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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양파의 대명사 오월동이. 창녕은 우리나라에서 양파를 맨 처음 재배한 곳(창녕군 대지면 석동마을 성재경)이다.
▲ 창녕양파 오월동이 창녕양파의 대명사 오월동이. 창녕은 우리나라에서 양파를 맨 처음 재배한 곳(창녕군 대지면 석동마을 성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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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연이은 궂긴 이야기로 창녕이 화두다. 이제 누구를 만나도 '창녕 이야기'는 단골메뉴다. 몇 차례 군수 선거와 화왕산 화재참사까지 결코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얘기. 근데도 좋잖은 일일수록 관심은 더 많은 법. 그럴 때면 애써 이야기해서 무엇하랴싶어 쓴웃음으로 대신한다.

지난 삼십년 동안 외지에 나가 살다가 정작 불혹의 나이에 고향에 다시 안주했다. 그렇지만 팔 년째 사는 지금, 애달픈 일이 한둘 아니다. 전임군수들이 모래채취에 관한 복마전에 빠져 망신살을 돋웠고, 임기 사년의 군수선거를 세 번이나 치려 가히 '불명예 전당'에 남을 기록을 세웠다. 그나저나 창녕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낯부끄럽다.

그러나 창녕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고장이다. 그런 까닭에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게 한둘 아니다. 국내최대의 자연생태습지의 보고인 '우포늪', 78˚의 수질을 자랑하는 '부곡유황온천',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3.1 민속문화제', 그 자태가 수려한 '화왕산', 제2의 경주라고 일컬을 만큼 '빛벌가야'의 문화유적이 두루 많은 곳이다. 또 하나 창녕은 우리나라 양파의 시배지다.

창녕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까지 좋은 고장

우리나라에서 양파를 맨 처음 재배한 곳이 창녕 '석동마을'이다. 그것을 기념해서 창녕 성씨 고가 옆에다 세운 기념비다. 이 기념비는 창녕에서 양파 재배에 힘써 창녕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었던 사단법인 경화회(耕和會)가 세웠다. 오석 위에 두 손이 양파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 양파시배지 기념비 우리나라에서 양파를 맨 처음 재배한 곳이 창녕 '석동마을'이다. 그것을 기념해서 창녕 성씨 고가 옆에다 세운 기념비다. 이 기념비는 창녕에서 양파 재배에 힘써 창녕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었던 사단법인 경화회(耕和會)가 세웠다. 오석 위에 두 손이 양파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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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중국산이 밀려들기까지 창녕은 우리나라 양파 생산지의 대명사였다. 창녕에서 양파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일본에 유학을 갔던 성재경(창녕군 대지면 석동)씨가 양파 씨를 갖고 와 창녕에서 재배를 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양파는 창녕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혁혁하게 기여했다. 현재 양파 시배지 석동마을 앞에 오석 위에 두 손이 양파를 떠받치고 있는 기념비가 그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26일 대지면 들녘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양파재배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것과는 또 다른 일면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들판 전체가 양파로 가득했다. 하지만 웬걸. 지금은 양파를 심어놓은 논밭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만큼 대중을 이루고 있는 게 마늘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대충 훑어보아도 8할 이상이 마늘 재배다. 흔히 마늘하면 남해마늘을 최고로 꼽지만, 현황이 이런 것 같으면 이제 창녕은 마늘생산지로 이름이 바뀌어야 할 판이다.

넓따란 양파논배미. 며칠째 내린 단비로 양파 잎사귀가 생기를 얻었다.
▲ 양파논 전경 넓따란 양파논배미. 며칠째 내린 단비로 양파 잎사귀가 생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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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양파를 심었던 논, 하지만 이제는 마늘재배지로 바뀐지 오래다.
▲ 마늘논 전경 예전에 양파를 심었던 논, 하지만 이제는 마늘재배지로 바뀐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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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간단했다. 모처럼 단비가 내려 덧거름을 내고 있다는 한 농민의 말을 빌면, "쎄(혀)가 빠지도록 양파농사를 지어봤자 이문 남는 게 없는기라예. 매년 양파 값이 똥값이기 때문이지예. 그렇지만 마늘은 일한만큼 제값을 받는다 아입니꺼"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열두 마지기 논에다 몽땅 마늘을 심었단다. 아예 양파농사를 포기한 셈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한두 농가의 결심만은 아니었다. 언뜻 보아도 널따란 논배미마다 심겨진 마늘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창녕양파의 명성은 이제 옛말, 대부분 농가 마늘농사로 전업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벼 타작을 끝낸 논에는 어느 집 할 것 없이 양파를 심었다. 그 시절 창녕에서는 농한기가 없었다. 양파는 창녕 농민에게 있어 소득증대에 으뜸인 특용작물이었다. 그래서 오뉴월 보리타작을 즈음할 때면 양파수확으로 부지깽이라도 거들어야 할 형국이었다. 실제로 '양파 뽑기 가정실습'이 있었다. 제주에는 밀감나무로, 거제에는 유자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을 정도로 양파는 창녕에서 자식을 줄줄이 대학을 시키고도 남을 농사였다. 필자도 양파 덕에 대학공부를 하였다.

