山)과 강렬한 대비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며,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감동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나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한 '인상여강'(印象麗江) 공연은 한 번에 500명 정도가 무대에 등장하는 역동적인 무대를 이뤄내며 소수 민족의 역사와 애환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마방을 조직하여 서역으로 향하는 남정네와 이들을 보내는 여인들의 모습, 이루지 못한 사랑을 슬퍼하며 설산으로 들어가 내세를 기원하며 죽음을 맞는 슬픈 연인들, 하늘을 숭배하고 복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에 이르러 장엄한 북들의 울림으로 마무리되는 인상여강'(印象麗江)은 지나친 상술로 상했던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인상여강
▲ 공연 인상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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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 올라가 설산을 배경으로 휴지를 줍는 청소부의 모습마저 감동적인 장면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한 사람도 그 머리 위에 올리지 않은 도도한 위롱쉐샨(玉龍雪山)을 배경으로 500여 명의 사람과 북과 말이 등장하여 갈짓자로 오르내리는 장관은 가히 사람 많고, 산 높은 중국만이 펼쳐낼 수 있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인상여강
▲ 여배우 인상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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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은 인상여강(印象麗江)을 포함하여 계림의 산수, 항주의 서호를 주제로 한 3개의 대규모 공연을 연출한 바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인상여강'(印象麗江)의 공연 관람수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고도의 설산과 웅장한 음악이 어우러진 야외공연의 감동에 비해, 그 구성이나 공연의 틀이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리지앙에 들렀다면 놓치지 말고 관람하기를 권하고 싶은 공연이다. 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들이 예쁘게 자리를 잡고, '인상여강'(印象麗江) DVD를 기념으로 팔고 있다. 가격은 50위안이다.

온종일 물속에 빠져 있는 야크들

백수하
▲ 남월곡 백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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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그곳에서 지정된 전기차량을 타고 10여 분 거리의 백수하로 갔다. 일반차량은 환경훼손을 이유로 운행할 수 없었다. 전기차량 운임은 20위안이었다.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버스 종점에서 다리를 지났다. 다리 위쪽을 백수하, 아래쪽을 흑수하라고 불렀다는데 표지석에는 남월곡(藍月谷)이라고 적혀 있었다.

층층이 조개껍질 모양의 석회석들이 겹쳐 있는 물속에는 야크가 서너 마리 발을 적시고 있었다. 야크 위에 올라가 뒤로 뵈는 설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삯은 다시 20위안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이번에는 온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발목을 물에 담그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야크가 불쌍했다. 오후 5시경에 야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주인을 따라 제 집으로 퇴근했다.

남월곡
▲ 야크 남월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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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이번 여행을 인솔한 최성수 시인이 잘 아는 분을 소개해 주었다. 예전에 '인상여강'(印象麗江) 공연장 부근에서 '고장난 시계'라는 매혹적인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문씨 아저씨라는 분이었다. 지금은 위롱쉐샨(玉龍雪山) 꼭대기에서 호두과자를 팔고 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된다고 했다.

최 시인과 만난 것이 반가워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마방채(馬幇菜)라는 시가지 쪽의 식당은 중국 요리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가격은 알 수 없었으나 배낭 여행자들이 맛보기에는 과한 음식들이었고, 그만큼 맛도 좋았다.

'능력만큼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전해 주는 문씨 아저씨는 이곳에서 돈도 벌만큼 벌어서 다음에는 탄자니아로 들어가 그곳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했다. 그야 말로 어느 한 곳에 얽매이거나, 지니려 하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는 문씨 아저씨야말로 정해진 삶의 톱니와 세월을 즐거이 잊어버린 '고장난 시계'가 아닐까 싶다.


태그:#쑤허구전, #리지앙, #인상여강, #남월곡, #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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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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