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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잠깐 시장에 다녀온 사이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습니다. 전화기 창에는 ‘언니’라고 뜹니다. 막 나가자 마자 전화가 온 모양입니다. 전화기를 가져갈 걸 그랬나 하고 잠깐 후회를 합니다.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깜빡거림을 보자마자 뛰기 시작했던 심장이 ‘언니’라는 글자를 보자 쪼그라 듭니다. 그래도 두 번 세 번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혼자 마음을 쓰려내려봅니다.
 
  바로 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 시각이면 언니 일할 시각인데 왜 전화를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전화신호음이 길어지자 두려움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신호가 한참이나 가더니 뜻밖에 동생이 전화를 받습니다. 기운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어디 딴 세상에서 들려오는 듯 합니다.
 
“왜 전화한 거야?”
“나 CMA통장으로 돈 이체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왜 그걸 몰라? 지금까지 이체시켰잖아.”
“몰라, 기억이 안나.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겠어.”
 
동생은 여전히 허공속에서 맴도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통장 이체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 묻습니다.
 
“근데, 이체는 왜 하려고? 그냥 통장에 놔두지.”
“그래도 얼마라도 이자 붙여야지.”
 
동생의 대답을 듣고 조금 멍해집니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이자 생각을 하다니.
 
“뭐 좀 먹기는 하는거야?”
“호박죽 조금 먹었어. 내일 병원가”
“정말 영양실조로 죽으면 안돼. 영양실조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알았어.”
 
 

2008.03~04..

하코네 명물 검은 달걀.

온천수로 익힌 달걀이다.

한개를 먹을 때마다 수명이 7년씩 늘어난다고 한다.

나, 몇년 전에 혼자 하코네에 와서 6개가 들어있는 한봉지를

혼자서 다 먹었었고 이번에도 3개나 먹었다.

그럼, 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데...음...

 

2008.04.14 15:47 동생 미니홈피 중에서.

 

 

 

  설날에 본 동생은, 한 살된 조카보다도 적게 먹었지만, 하루에 두 끼씩 챙겨 먹고 중간에 과일도 조금씩 먹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니 몸이 조금씩 좋아지나 보다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안좋은지 저야 감도 잡을 수 없지만, 속이 좋지 않다고 거의 먹지 못했던 몇 달 전에 비하면 그나마 많이 좋아졌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가뿐한 마음으로 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설이 지난 며칠 뒤 동생은 또 밤새 토했다고 합니다. 잠도 자지 못하고 토해내고, 기력은 하나도 없는데 또 속이 안좋으니 먹을 수도 없고.

 

  그날 이후로 저에게 증상이 하나 생겼습니다. 어느날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하고 집으로도 했는데 받지 않으셨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날은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그때부터 집에서 전화만 걸려와도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핸드폰 창에 ‘엄마’라고 뜨거나 ‘언니’라고 뜨면 그 글자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합니다. 뜸 들일 새도 없이 저는 부리나케 전화기를 집어 듭니다.

 

  설날에 집에 갔다가 감기가 된통 걸려 왔습니다. 20년이 다 된 주택에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다 보니 기름값이 많이 나와 부모님은 거의 보일러를 돌리지 않습니다. 거기다 앞집에 가려 햇빛도 깊숙이 들어오지 않고 외풍도 워낙 심해 온열매트를 깔아놓았지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날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기는 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며칠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어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누어있으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기에 끼니는 대충 챙겨서 먹었지만 먹고 나면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았습니다. 일어나 움직이면 이 것 저 것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불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눈만 뻐끔뻐끔 뜬 채로 아무 생각도 없이 티비만 보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누어있으면서 내가 그 동안 동생을 참 힘들게 했겠구나,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동생이 다시 항암치료를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지 다시 2개월째입니다. 병원만 왔다갔다 하는 동생을 보면서 그러지 말고 뭔가를 해보라고 참 들볶았습니다. 제 딴에는 그래도 병원치료 외에 관심을 둘 곳이 있어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을 테고, 작으나마 하는 일이 있어야  병원 치료 외에 다른 곳에 마음을 쏟으면서 항암치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감기 몸살로 누어있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얼마전에는 방통대 일본학과에 등록해서 공부하라고 등록날짜까지 알려주고, 방통대 수업이 괜찮다고 열변을 토해내며 설레발을 쳤는데… 그다지 호응을 보내지 않는 동생에게 섭섭해하고, 답답해하면서.

 

  고작 감기 몸살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무력하게 누어만 있으면서 제가 항암치료에 대해 뭘 한다고 동생에게 이것도 해봐라, 저것도 해봐라 요구를 했던 것

인지......  항암치료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동생에게 끊임없이 강요했던 것인지.

 

  오늘은 동생이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까요?. 그 기운없는 중에도CMA에 돈을 넣어놓아야 이자가 더 붙는다고 말하는 동생이,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저보다 아직은 더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태그:#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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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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