보라동이(품종보호 제1744호)는 만생종으로 6월 중순 수확하며, 보호엽의 색이 보라색에 가까운 진한 빨강색으로 샐러드용으로 적합하다.
▲ 보라동이 보라동이(품종보호 제1744호)는 만생종으로 6월 중순 수확하며, 보호엽의 색이 보라색에 가까운 진한 빨강색으로 샐러드용으로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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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동이는 중생종으로 5월 하순에 수확하며, 초세가 직립형이며, 옆의 꺾임이 적고, pink root에 대한 내병성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먹는 양파의 대종이다.
▲ 오월동이 오월동이는 중생종으로 5월 하순에 수확하며, 초세가 직립형이며, 옆의 꺾임이 적고, pink root에 대한 내병성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먹는 양파의 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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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양파는 6월 초순에 수확하며, 고형물 함량이 많아 가공용 육성계통에 이용되고 있다.
▲ 백색양파 백색양파는 6월 초순에 수확하며, 고형물 함량이 많아 가공용 육성계통에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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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는 누구에게나 걸맞은 먹을거리다. 때문에 양파의 효능에 대해서는 거론할 여지가 없다. 양파는 지방의 함량이 적으며 채소로서는 단백질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도 중국 여자들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매운맛을 내는 유화프로필 성분 때문이다. 유화프로필 성분은 섭취한 영양소가 지방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주고 콜레스테롤 같은 고지방을 녹여낸다.

또한 양파는 혈액 속의 불필요한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녹여 없앤다. 그 결과 동맥경화와 고지혈증을 예방하고, 혈압을 내리는 작용도 현저하다. 그 결과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하다. 때문에 양파는 당뇨병에 의해 생기는 2차적인 합병증인 동맥경화, 고혈압은 물론, 심근경색이나 신장병, 백내장 등을 예방, 치료하는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도 양파의 독특한 향과 자극적인 냄새는 육류나 생선요리의 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에 조미료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야채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은 양파가 정작 시배지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단 하나, 중국산 수입 양파로 인한 가격하락이 그 단초다.

양파가 시배지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이유, 가격하락이 그 단초

요즘 양파논은 바쁘다. 흙을 덧씌우고 시비를 하는 철이기 때문.
▲ 양파논 시비 요즘 양파논은 바쁘다. 흙을 덧씌우고 시비를 하는 철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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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 농부가 마늘밭을 건사하고 있다. 넓은 논배미. 하지만 요즘 농촌은 일 할 사람이 없다.
▲ 마늘논 건사 한 할머니 농부가 마늘밭을 건사하고 있다. 넓은 논배미. 하지만 요즘 농촌은 일 할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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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면 들녘을 걸으면서 마음이 찹찹했다. 들판에서 만난 농민들은 거의 다 육순 칠순의 나이를 가진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왔으면 여태껏 양파농사를 전문으로 지었다. 한데, 늙수그레한 나이에 마늘농사에 매달리고 있다. 평소 양념삼아 텃밭에만 심었던 마늘을 모든 논밭에다 다 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늘 농사짓는 것도 겁이 납니더. 이제 양파농사는 접고 모두 마늘농사에만 치중하다보니 종자 비료값이나 건질란가 모르겠네예. 이래저래 농민들만 동네북이지예. 실컷 농사 잘 지어놔도 마늘 값이 들쭉날쭉 해버리면 중간상인들만 좋은 일시키는 것 아이겠습니꺼. 이제 농사짓는 것은 희망이 없는기라예. 애써 죽 끼리서 개 주는 거지예."
   
들녘을 지키고 있는 창녕군 농민회가 내건 현수막.
▲ 농민회가 내건 현수막 들녘을 지키고 있는 창녕군 농민회가 내건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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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비 폭등으로 인한 농민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외치고 있는 현수막
▲ 창녕군 농민회가 내건 현수막 생산비 폭등으로 인한 농민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외치고 있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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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끔 덧거름 내는 일을 하다보니 해질녘이다. 아직도 손봐야할 양파 이랑은 절반이나 남았다. 젊은이들이 다 떠난 농촌,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일손이 없단다. 논두렁에 앉아 마른담배를 태우는 농민의 입가에 씁쓰레한 한숨이 묻어났다. 이제 창녕양파의 명성은 한물간 옛이야기가 되려나.


태그:#창녕양파, #마늘, #시배지, #화왕산, #우포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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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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